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희망 고문에 그친 ‘사전청약제’ 결국 폐지, 정책 실패는 곧 국민 고통

2025-05-16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박근종

매일일보  |  내 집 마련의 꿈에 부푼 사람들을 ‘희망 고문’하던 ‘공공분양 아파트 사전청약제’가 결국 폐지된다. 아파트 착공 단계에서 시행하는 본청약보다 1~2년 앞선 지구단위계획이 승인된 직후부터 청약받는 사전청약제도는 2009년 이명박 정부 때 처음 도입됐다가 입주 지연 문제를 드러낸 채 2년 만인 2011년 폐기됐다가 실수요자들의 주택 매수세를 묶고 아파트 수요 분산을 통해 집값을 잡겠다고 지난 2021년 7월 재도입한 지 34개월 만에 또다시 폐지한 것이다. 본청약 시기가 기존 계획보다 수개월 이상 지연되면서 사전청약 당첨자들이 주거계획을 세울 수 없다는 비판에 따른 것이다.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지난 5월 14일 공공 사전청약 신규 시행을 중단하고, 기존 사전청약 단지는 당첨자 지원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신규 공급되는 공공분양주택은 사전청약 없이 바로 본청약을 시행하고, 정부는 「공공주택 특별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사전청약 제도 자체를 폐지할 계획이다. 지구 조성과 토지 보상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사전청약을 받다 보니 대부분 사전청약 단지가 토지 보상 지연, 공사비 상승으로 사업이 늦어지기 일쑤였고 문화재나 발굴되거나 맹꽁이 같은 보호종이 발견되면 본청약이 기약 없이 늦어졌다. 사전청약이 도입된 2021년 7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공공에서 진행한 사전청약 물량은 99개 단지 5만 2,000가구 규모인데 13개 단지(13.1%) 6,915가구(13.3%)만 본청약이 완료됐다. 특히 13개 단지 중에서도 사전청약 때 예고한 시점에 본청약을 한 곳은 양주 회천 A24 단지(825가구) 단 한 곳에 그쳤을 뿐이다.  올해 4월 예정이던 경기 군포 대야미지구의 본청약은 2027년 상반기로 3년이나 늦춰졌다. 이 지구의 신혼희망타운 사전청약 당첨자들은 본청약 예정일 2주 전에야 연기 사실을 통보받았다고 한다. 당연히 당첨자들의 자금 조달과 이사 계획이 꼬일 수밖에 없다. 이자 부담은 늘어나는데 당첨 자격을 지키려면 언제가 될지 모르는 입주 때까지 막연하게 무주택 상태를 유지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잘못된 정책을 늦게나마 중단하는 건 다행이지만, 그에 따른 피해자가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국토교통부는 본청약이 6개월 이상 지연된 단지의 사전청약 당첨자에 대한 지원방안을 내놓았다. 본청약 때 계약금 비율을 10%에서 5%로 낮춰 나머지는 잔금으로 납부하게 하고, 중도금 납부 횟수는 2회에서 1회로 조정한다. 또한 본청약이 지연된 단지가 중도금 집단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기로 했다. LH는 사전청약 당첨자가 직접 거주하기를 원하는 주택을 구하면 LH가 집주인과 전세 계약을 맺어 저렴하게 재임대하는 전세 임대를 안내한다. 시장에서는 부동산 시장이 침체한 상황에서 사전청약 공급을 중단하게 되는 경우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다만 정부는 올해 공공분양주택 ‘뉴홈’ 1만 가구를 사전청약으로 공급하겠다고 밝혔으나, 제도 자체를 폐지하면서 아예 없던 일이 됐다. 문제는 사전 청약 제도 폐지가 집값 불안 심리를 더 자극할 우려가 크다. 현재 주택 시장은 고금리에다 건설 원자잿값 급등으로 아파트 신축 인허가 건수가 급감해 신축 아파트 공급 불안 심리를 낳고 있다. 국토연구원(KRIHS)이 지난 4월 23일 발표한 ‘주택공급 상황 분석과 안정적 주택공급 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의 주택 인허가는 39만 9,000가구로 연평균 대비 74.2%였고, 착공은 20만 9,000가구로 연평균 대비 47.3%였으며, 준공은 31만 6,000가구로 73.9% 수준이었다. 특히 지난해 서울의 주택 인허가는 2만 6,000가구로 연평균의 37.5%였고, 착공은 2만 1,000가구로 32.7%였으며, 준공은 2만 7,000가구로 연평균의 42.1%에 그쳐 인허가, 준공, 착공 물량 모두 연평균 대비 절반에도 못 미친 30∼40%대에 불과했다. 이러한 여파로 서울 아파트 매매가가 상승세로 돌아서고, 수요는 늘고 매물은 감소하면서 서울 아파트 전셋값이 1년째 오르면서 일부 단지는 전세 품귀 조짐마저 비친다. 최근 서울의 아파트 전셋값은 집값이 정점에 달했던 2022년에 비해 80%를 이미 넘어섰다. 현실적으로 재개발·재건축에서 속도를 더 낼 수밖에 없다.  국토교통부는 이렇듯 서울 아파트 전셋값 51주 연속 상승하자 다음 주 전세 대책과 주택 공급 활성화 방안을 발표한다. 또 전월세 신고제를 뺀 ‘임대차 2법(계약갱신 청구권 및 전월세 상한제)’과 관련해서 ‘원상 복구’가 옳다는 판단 아래 ‘임대차 2법’에 따른 문제를 완화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부동산 정책은 국민 생활과 직결한다. 때문에 더 치밀하고 정교한 정책으로 더는 정책의 시행착오가 없어야 한다. 지난해 주택 공급 실적에서 19만 가구가 누락되어 혼선을 야기한 실책을 다시는 반복해선 안 된다. 잘못된 통계 때문에 근래의 ‘9·26 공급 대책’과 ‘1·10 부동산 대책’의 신뢰까지 흔들렸다. 정책 방향성을 바꿀 정도의 오류는 아니라는 해명이 있었지만, 사전청약 실패 교훈을 잊어선 안 된다. 사전 청약 제도 실패는 정부의 정책이 잘못되면 그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이 당하게 된다는 또 하나의 교훈적 사례다. 치밀하지 못하고 그럴듯하게 포장만 한 정책은 국민만 힘들게 할 뿐이다. 그동안 탈이 많았던 만큼 사전청약제 폐지 이후를 대비한 철저한 보완 조치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 폐지를 계기로 재건축·재개발 활성화, 양도세 일시적 완화 등 근본적인 처방 없이 눈속임과 임시방편의 꼼수로는 주택 공급시장은 절대로 안정되지 않는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한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