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동인 칼럼] 팔레스타인에도 봄은 올까
2025-05-09 매일일보
셰익스피어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샤일록은 '나쁜 유대인'의 전형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고리대금업자, 탐욕의 화신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셰익스피어는 유대인을 만난 적이 없다. 그가 태어나기 전에 유대인은 영국에서 모두 추방됐다. 다른 나라에서도 지정된 구역(게토)에 갇혀 살았다. 흑사병이 창궐했을 땐 독을 푼다는 소문에 휘말려 대거 학살됐다. 십자군에 도륙되는 등 혼란기마다 희생됐다.
반유대주의(anti-Semitism)의 원래 뜻은 '반(反)셈족'이다. 셈족은 구약에 나오는 노아의 맏아들 셈의 자손. 아랍인과 근동 지역 종족들을 포함하는데 1879년 독일 선동가가 이 말을 유대인만 겨냥해 쓰기 시작했다. 막 통일된 독일의 민족주의 횃불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이 단어가 영어사전에 오른 1881년 이후 1924년까지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은 400만명에 이른다. 러시아 제국 같은 그리스 정교 지역에서도 반유대주의가 커졌다. 유럽의 사회주의 정당들도 유대인을 탐욕적인 자본주의자로 몰아붙였다.
반유대주의 역사는 2000년이 넘는다. 기원전 5세기 이집트에서 유대교 사원이 파괴된 이후 박해가 심해졌다. 근본 원인은 유대인의 독특한 문화와 종교다. 유일신과 선민사상, 생활방식 등이 겹쳤다. 유대인에겐 농업이 금지됐기에 할 수 있는 건 상업과 금융업뿐이었다. 언제 쫓겨날지 몰랐다. 그래서 현금을 갖는 관습이 생겼다. 그게 더 큰 반감을 낳았다.
현대에 와서도 마찬가지다. 미국 월가를 비롯해 세계 금융계를 지배하고, 다이아몬드산업을 독차지하며, 부를 지렛대로 정치·외교를 좌우하는 세계 지배자로 묘사된다. 디아스포라의 고난 속에서 생존법을 체득하는 일을 어릴 때부터 배웠으니 똑똑한 인물도 많이 나왔다. 노벨상 수상자의 30%에 이른다.
유대인을 독자적인 민족으로 보고, 유대인 차별·박해의 궁극적 극복을 유대인 국민국가의 건설로 달성하려는 민족주의 운동을 시오니즘이라 한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시오니즘을 바탕으로 1948년 이스라엘을 건국했고 드디어 기나긴 디아스포라의 고난이 정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건국 과정에서 약 70만 명의 팔레스타인 주민이 현재 이스라엘 땅에서 추방됐고, 팔레스타인의 새로운 고난이 시작되며, 수차례의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또다시 작년 10월 7일 시작 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8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가자지구 보건부에 따르면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으로 사망한 팔레스타인인은 3만3800명이 넘는다. 그리고 지금도 사망자는 계속 나오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7000여 명을 살해한 '미얀마 군부 로힝야족 탄압'을 2022년 집단학살로 규정했다. 가자지구의 민간인 사망률은 미국이 '집단학살'로 규정했던 다른 사건보다 높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라고 말하지만, 일방적인 집단학살이 일어나고 있다. 이 학살극은 언제 끝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