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신문고]중대재해법 효과 미미…안전 생태계 구축에 초점 맞춰야
조선·철강 등 중후장대 업계, 취지에는 공감…안전 감독·투자 강화 “처벌보단 인센티브 안전 생태계 초점”…22대 여소야대 국회서 난항
2025-04-29 이상래 기자
매일일보 = 이상래 기자 | “처벌 기준은 명확하지 않은 데 수위는 너무 가혹하다.” “글로벌 경기가 어려워 대기업도 불확실성 때문에 생존하기 버겁다. 중소기업은 사실상 중대재해처벌법에 걸리면 망한다고 봐야 한다.”
2022년 1월부터 시행한 중대재해법을 두고 중후장대 업계 관계자들은 규정의 모호성과 과도한 처벌 수위를 문제로 삼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중대재해법 때문에 최근 안전사고는 기업인들에게 강력한 형사처벌을 묻는 방식으로 법 집행이 이뤄지는 실정이다. 대한상공회의소와 법무법인 세종이 공동으로 개최한 ‘중대재해처벌법 사례와 기업의 대응방안’ 세미나에서 김동욱 세종 파트너변호사는 “검찰·법원이 안전보건확보의무 이행 여부에 대한 판단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하고 있어 안전보건확보의무를 일정 정도 이행한 사업장에 대해서도 이행을 하지 않았다고 판단한 사례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강력한 처벌 위주의 법 집행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효과는 의문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 2월 국내 A 조선소에서 부유식 원유 생산설비(FPS) 이동작업 중 사고로 근로자 한 명이 숨졌다. 지난 1월에는 또 다른 B 조선소에서 근로자 한 명이 계단에서 추락해 사망했다. 같은달 C 조선소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해 직원 한명이 숨졌다. 개별적 사고가 아닌 총체적 통계를 봐도 마찬가지다. 중대재해법 시행 첫 해인 2022년에는 오히려 산업재해 사고 사망자는 늘었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22년 산업지해 사고 사망자는 전년보다 46명 늘은 874명으로 집계됐다. 오랜 기간 검찰에 몸담았던 윤석열 대통령도 “(중대재해법) 법시행 이후 지금까지는 실증적으로 긍정적인 결과가 없었다”며 “처벌강화와 책임범위를 넓히는 것이 실제 사고를 줄이는 것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면밀히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중대재해법 헌법소원심판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전원재판부에 회부하는 결정을 내린 상태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이번 헌법소원심판 청구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죄형법정주의에 따른 규정의 명확화와 책임주의 원칙에 따른 처벌 합리화를 요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산업계는 중대재해법 취지에는 공감하며, 안전경영에 적극 나서고 있다. 서강현 현대제철 사장은 최근 정기 주주총회 직후 간담회에서 “직영·협력·외주사들까지 안전 프로세스를 지키는 것이 본인의 안전을 위한 방안임을 지속적으로 교육하고 훈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현대제철은 매년 2000억원이 넘는 규모의 안전 투자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도 올해 주총에서 노진율 최고안전책임자(CSO) 사장을 사내이사로 새로 선임했다. 삼성중공업도 이왕근 CSO(부사장)을 이사회에 합류시켰다. 지난해 HD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등 국내 조선 3사는 3000억원 넘게 안전 강화에 투자했다. 산업계에서는 중대재해법이 취지에 맞게 안전한 생태계 구축을 위한 선순환 구조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CEO까지 챙길 정도로 국내 기업들도 안전 투자에 적극 나선다”며 “과도한 경영진 처벌 위주보다는 적절한 인센티브를 주며 안전사고 예방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중대재해 예방목적 달성을 위해 종사자에게 안전보건 의무를 부여하는 법안도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바 있다. 해당 법안에는 사고발생의 직접원인 중 하나인 종사자들의 불완전한 작업행위를 예방하고, 정책의 기조를 처벌보다는 사전예방 중심으로 방향 전환하자는 내용에 중점을 뒀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영세·중소기업인들 중심으로 중대재해법 개선이 꼭 필요하다는 호소가 적지 않았다”며 “여소야대가 21대에 이어 22대 국회까지 이어져 개정안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