끊이지 않는 데이트 폭력… 사각지대 없애야

데이트폭력 3년 새 55% 늘어… 다만 규제할 제도 없어 관련 법률안 계류 중… 해외선 연인 폭행 전과 정보 제공

2025-04-29     나광국 기자

매일일보 = 나광국 기자  |  최근 데이트 폭력을 통해 연인을 살해하는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사각지대에 놓인 데이트 폭력 피해자 보호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데이트 폭력 사건은 최근 3년 새 55% 늘었음에도 정작 피해자 보호를 위해 발의된 법안들은 국회에서 수년 동안 계류 중이이다. 전문가들은 데이트 폭력은 강력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 처벌 강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29일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데이트 폭력으로 검거된 피의자 수는 총 1만3939명으로 2020년(8951명) 대비 55.7% 증가했다. 데이트 폭력 범죄 신고 건수도 4년 동안 2만7000여건이 늘어나 지난해 7만7150건을 기록했다. 하지만 데이트 폭력으로 구속 수사를 받는 피의자 비율은 수년째 1~2%대에 머물고 있다. 2020년 2.3% 정도였던 구속 수사율은 2022년 1.7%로 하락한 뒤 지난해 2.2%로 소폭 올랐다. 지난해만 보면 검거된 데이트폭력 가해자 1만3939명 가운데 구속 수사를 받은 인원은 310명이다. 데이트폭력 상당수가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는 폭행과 협박 혐의인 점이 구속 수사율이 낮은 원인으로 꼽힌다. 아울러 데이트폭력으로 심리 상태가 취약해진 피해자들은 가해자 압박에 못 이겨 합의하거나 신고를 취소하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 금천구 시흥동에선 연인 보복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피해자 A(47·여)씨의 폭행 신고로 살인범 김모(33)씨를 23분간 조사하고도 A씨에 대해 적절한 보호조치를 하지 않았고, 김씨의 신고 보복 살인으로 이어졌다. 경찰이 ‘폭행이 경미했고, 김씨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피해자의 진술을 근거로 단순 연인 간 다툼으로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김도연 데이트폭력연구소 소장은 “데이트폭력 가해자들은 경찰 신고 당일부터 피해자들을 상대로 협박과 회유를 일삼곤 한다”며 “피해자들은 심리적 무력감과 트라우마로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하기에 제대로 법적 대응에 나서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고 설명했다. 다만 국내에는 교제 폭력을 따로 규제할 제도가 없어 현장에서는 가정폭력범죄의 처벌법 등에 관한 특례법 등을 적용해 분리 조치나 접근금지 등의 명령을 내리고 있다. 지난 2016년 이후 데이트 폭력을 별도로 규정한 특례법이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모두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교제 관계의 범위가 법률적으로 불명확하고, 단순 교제 관계를 가정의 범주에 포함하는 것이 적절한지 논의가 필요하다는 등의 이유로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에서 가정 폭력과 데이트 폭력을 같은 범주에 넣어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영국과 미국에서는 각각 가정폭력방지법과 여성폭력방지법에 데이트 폭력을 포함시켜 피해자를 보호하고 있다. 영국은 한 발 더 나아가 연인의 전과 기록을 조회할 수 있는 ‘클레어법’도 시행 중이다. 일본은 배우자폭력방지법과 스토커규제법으로 데이트폭력에 대응하고 있다. 기존 배우자폭력방지법은 한국의 가정폭력처벌법과 비슷하게 배우자, 이전 배우자, 사실혼 배우자 간의 폭력을 규제했다. 그러다가 2013년 적용 대상을 ‘생활 본거지를 같이하는 교제 관계’로 확대했다. 이처럼 지속·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데이트폭력 사건을 줄이기 위해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국내 사법체계가 데이트폭력을 범주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공정식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경찰이 초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면 피해자가 계속 폭력을 수용하게 되어 결국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며 초기 대응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국회 보좌진 출신의 한 여성단체 관계자는 “연인 사이에도 폭력은 중대한 범죄라는 의미로 교제 폭력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며 “다만 연인 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범위를 규정할지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