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도대체, 왜 '반일'부터 걱정하나  

2025-05-16     조석근 기자
조석근
1980년대생 남학생들은 방과 후면 농구장으로 달려갔다. 너는 서태웅, 나는 강백호. 저기 못 생긴 놈은 채치수. 바로 <슬램덩크> 때문이다. 1996년 10월 30일 마지막 단행본이 나왔다. 시내 서점은 교복 입은 남학생들로 가득했다. 그 시커먼 녀석들이 "왼손은 거들 뿐", "나는 천재니까" 주인공의 명대사를 읊조리며 울고 있었다.  이들이 중고생이던 1990년대는 일본 대중문화 최후의 전성기였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 안노 히데아키 <신세기 에반게리온>, 오시이 마모루 <공각기동대>. 지금도 넘보기 힘든 세계적 애니메이션 대작들을, 고작 청소년들이 불법 비디오로 알음알음 돌려봤다. '덕후' 문화가 그렇게 시작했다. 카세트 테이프는 CD로 뒤바뀌고 있었다. 아무로 나미에, X 재팬은 아이돌 그 자체였다. 기타노 다케시의 <하나비>, 구로사와 아키라의 <카게무샤>를 이어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가 마침내 국내 극장가에서 정식 개봉했다. 수많은 커플들의 문자메시지를 장식한 그 놈의 '오겡끼데스까···."  3040 세대부터 그 시대 대학시절을 보낸 50대까지. 일본 여행이든 소비재든 이들이 주력 소비층이다. 이들 다수가 이번 총선과 지난 총선의 적극적인 민주당 지지자들이다. 2019년 일본 수출규제 당시 '노 재팬' 불매운동에 가장 크게 호응했다.     6070 세대들 중에선 국민의힘 지지층이 많다. 이들은 '반중'에 공감한다. 그럼에도 김용의 <사조삼부곡(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은 다들 잘 안다. 경영이든 정치든 인생이든 온통 <삼국지>로 비유한다. 고도성장기까지 우리나라 외식업의 상징은 중국집이다. 점심 때 짜장면, 탕수육 먹었다고 '친중파'일 리가 없다.  문화는 반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사람의 삶을 구성하는 요소일 뿐이다. 끌렸다가 멀어졌다 다시 가까워지기를 반복한다.   '라인 사태'에 대한 대통령실의 입장은 이렇다. 성태윤 정책실장은 14일 "일본 정부가 자본구조와 관련 네이버의 의사에 불리한 조치를 취하는 일이 절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브리핑했다. 전날 첫 공식 입장에서 빠진 '일본 정부'가 뒤늦게 들어갔다. 아마도 악화된 여론 때문일 것이다.  전날 성태윤 정책실장은 "네이버에 추가적인 입장이 있다면 정부 차원의 모든 지원을 다할 것"이라면서도 "일각의 반일을 조장하는 정치 프레임은 국익을 훼손한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도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게 '반일 몰이'를 할 일이냐"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일이 그렇게 걱정인가. 사람들이 이번 사태에 분노하는 지점은 사실 단순하다. 대통령실을 정점으로 외교부, 과기부 등 정부의 메시지는 자꾸만 국내를 겨냥한다. 이 사태의 근본적 원인은 일본 내각이 제공했다. 우리 기업, 정확히는 네이버가 출자한 라인야후에 대한 총무성의 조치 때문이다. 

사람들은 일본인과 일본 사회, 일본 대중문화의 상상력을 긍정한다. 이미 오랫동안 익숙하다. 일본 우익의 한국인에 대한, 그리고 그릇된 과거사에 대한 인식은? 오히려 부정의 대상이다. 평균적인 한국인들은 이 점을 명확히 구분한다. 그럼에도 국내 보수정치는 도대체 왜, 누구를 위해 '반일'부터 꺼내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