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격해진 AI 패권 각축전에도 ‘기본법’조차 마련치 못한 우리 현실
2025-05-21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매일일보 | 글로벌 인공지능(AI) 시장 패권을 둘러싼 각축전이 갈수록 격해지고 있다. AI 경쟁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글로벌 빅테크(Big-tech │ 거대 기술기업) 간 무한경쟁이 치열해진 양상이다.
챗GPT를 만드는 미국의 ‘오픈 AI’가 지난 5월 13일(현지 시각)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진행된 스프링 업데이트 행사에서 GPT-4의 업데이트 버전 ‘GPT-4o(포오)’를 선보였다. o(알파벳 소문자 o)는 ‘모든’을 의미하는 옴니(omni)에서 따온 것이다. GPT-4o는 기존 모델 대비 처리 속도는 2배 높고, 운용 비용은 절반 수준이다. GPT-4o의 음성 반응 속도는 최소 232ms(밀리초), 평균 320ms로 사람의 실제 대화와 유사하다. 총 50개국 언어를 지원하며 문자, 이미지, 음성을 모두 인식한다. 대화를 하나씩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AI)이 사람의 말을 끊고 끼어들고 실제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대화가 가능하다. 듣고 답하는 반응 속도가 불과 1초 안팎으로 충격 그 자체다. 구글(Google)도 하루 뒤인 지난 5월 14일(현지 시각)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 쇼어라인 엠피씨어터에서 ‘구글 연례 개발자 회의(I/O)’를 열고 자사의 생성형 AI ‘제미나이(Gemini)’를 탑재한 검색 엔진을 정식 출시했다. 검색 엔진에 생성형 AI를 탑재한 것은 구글 검색이 등장한 이후 25년 만에 가장 큰 전환이자 획기적 변화다. 구글은 또 제미나이와 구글 음성 모델을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프로젝트 아스트라(Project Astra)’도 전격 선보였다. 이는 AI가 사람처럼 보고 듣고 대화하면서 이용자의 개인비서 역할을 하는 기능이다. 예컨대 구글 지메일과 구글 문서, 캘린더 등 구글 앱에서 개인 정보를 가져와 이용자의 스케줄을 알려주고 계획을 짜주는 식이다. 이용자들은 앞으로 대화하면서 사진과 동영상 등으로도 검색할 수 있다. 구글은 새로운 이 검색 기능을 올 연말까지 10억 명 이상의 사용자에게 제공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틀 뒤인 지난 5월 16일에는 폴라리스오피스도 클라우드기반 솔루션 ‘폴라리스 오피스 AI’의 AI Write(인공지능 글쓰기) 기능에 신규 AI 모델인 GPT-4o(포오)를 적용했다고 밝혔다. 폴라리스오피스는 지난해 9월 ‘폴라리스 오피스 AI’를 정식 출시했다. 챗GPT와 네이버의 ‘하이퍼클로바X’와 같은 LLM모델과 이미지 생성 모델 스태빌리티AI의 ‘스테이블 디퓨전’ 등 다양한 AI 모델을 기반으로 한다. 워드, 한글 등 문서 포맷을 활용할 수 있고, 클라우드 기반으로 다양한 기기를 동시에 어디서든 사용 가능하다. 지난 5월 9일에는 온디바이스 오피스 AI도 정식 출시했다. 제품 출시로 인터넷 연결이 불가능한 비행기, 야외에서도 AI가 탑재된 오피스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또 문서·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을 원천으로 차단해 보안 경쟁력을 한층 높였다. 중국의 바이두·텐센트 등도 AI 개발에서 놀라운 속도로 약진하고 있다. 14억 명 이상의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AI 로봇·자율주행 등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 오픈AI의 ‘챗GPT’, 구글의 ‘제미나이’ 같은 생성형 AI는 빅데이터를 학습해 텍스트·이미지·동영상 등 다양한 콘텐츠를 내놓고 있다. 추후 업데이트를 통해 시각, 음성과 같은 멀티모달 인터페이스도 제공할 예정이다. AI가 수년 내 감정·윤리까지 갖출 정도로 진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인간을 사랑하는 AI를 다룬 ‘그녀(Her)’라는 공상과학(SF) 영화가 현실이 되는 날이 멀지 않아 올 수도 있다. 지난 5월 13일 마이크로소프트(MS)는 링크드인(LinkedIn)과 함께 제작한 연례 보고서 ‘업무동향지표(WTI │ Work Trend Index) 2024’를 발표하고, AI를 통해 변화한 전세계 업무 동향과 채용 방식에 대한 주요 인사이트를 공개했다. 한국을 포함해 31개국 3만 1,000명에게 물은 결과 전 세계 근로자 4명 중 3명(75%)은 직장 내 업무에서 인공지능(AI)를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 직장인의 AI 활용 비율은 이보다 소폭 낮은 73%를 보였다. MS는 올해가 ‘AI가 직장에서 현실화되는 해’라고 했다. 또한 개인화된 AI 솔루션을 통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경향은 ‘BYOAI(Bring Your Own AI │ 비오에이아이)’라고 불리며, 조직에서 사용자가 자신의 AI 도구를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트렌드를 말한다. 실제로 근로자 78%(한국 85%)는 회사의 지원 없이 AI를 개인적으로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처럼 세계 각국이 치열한 글로벌 AI 전쟁을 벌이며 AI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래 산업 판도를 바꿀 ‘게임 체인저(Game-changer)’라는 판단과 인식에서다. 독일은 2018년 AI 전략 발표와 관련 법 제정에 이어 정부와 기업이 일체가 돼 AI 투자를 강화하고 제조업의 17.3%가 AI를 활용하고 있다. 미국은 2020년 ‘국가 AI 이니셔티브법’ 제정과 함께 AI 분야에 17억 달러(약 2조 3,200억 원)를 투자했다. AI 부작용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자 지난해 10월 AI 개발사가 제품을 내놓기 전 반드시 안전검사를 받도록 하고, AI로 만든 자료에 식별용 워터마크(Watermark) 부착을 의무화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일본은 2023년 5월 정부 차원에서 AI전략회의를 신설했고 지난달 기업용 AI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유럽연합(EU)도 지난 3월 역내 기업을 보호하기 위해 ‘빅테크(Big-tech)’의 거대언어모델(LLM │ Large Language Model) 등에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내용의 ‘EU AI법(AI Act)’을 통과시켜 미·중 주도 글로벌 AI 시장에서 자국 기업 보호막을 형성했다.
그런데도 우리의 현실을 되돌아보면 참으로 답답하고 속 터지며 안타까울 뿐이다. 우리는 국회에서 AI의 개념을 규정하고 AI산업 육성과 안전성 확보의 방향을 제시하는 이른바 ‘AI 기본법’으로 불리는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조차 처리하지 못하고 있으니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오는 5월 29일 21대 국회가 문을 닫으면 법안은 자동으로 폐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