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통화량에도 돈맥경화…금리인하 지연에 뭉칫돈 대기자금行

갈 곳 잃은 시중자금...3월 통화량 역대 최대폭 증가 CMA 84조 돌파 '사상최대'...MMF·요구불예금도 '쑥'

2025-05-16     이광표 기자
시중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투자처를 찾지 못한 대기자금이 늘면서 시중 통화량이 열 달째 증가추세다. 3월 시중에 풀린 돈이 역대 최대폭으로 증가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시점이 불투명해지면서 자산시장이 지지부진하자 투자자들의 자금이 대기성자금으로 몰려들었다. 한국은행이 16일 발표한 '2024년 3월 통화 및 유동성'에 따르면 3월 M2(광의통화, 평잔)는 3994조원으로 전월(3929조9000억원)보다 64조2000억원 늘었다. 1986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 증가 폭이다. 증가율로는 전월대비 1.6% 늘며 2009년 2월(2.0%) 이후 최대치를 보였다. M2는 지난해 5월까지 1999년 이후 24년 만에 처음으로 3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인 후 6월(0.3%)부터 반등에 나서 10개월 연속 올랐다. 전년동월대비로는 4.9% 늘어 전월 증가 폭(3.4%)보다 커졌다. M2의 전년동월대비 증감률은 2021년 12월(13.2%) 이후 17개월 연속 둔화세를 보이다가 지난해 6월부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M2는 현금과 요구불예금, 수시입출식 저축성 예금 등 협의통화(M1)에 MMF, 2년 미만 정기 예·적금, 수익증권, 환매조건부채권(RP) 등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의 통화 지표로 통상 시중에 풀린 통화량을 의미한다. 금융상품별로는 수시입출식저축성예금(+18조6000억원), 정기예적금(전월대비 +12조9000억원), MMF(+10조7000억원), 수익증권(9조2000억원) 등이 증가한 반면, 시장형상품(-4조9000억원)은 감소했다. 경기 주체별로는 가계 및 비영리단체(+35조6000억원)과 기타부문(+9조8000억원), 기업(+7조5000억원)등이 증가했지만, 기타금융기관(-6000억원)은 감소했다. 이지선 한은 경제통계국 금융통계팀 과장은 "피벗(통화정책 전환) 기대가 지속되는 가운데 청년 희망 적금 만기 도래에 따른 수령금이 요구불 예금과 수시입출식저축성 예금 등 투자 대기 상품으로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어 "코스피가 2700선을 기록한 데다 가상화폐 시장도 활기를 띄면서, 당장 투자하기 보다는 지켜보면서 투자하겠다는 대기 자금으로 쏠렸다"고 덧붙였다. 실제 투자자들의 뭉칫돈은 대기자금으로 쌓이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3일 기준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액은 84조2469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06년 이후 최대 규모다.  연초 74조7814억 원 수준이던 CMA 잔액은 미국 채권 금리가 상승세로 돌아선 3월 말 80조 원대를 넘긴 뒤 이달 들어 연이어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CMA는 고객이 맡긴 자금을 증권사가 국공채, 어음 등 단기 금융상품에 투자해 수익금을 돌려주는 계좌다. 하루만 맡겨도 이자를 주고 자유로운 입출금이 가능해 시장 불확실성이 클 때 투자 자금을 잠시 보관하는 용도로 활용된다. 또 다른 초단기 금융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 설정액도 증가 추세다. MMF 설정액은 지난달 30일 197조1372억 원에서 이달 8일 210조8880억 원까지 뛰었다.  최근 사흘간 증가세가 주춤해 13일 기준 204조9101억 원까지 뒷걸음쳤지만, 전월 대비 증감으로 보면 5월 내내 증가 행진을 이어가는 중이다. MMF는 금리가 높은 만기 1년 이내 상품에 집중 투자해 수익을 돌려주는 펀드로, CMA와 마찬가지로 수시로 돈을 넣고 뺄 수 있어 투자 피난처로 꼽힌다. 은행에 머물고 있는 대기성 자금도 늘었다. 지난달 말 기준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수시입출금식 예금을 포함한 요구불예금 잔액은 616조3371억 원으로 집계됐다. 1월 말(590조7120억 원) 대비 25조 원 넘게 급증한 것이다. 그나마 지난달엔 HD현대마린솔루션 등 대형 공모주의 기업공개(IPO) 청약 증거금 등으로 자금이 빠져나간 건데, 돈이 다시 은행으로 돌아오는 이달엔 규모가 더 불어날 수 있다. 최근 투자 관망세의 주된 배경으로는 거시경제 불확실성이 꼽힌다. 연초 시장에선 물가 상승률이 꺾이면서 연준이 6월부터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 기대했지만, 미국 경제가 견조하게 성장하고 물가가 더디게 둔화하며 첫 인하 시점에 대한 전망이 계속 밀리고 있다. 반도체나 저(低)주가순자산비율(PBR)주 등이 최근 힘을 받지 못해 증시를 견인할 주도주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관망 심리를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한편 15일(현지시간) 발표된 미국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의 상승률이 둔화된 것으로 나타나면서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가 다시 치솟은 점은 투자심리 회복에 긍정적 요인이 될 전망이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4월 CPI가 예상치에 부합하면서 추가적인 디스인플레이션(물가 상승세 둔화) 기대가 되살아나고, 통화정책 불안심리도 진정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