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탄 비행기 조종사가 불법파견노동자?

노동부, 대한항공 외국인 조종사 불법파견 조사 준비중…“곧 착수할 것”

2009-10-29     김경탁 기자

노동부가 대한항공의 외국인조종사 불법파견에 대한 사실관계 조사에 조만간 들어갈 예정어서 향후 법적 조치가 어떻게 될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29일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대한항공의 외국인 조종사 불법파견에 대한 사실관계 조사를 위한 준비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관할인 서울남부지청은 물론 본청에서도 조사작업을 곧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대한항공의 외국인조종사 불법파견 문제가 제기된 것은 지난 10월 23일 국회에서 열린 노동부 국정감사로, 이날 국감에서는 대한항공 등 항공업계가 외국인조종사를 불법파견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노동부에서 아무런 조치없이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감에서 민주당 김상희 의원은 항공기 조종사는 파견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파견 허용대상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대한항공이 외국 파견업체를 통해 조종사를 공급받는 것은 불법이라고 지적했고 임태희 노동부 장관은 “사실관계를 조사해 상응하는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답했다.

현행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에서는 파견법을 위반한 파견사업자나 고용주에 대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노동부는 지난 2002년 대한항공의 외국인 조종사 고용이 파견법 위반이라는 판단을 내린 바 있다.

당시 검찰에서는 적용할 법 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불기소처분을 함에 따라 대한항공은 사법처벌을 면할 수 있었지만 2006년 파견법 개정에 따라 검찰이 이야기했던 법적 미비는 해소된 상태이다.

‘비즈니스프렌들리’와 ‘법치주의’를 동시에 표방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하의 노동부가 과연 어떤 판단을 내릴지,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검찰은 또 어떤 식으로 이 문제를 처리할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임태희 장관 “사실관계 조사, 상응하는 법적조치할 것”
노동부, 2002년에 이미 ‘불법파견’ 판정 내린 바 있어

대한항공의 외국인 조종사 불법 파견 문제는 해묵은 문제로, 지난 2002년에 이미 노동부가 ‘파견법 위반으로, 불법파견’이라는 판단을 한 바 있고, 대한항공 조종사노조는 노동부 판단에 근거해 회사를 파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검찰은 대한항공을 불기소 처분했다. 검찰이 불기소처분 근거로 내세운 것은 “불법파견은 맞지만, 국외파견업체를 국내 파견법으로 처벌할 수 없으며, 파견사업주가 국내법 적용 대상이 아니므로 사용사업주 역시 법 적용 대상이 아니다”라는 것이었다

김상희 의원에 따르면 검찰 불기소 처분에 대해 당시 법학자들은 “말도 안 되는 결정”이라며, “특히 해외업체로 위장해 국내에 파견을 하려는 업체가 난립할 것에 대한 규제가 불가능하다”고 반발했다.

부산대 법대 이승욱 교수는 “불법파견을 한 자에 대한 처벌과 불법사업주로부터 파견역무를 제공받은 자에 대한 처벌은 별개의 문제라는 검찰의 의견대로라면, 내국인 불법사업주로부터 파견역무를 제공받는 것과의 불합리한 차별이 된다”고 밝혔다.

순천향대 법대 조경배 교수도 “불법파견을 한 곳이 외국업체라 해도 불법행위를 행한 장소는 우리나라이므로 속지주의 원칙에 따라 처벌할 수 있다”며, “파견법 적용대상을 ‘국내사업주’로 한정해야 하느냐에 대한 해석의 차이는 법의 흠결”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의 황당 불기소처분에 관련법 개정했지만…

검찰의 황당한 불기소 처분에 따라 2006년 노동부는 파견법 위반에 대해 파견사업주와 사용사업주를 각각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파견법 개정안을 제출했고, 그해 11월 30일 국회에서 당시 제종길 열린우리당 의원 등 40인이 제출한 수정안이 의원입법으로 통과됐다.

개정된 법률은 2007년 7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상태로, 개정법에 따라 파견대상 업무를 위반해 역무를 제공받은 자도 사업을 행한 자와 마찬가지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지도록 되어있다.

2002년과는 달리 2007년 7월부터는 대한항공을 불법파견 사용사업주로 처벌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지만 노동부는 대한항공을 파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하기는커녕 사업장 점검조차 실시하지 않고 있다. 노동관계법령 집행에 따라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 노동부가 제출해 통과된 개정 법률을 적용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상희 의원은 “노동자 단체에는 조금의 흠결도 허용하지 않고 과잉대응하면서, 정작 불법파견을 방치하는 편파행정이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외치는 이명박 정부 정책기조의 실체냐”며, “불법행위에 대한 엄정한 법 적용은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하며, 불편부당한 행정을 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또한 “불법파견 사용사업주를 별도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파견법 개정안을 제출한 노동부가 법 적용을 하지 않고 불법파견 사업장에 대한 점검조차 실시하지 않는 것은 법과 원칙을 지키겠다는 정부 방침과도 어긋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상희 의원에 따르면 대한항공이 외국의 용역업체로부터 파견 받고 있는 조종사는 2009년 9월 현재 총 349명으로 대한항공 조종사 전체 2,296명의 15%를 차지하고 있으며, 파견 조종사는 기장이 302명으로 대부분이며, 이는 대한항공 전체 기장 1170명 대비 28.8%에 달한다.

대한항공의 외국인 조종사 수는 불법파견이라는 판정이 내려졌던 2002년에 268명, 이 문제가 처음 사회의제로 나타났던 2005년에 188명이었다. 관련법이 개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노동부가 불법파견을 방치함에 따라 외국인 조종사 수가 오히려 대폭 늘어났다는 말이다.

대한항공 “조종사 수급 문제…아시아나도 마찬가지”

이 문제와 관련해 대한항공 관계자는 27일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외국인 조종사 문제는 조종사 수급의 문제로, 파견업체를 통해 외국인 조종사를 고용하는 것은 아시아나도 마찬가지”라며, “파견법이 개정되는 것이 가장 좋은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상희 의원실 관계자는 같은 날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이 사안의 본질은 대한항공이 실정법을 위반했다는 것으로, 그냥 외국인 조종사들과 직접 계약을 맺으면 되는 간단한 문제”라고 반박했다.

이와 관련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28일 <파이낸셜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우리 회사의 경우, 이전에는 에이전트를 통해 소개받더라도 고용계약을 직접 했었지만 몇 년 전부터 대한항공처럼 파견업체를 통해 고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대한항공의 외국인 조종사 불법파견이 문제되고 있는 것은 조종사노조와 사이의 갈등 때문으로 알고 있다”며, “우리는 노조와 사이가 나쁘지 않기 때문에 이 사안에 있어 제3자라 할 수 있는데, 이번 일로 불똥이 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 측에 따르면 아시아나의 외국인 조종사는 100여명으로 전체의 10% 정도이다.

불법파견, 항공안전에도 악영향

한편 외국인 조종사에 대한 불법파견이 더 문제가 되는 이유는 항공안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에 이 문제를 집중 보도했던 <매일노동뉴스> 기사에 따르면 파견노동자라는 불안정한 신분 때문에 외국인 조종사들은 항공법에 명시된 최소한의 휴식시간만 지킨 채 비행을 하는 등 격무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대한항공 조종사노조 관계자에 따르면 잦은 항공사고로 국제사회에 오명을 떨치던 대한항공에서 사고가 대폭 줄어든 시점은 2000년 조종사 노조 설립을 통해 열악한 노동조건을 완화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그러나 대한항공은 조종사노조 설립에 외국인 조종사 채용확대로 대응했다. 1999년 12월현재 150명이었던 대한항공의 외국인 조종사 수는 2000년 218명, 2001년 283명, 2002년 268명, 2003년12월 240명, 2004년 233명, 2005년 188명이었다.

다시말해 대한항공은 노조가 설립된 2000년부터 외국인 조종사 채용을 급격하게 늘렸고, 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2002년부터 다시 감소하던 것이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힘입은 탓인지 지금은 도로 늘어나 2009년 9월 현재 349명까지 늘어났다는 말이다.

노조 측은 대부분 기장으로 채용되는 외국인 조종사들 때문에 내국인 조종사의 승진기회가 제약되는 효과로 조종사노조의 약화를 낳고 있고, 조종사노조의 약화와 외국인 조종사들의 불안정한 신분은 다시 항공안전을 위협하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고 지적한다.

[파이낸셜투데이=매일일보 제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