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자·말자·똥개’…법원, 개명정책 20년 회고 눈길

1995년 ‘한시적 개명 자유화’ 이후 법원 정책 변화 시작
2005년 ‘개인 성명권’ 인정 판례 나오면서 ‘대중화’ 물꼬

2014-03-09     김인동 기자
[매일일보] 대법원이 최근 펴낸 소식지 ‘법원사람들’ 봄호(3월호)를 통해 지난 20년 간 법원이 개명을 허가한 대표적 유형 12개와 구체적 사례들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과거에는 법원이 개명에 매우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다 보니 신청 건수나 허가율이 낮았지만 대법원에서 1995년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아동에 대한 개명허가 신청사건 처리지침’을 1년간 한시적으로 시행하면서 많은 사람의 호응을 얻은 것이 개명정책 변화의 계기가 되었다.
 
1995년 당시 7만3186명이 개명을 신청해 96%가 허가를 받았고, 이후 개명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바뀌면서 개명 신청이 크게 늘었고 법원 심사도 완화돼 허가율은 점차 높아졌다. 특히 대법원은 2005년 11월 개인의 성명권을 헌법상 행복추구권과 인격권의 한 내용으로 인정하는 판례를 내놓아 개명이 ‘대중화’되는 물꼬를 텄다.
 
당시 대법원은 ‘개명을 인정할 상당한 이유가 있고, 범죄를 기도·은폐하거나 법령상 제한을 회피하려는 불순한 의도나 목적이 개입돼 있는 등 개명신청권의 남용이 아니라면 원칙적으로 허가해야 한다’고 선언해 허가 요건을 완화했다.
 
2007년은 허가 건수 10만건, 허가율 90%를 돌파해 개명 허가가 급증한 ‘분기점’으로 기록됐다. 이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사회 분위기 변화에 따라 대법원도 2008년부터 새로운 심사기준을 도입한 ‘개명허가 신청사건 사무처리지침’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원 소식지 ‘법원 사람들’에 실린 개명 허가 12가지 대표적 유형을 자세히 보면 ‘출생신고서에 이름을 잘못 기재한 경우’는 단순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 많았다. 한자 넓을 홍(弘)을 큰물 홍(洪)으로, 형통할 형(亨)을 누릴 향(享)으로, 가죽 혁(革)을 풀 초(草)로 잘못 쓰거나 한글 이름 방그레를 방그래로 쓴 사례가 있었다.
쌍(雙)경을 우(又)경으로, 강신영을 강신성일로 고치는 등 ‘실제 통용되는 이름과 일치시키기 위한 경우’도 비교적 단순한 개명 사례에 속한다. ‘족보상의 항렬자와 일치시키기 위한 경우’, ‘친족 중에 동명인이 있는 경우’ 등도 비슷한 유형이다.
 
‘부르기 힘들거나 잘못 부르기 쉬운 경우’는 허가 건수가 많은 대표적인 사례다. 지하아민, 김희희, 윤돌악 등의 이름이 법원 허가를 통해 바뀌었다.
 
‘의미나 발음이 나쁘거나 저속한 것이 연상되거나 놀림감이 되는 경우’도 대표적인 사례로 꼽혔다. 서동개, 김치국, 변분돌, 김하녀, 지기미, 김쟌카크, 소총각, 조지나, 이아들나, 경운기, 구태놈, 양팔련, 하쌍연, 홍한심, 강호구, 송아지 등의 이름이 소개됐다.
 
또 ‘악명 높은 사람의 이름과 같거나 비슷한 경우’, ‘성명철학 상의 이유로 개명하고자 하는 경우’도 있었다.
법원 허가를 받아 한자 이름을 한글 이름으로, 한글 이름을 한자 이름으로 각각 바꾸는 경우도 많았다. 외국식 이름을 한국식 이름으로 고친 사례들도 소개됐다. 한소피아아름, 김토마스, 윤마사꼬, 최요시에 등의 이름이 평범한 이름으로 바뀌었다.
 
이밖에 귀화 외국인의 한국식 개명도 적지 않다. 축구선수 샤리체프는 ‘신의손’, 데니스는 ‘이성남’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방송인 로버트 할리는 ‘하일’로, 러시아 출신의 학자·교수인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는 ‘박노자’씨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