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점·선·면으로 이어지는 인연
2025-05-07 아이디룩 이다은 디자인실장
매일일보 | “실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모양이 이렇게 다양한데,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만들어가는 모양은 얼마나 다양할까? 예측할 수 없는 인연의 고리들이 새로운 인생의 모양을 만들고, 방향을 만들고, 우연처럼 보이는 그 한 번의 만남을 위해 시절과 시대와 공간이 모두 그 한 곳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는 거라고.” -경성크리처 4화 中
서로의 손짓과 어우러짐으로 모양을 만들어가는 실뜨기. 실 하나로 만들어지는 다양한 모양과 형태를 보며 점·선·면의 요소를 활용한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두 사람이 만들어나가는 실뜨기인 만큼, 인연이라는 단어도 떠오른다. 점·선·면은 도형의 기초가 되는 기본 요소로 점이 움직인 자리가 선이고, 선이 움직인 자리가 면이 된다. 이에 시각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조형은 점·선·면으로 환치시킬 수 있다. 20세기 추상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화가 칸딘스키는 이들의 특성을 활용한 조형의 무한한 가능성을 일찍이 주목했다. 추상 미술뿐 아니라 디자인에서도 점, 선, 면은 아주 중요한 개념이다. 점·선·면을 직관적이고 자유롭게 활용한 디자이너 입생로랑(Yves Saint Laurent)은 몬드리안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몬드리안 룩(Mondrian Look)’을 선보이며 크게 화제를 모았다. 네덜란드 추상 화가 몬드리안은 주로 직선과 삼원색(빨강, 파랑, 노랑), 무채색만을 이용해 기하학적 추상의 거장으로 꼽히는 화가이다. 1965년 파리 컬렉션에서 입생로랑이 최초로 몬드리안 룩을 발표했으며, 이는 패션과 예술을 접목한 최초의 사례로 패션 사전에도 등재됐다. 몬드리안 룩은 수평선, 수직선, 정사각형, 직사각형 형태의 공간구성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절제된 검정 선 분할에 삼원색이 보여주는 균형감이 돋보인다. 특히 라운드넥과 미디 기장으로 이루어진 컬러 블록(Color Block) 드레스는 예술품 이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프라다(2011 F/W), 발망(2015 S/S), 에르메스(2020 F/W) 등 후대 디자인 하우스에서도 몬드리안 풍의 아트피스를 선보이며, 예술작품을 패션에 도입하고 있다.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김환기는 주로 추상화를 통해 동양적 정서와 현대미술의 조화를 추구했다. 특히 점·선·면의 추상적 표현을 통해 내면의 세계와 우주적 질서를 담아냈다. 그는 광목을 이용해 커다란 캔버스를 만들고 그 전면에 점을 찍기 시작했다. 검은색, 푸른색으로 시작한 점은 점차 노란색, 빨간색으로 넓혀 간다. 이러한 방식은 훗날 ‘점화(點畵)’라 불리며 그를 상징하는 대표작이자 화풍이 된다. 김환기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동양 철학과 미학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했고 항아리, 달, 산, 강, 매화 등 한국적 이미지와 풍경을 단순하게 서양화하여 그려냈다. 그는 ‘점 하나에 우주를 담고 싶다’는 사상을 가지고 작업했으며, 작품을 통해 끊임없이 반복되는 주제로 드러냈다. 그의 작품 속 점과 선은 우주의 기본 원리인 생명의 근원을 상징하며, 이를 통해 관람자에게 내면의 성찰을 유도한다. 아이디어와 영감으로 시작되는 ‘점’, 무한한 변형과 자유로운 적용으로 조형해 나가는 ‘선’, 입체적인 생명력을 불어넣으며 콘셉트를 실체로 펼쳐내는 ‘면’. 아이디어의 첫 시작점이 디자이너라고 한다면, 마침표를 찍는 점은 사용자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점과 점을 연결하는 ‘선’이 바로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본인도 디자이너로서 옷을 디자인할 때 입는 이를 상상하며 드로잉을 시작한다. 나의 마음에서 떠오른 심상이라는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드로잉을 지나, 원단이라는 면으로 완성된 옷을 마주하게 된다. 점·선·면의 단계를 지나 이어진 사용자와 나 사이의 인연은 보통 인연이 아닐 것이다. 입는 이의 착용으로 완성되는 패션 디자인을 보며, 디자이너와 사용자의 인연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신기하고 아름다운 인연에 함께 해주시는 분들께 감사하며 오늘도 펜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