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고달픈 ‘헬조선’, 만파식적이라도 불러야 하는지

2025-05-09     안광석 기자
안광석

매일일보 = 안광석 기자  |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도 한 번 불러봤으면 좋겠다.”

과거 집권여당 수장이었던 모 정치인의 토로다. 만파식적이란 한 번 불면 외적이 물러가고, 가뭄에 비가 내리고, 병자들이 멀쩡해졌다는 신라시대 전설의 피리다. 권력자들의 손을 거쳤다는 만파식적까지 소환해 나라의 근심을 해결하겠다 나설 정도로 필자가 대단한 사회적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정치인이 만파식적을 언급했을 때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경제가 파탄에 이르렀고, 당내 계파정치도 활발해 국론 봉합은커녕 집안 단속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시기였다. 당시까지는 아니더라도 경제가 파탄나고, 정치·사회적으로 사분오열된 자조와 푸념 가득한 작금의 ‘헬조선’ 세태에서는 누구라도 비슷한 꿈을 꿔봄직하다. 예를 들면 현재 같은 고물가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효도도 어렵다. 8일 어버이날을 맞아 모처럼 카네이션을 준비하려고 꽃집정보를 찾아보니 격식 차린 생화 한바구니 가격이 최소 3만원을 훌쩍 넘긴다. 물론 효도에 돈이 전부는 아니다. 다만 의식주 관련 생필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황에 주머니 훌쭉한 젊은층들의 한숨이 들리는 듯할 뿐이다. 경제학에서는 물가가 오르면 정부가 금리를 올린다고 가르치지만 역시 쉬운 문제가 아니다. 잘 조절하지 않으면 경기도 안 좋은 상황에 기업 투자와 소비가 위축되는 ‘돈맥경화’가 온다. 당연히 일자리는 줄어들고, 모두가 목숨 거는 내 집 마련도 어려워진다. 멀리 갈 것 없이 지금의 부동산 시장이 대한민국 사회의 축소판이다. 그렇다면 몸이라도 건강하자라는 목표가 남는다. 그런데 의사들이 의대 증원 문제로 진료를 보이콧 중이다. 21세기 OECD 가맹국에서 일부 환자가 수술비가 있어도 제때 진료를 받지 못해 사망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판도라가 인류에 선사한 최대 선물인 희망이라도 남아 있느냐. 그것도 아니다. 합계출산율 0.6명대라는 경이적인 기록과 함께 저출산에서 파생될 사회문제와 갈등이 엄습해 오고 있다. 미래에 경제 규모는 현재의 절반 이하로 쪼그라들 것이고, 국력은 약해져 국제사회 발언권이 낮아질 것이다. 모처럼 생업에 바쁜 시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머리를 맞댄 연금개혁도 고질적 정쟁에 없던 일이 되면서 미래세대가 짊어질 재정부담은 더욱 커지게 됐다. 선배세대들처럼 6·25 같은 전쟁통을 겪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고달픈지. 이제 국민들은 온갖 외부변수로 인한 충격을 최소화 해 줄 정치인의 등장을 애타게 기다릴 뿐이다. 민생은 파탄났는데 특정인사 특검법 논쟁 등으로 시간을 허비 중인 현 정치권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고 싶다. 우리 손으로 대선과 총선 등을 통해 밀어주지 않았던가. 정쟁으로 얼룩진 구태정치만 지양할 수 있어도 절반은 성공이다. 우리네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판타지에 가까운 만파식적을 더 이상 연상하지 않길 바라며 다음 선거철을 기약해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