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시대 역행' 에너지 정책에 발목 잡히는 K-제조
탈탄소 움직임에 'RE100' 새 무역장벽 전력 다소비 기반 제조업 비중 높아 타격
2024-05-22 최은서 기자
매일일보 = 최은서 기자 | 전 세계적으로 탈탄소 움직임이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을 중심으로 탄소 규제를 통해 자국 무역 경쟁력을 높이는 모습이다. 그러나 제조업 중심인 한국은 재생에너지 등 친환경 에너지 사용 여건이 불리한데다 시대를 역행하는 정부의 에너지 정책으로 산업 경쟁력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2일 '한국의 SDG 이행보고서 2024'에 따르면 한국은 최종에너지 소비 중 재생에너지 비중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낮다. 2020년 기준 OECD 평균은 14.9%지만 한국은 3.6%에 그친다. 반면 GDP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미국, 폴란드 다음으로 높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해 제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2030년 재생에너지 발전비중 목표를 30.2%에서 21.6%로 하향조정하며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상황 속 글로벌 고객사들의 공급망을 포함해 탄소중립 경쟁력을 획득하려는 수요가 짙어지면서 수출 기업들의 부담이 가시화되고 있다. 실제 BMW, 볼보 등 유럽 완성차 업체를 중심으로 부품사에 재생에너지만을 사용해 제품을 생산해 납품해달라는 RE100(재생에너지 100% 사용) 요구로 계약이 무산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또 ASML, 마이크로소프트(MS), 애플 등 주요 글로벌 기업들도 고객사에 넷제로 달성을 위한 RE100 이행 등을 요구하고 있다. 탈탄소 움직임에 RE100이 새로운 무역장벽으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 한국개발연구원(KDI)은 한국 기업이 RE100에 동참하지 않는다면 자동차, 반도체, 디스플레이 패널 산업의 수출액이 각각 15%, 31%, 41%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장현숙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위원은 "국제 사회의 RE100 요구가 거세지는 상황에서 수출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이 사용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지 않는다면 수출경쟁력이 하락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 주요국의 RE100 기업들과 달리 국내 RE100 기업들은 전력 다소비 기반 제조업 비중이 높다"며 "이미 16.9%의 제조수출기업이 바이어나 공급망 원청업체들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용 압박을 받고 있으며 단기간 내 RE100 달성을 요구받고 있는 사례가 많아 대응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전세계적으로 법과 제도를 통한 탄소배출량 감축 관련 규제가 빠르게 도입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관련 입법 역시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21대 국회에서는 해상풍력발전특별법과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탄소중립산업 보호 및 경쟁력 강화에 관한 특별조치법안 등이 발의됐지만 논의가 더디다. 정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은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목표 저변에 전제되어야 할 산업경쟁력 강화 전략이 부재해 기후위기 대응 정책과 산업정책이 제대로 연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제조업 기반의 국내 산업부문 탄소중립 전환 전략을 선제적으로 구축하고, 이를 기반으로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입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