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제 역할을 하지 않는 정치는 '사기'다

2025-05-21     조현정 기자
조현정
우리나라의 사기 범죄 발생 건수는 2012년 23만 9720건에서 2020년 35만 4154건으로 급격히 증가했다. 물론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부터 누군가를 속이고 이를 통해 이익을 취하는 행위는 빈번해 왔다. 굳이 형법전을 들춰서 '기망(상대방을 착오에 빠뜨리는 것)'이라는 어려운 단어의 뜻을 찾지 않아도 우리는 크고 작은 사기를 겪으며 살아온다. 하지만 수치로 들이대는 사기 범죄 현황을 맞닥뜨리니 정말 '사기 공화국'이 현실화된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라를 뒤흔들었던 대규모 사기 사건은 끊임없이 일어났다. 1982년 전두환 군사 정권 시절 수천억원 피해 규모의 장영자‧이철희 투자 사기부터 피해액이 5조원에 달하는 2008년 조희팔 금융 다단계 사건, 2019년 라임자산운용과 2020년 옵티머스 자산운용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대규모 전세 사기가 많은 피해자를 절망에 빠뜨렸다. 오죽했으면 한 법률가는 2007년 '사기 공화국에서 살아남기'라는 책까지 펴냈을까 싶다. 저자는 책에서 피해 예방을 위한 '십계명'을 제시했는데 마지막 '자신의 영혼을 구하라'는 대목만 빼면 △사기에 관심을 가져라 △남을 쉽게 믿지 말라 △사람을 잘 분별하라 △거래는 신중하게 하라 △철저하게 확인하라 △법을 너무 믿지 말라 등과 같은 아주 기본적인 법칙들이다. 문제는 이러한 기본적인 것들을 지키지 않아서 피해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책이 출간됐던 2007년 이후 급격히 진행된 기술의 발달로 보이스 피싱, 돌려 막기식 투자 사기, 주식 리딩방 사기 등 알고도 당하는 사기가 급증하고 있다. 남을 쉽게 믿지 않고, 거래에 아무리 신중을 기해도 사람들은 속고 또 속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정치'를 소환한다. 고도화되는 사기 범죄에 맞설 수사 기관의 역량을 키워주고, 법을 재정비해 사기를 예방하고,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역할을 맡기기 위해서다. 또 새로운 유형의 범죄를 예측하고 이에 대비하는 것도 모두 정치의 역할이다. 게다가 행정을 담당하는 정부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정치의 중요성은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최근 전세 사기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 장관이 "예전에는 전세를 얻는 젊은 분들이 경험이 없다 보니 덜렁덜렁 계약을 했던 부분이 있지 않을까 싶다"며 피해자들도 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발언해 파장이 일었다. 논란이 커지자 국토부는 "이전 전세 계약 과정에 허점이 상당했다는 취지"라고 해명했지만, 이미 뱉은 '망언'은 피해자들 가슴에 비수로 박혔다. 국가적 수준으로 문제가 될 사기라면 분명 정부의 책임이 더 크다 할 것임에도 장관의 발언이 이러한 인식 수준이라니 참담하다. 정치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에서 전세 사기 특별법 개정을 놓고 여야가 언제부터 대립하고 있었나. 핵심은 '선 구제 후 회수' 방안에 대한 입장 차이 때문이지만, 빚을 온전히 떠안아야 하는 피해자들은 정치가 제 기능을 해줄 최소한의 조치가 절실하다. 당장 정치가 선거에서 표만 받은 후 제 기능을 방기하며 유권자들을 기망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진짜 '사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