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채 상병 특검법' 거부권 행사…취임 후 10번째
국무회의서 재의요구안 의결…'선수사·후특검' 원칙 정진석 비서실장 "野 일방적 처리, 헌법 관행 파괴"
2025-05-21 조현정 기자
매일일보 = 조현정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 특별검사법(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취임 후 10번째다.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및 경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고 미흡할 경우 특검을 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한 것이다. 거부권 행사에 따른 정치적 부담에도 '원칙론'을 유지한 것으로 보인다.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열고 "이번 특검 법안은 헌법 정신에 부합하지 않다"며 "야당이 일방적으로 처리한 특검법안은 여야가 수십 년 간 지켜온 소중한 헌법 관행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거부권 행사 이유를 설명했다. 정 실장은 "특별검사 후보자 추천권을 야당에게만 독점적으로 부여해 대통령의 특별검사 임명권을 원천적으로 박탈하고 있다"며 "이 또한 우리 헌법의 삼권분립 원칙에 위반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공수처와 경찰이 수사 중이어서 특검 제도 취지에 맞지 않다는 기존 입장도 되풀이 했다. 정 실장은 "현재 경찰과 공수처에서 수사가 계속 진행 중"이라며 "공수처의 수사를 믿지 못하겠다며 특검 도입을 주장하는 것은 자신(민주당)이 만든 공수처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자기 모순이자 자기 부정"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여야 합의로 공수처장 임명에 동의하면서 한 쪽에서는 공수처를 무력화시키는 특검법을 고집하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앞서 한덕수 국무총리는 오전 정부 서울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열고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한 재의요구안을 의결했다. 한 총리는 "이번 특검법안은 절차적으로 야당 단독으로 강행 처리했고, 내용적으로 특별검사 후보 추천권을 야당에 독점적으로 부여함으로써 대통령의 인사권을 침해하고 헌법상 삼권분립에 위배될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우선 윤 대통령이 이번 특검법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야당이 일방 처리했다는 점이다. 국회의 입법권을 존중한다는 대원칙은 어디까지나 여야가 합의한 법안에 한해서이며 거대 야당이 수적 우위를 앞세워 밀어 붙인 법안은 예외라는 게 대통령실의 입장이다. 무엇보다 그 내용도 특검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인식이 확고하다. 경찰, 공수처의 수사가 우선이라며 특검법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9일 취임 2주년 기자회견에서도 "경찰과 공수처가 수사를 진행하고 있고 열심히 진상 규명을 할 것이라고 믿는다"며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면 수사 당국에서 상세하게 수사 결과를 설명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특히 "국민이 납득이 안된다고 하시면 그 때는 제가 특검을 하자고 먼저 주장하겠다"며 '선 수사, 후 특검' 원칙을 재차 강조했다. 대통령실의 입장도 변함이 없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20일 "국회에서 여태껏 여야 합의 없이 특검법이 온 적이 없다"며 "입장 변화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채 상병 특검법까지 포함하면 윤 대통령은 집권 3년차 만에 10번째 거부권을 행사하게 됐다. 앞서 거부권은 양곡관리법 개정안, 간호법 제정안, 노란봉투법·방송 3법, 쌍특검법(김건희 여사 특검법·대장동 50억 클럽 특검법) 등 9개 법안에 대해 5차례 행사했다. 채 상병 특검법은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 주도로 통과했으며 7일 정부로 이송됐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특검법안은 국회로 되돌아가 재의결 절차를 밟게 된다.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는 오는 28일 열릴 예정이다. 재의 요구된 법안의 재표결은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요건이다. 재의결되면 그 즉시 법률로서 확정되고 부결되면 폐기된다. 21대 국회에서는 국민의힘에서 17명 이상 이탈자가 나오지 않는 한 폐기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22대 국회에서는 8표의 이탈표만 나와도 거부권은 무력화될 수 있다. 이에 여야도 채 상병 특검법을 두고 대립을 계속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수사 결과를 지켜보는 것이 먼저라며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후 국회 재표결 절차를 대비, 물 밑에서 이탈표 단속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28일 본회의에서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채 상병 특검법 재표결과 관련해 "당론 수준으로 진행하던 단일대오는 큰 이상 기류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특검법 수용을 압박하며 총력 대응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묻지마 거부권 행사'를 더는 좌시할 수 없다"며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로 야당과 국민을 향해 전쟁을 선포하면 민주당은 모든 방법을 강구해 국민과 함께 윤 정권에 총력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