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가계 실질소득 큰 폭 감소, 취약계층 위한 핀포인트 대책 시급
2024-05-27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매일일보 | 물가가 고공 행진을 거듭하면서 올해 1분기 가구 실질소득이 7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보다 지출이 더 큰 적자 가구 비율도 2019년 이후 가장 높았다. 고물가가 ‘뉴노멀(New Normal │ 새로운 표준)’이 되면서 물가의 상승 폭 만큼 소득이 늘지 않아 가구 실질소득은 마이너스(-)가 됐고, 가계 살림살이는 더 팍팍해진 것이다.
실질소득이란 화폐금액으로 표기된 명목소득에 물가를 반영한 지표를 말한다. 월급보다 물가가 더 많이 올라 소득이 줄었다고 체감하는 부분이 실제 통계로 확인된 셈이다. 소비를 위해 쓸 수 있는 돈이 그만큼 줄어들면서 당연히 내수 성장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통계청이 지난 5월 23일 발표한 ‘2024년 1/4분기 가계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가구당(1인 이상 가구) 월평균 소득은 512만 2,000원으로 1년 전 505만 4,000원보다 1.4% 증가했다. 하지만 이러한 명목소득 증가에도 물가상승률(3.0%)을 반영한 가계 실질소득은 오히려 1.6% 감소했다. 이는 명목소득이 증가한 것보다 물가가 더 많이 올라 실질소득이 쪼그라든 것이다. 올해 들어 월간 소비자물가상승률(전 년 동기 대비)은 1월 2.8%→2월 3.1%→3월 3.1%→4월 2.9% 흐름이었다. 1분기 기준 2021년 1분기(-1.3%) 이후 3년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선 것으로 2017년 1분기(-2.5%) 이후 7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줄어든 것이다. 가계지출은 398만 4,000원으로 전 년 같은 분기대비 2.5% 증가해 가계수지는 113만 8,000원 흑자로 2.6% 감소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실질소득 중 근로소득은 329만 1,000원(-1.1%)으로 감소했고, 사업소득은 87만 5,000원(8.9%)으로 증가했으며, 이전소득은 81만 8,000원(5.8%)으로 증가했다. 이 가운데 실질 근로소득이 축소한 게 실질소득 감소에 주로 영향을 미쳤다. 지난 1분기 가구당 월평균 실질 근로소득은 -3.9%를 나타냈다. 1분기 기준으로 실질 근로소득이 뒷걸음질한 건 2021년(-2.7%) 이후 3년 만이다. 낙폭은 현재 기준으로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6년 이래 18년 만에 가장 컸다. 근로소득 감소는 삼성·LG 등 대기업의 상여금 감소로 고소득층 급여가 줄어든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소득 계층별로 명목 근로소득 추이를 살펴보면 1~4분위는 증가했지만, 고소득층인 5분위에서 크게 줄어들어 전체 명목 근로소득 감소를 이끌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올 1분기(1∼3월) 소득 하위 20%에 해당하는 1분위 가구의 소비지출은 월평균 131만 2,000원으로 나타났다. 1년 전보다 0.6% 줄어든 규모다. 특히 이들 가구는 식료품 및 비주류 음료(26만 9,000원), 주거·수도·광열(29만 5,000원), 보건(17만 8,000원) 등 필수생계비 분야에 74만 1,000원을 썼다. 세금 등을 빼고 실제 쓸 수 있는 돈인 처분가능소득 95만 5,000원의 77.6%를 필수생계비로 지출한 계산이다. 소득 상위 20%인 5분위 가구의 필수생계비 지출 비중은 크게 줄어들어 16.5%에 그쳤다. 치솟은 물가로 얇아진 주머니는 저소득층에 더 큰 고통을 주고 있다라는 분석이다. 소득에서 비소비지출을 뺀 월평균 처분가능소득은 1.4% 늘어난 404만 6,000원이었고, 처분가능소득에서 소비지출을 뺀 흑자액은 113만 8,000원으로 지난해보다 2.6% 감소했다. 3개 분기 만에 다시 감소세로 돌아선 것이다. 적자 가구 비율은 26.8%로 2019년 1분기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1분기 가구 실질소득이 7년 만에 가장 큰 폭 감소는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전 분기 대비 1.3% ‘깜짝 성장’에 안도해서는 결단코 안 된다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1분기 1.3%의 ‘깜짝 성장’에 고무된 정부는 “한국 경제에 청신호가 켜졌다”라고 반색했다.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비상’이라는 단어가 사라졌다. 1분기 성장은 수출과 내수가 함께 이끌었는데 실제 소비 증가라기보다는 물가상승 및 지난해 4분기 내수 부진에 따른 기저효과 영향으로 봐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반도체로 인한 착시 효과를 경계할 필요가 있다. 수출이 반년 넘게 증가세를 보이고 있지만, 반도체 효과가 컸다. 지난 5월 1일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24년 4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우리나라 4월 수출은 562억 6,000만 달러, 수입은 547억 3,000만 달러로 무역수지는 15억 3,000만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특히 반도체 수출은 56.1% 증가한 99억 6,000만 달러로 6개월 연속 플러스(+) 흐름을 이어갔다. 이렇듯 우리 수출의 18.9%(5월 1~20일 수출입현황)를 차지하는 반도체 경기가 살아나고 있는 것은 환영하고 반길 일이지만 내수 연관 효과가 크지 않은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고물가·고금리·고환율의 ‘3고(高)’에 짓눌린 체감경기까지 따뜻하게 데우기는 부족해 보인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 5월 23일 “수출과 내수 사이에 간극이 있고 내수 안에서도 양극화가 심한 게 아닌가 한다”라고 평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은행과 카드사의 연체 규모가 급증하고 있는 대목은 주의깊게 살펴야 할 부분이다. 지난 5월 2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신용평가기관 나이스(NICE)평가정보에서 받은 ‘개인사업자 가계·사업자 대출 현황’ 자료에 따르면 올 3월 말 기준 3개월 이상 연체가 발생한 ‘상환 위험 차주(대출자)’의 대출 규모는 31조 3,000억 원으로 1년 전에 비교해 53.4%나 급증했다. 국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으로 좁혀 살펴봐도 최근 자영업자들의 연체 증가세가 심상찮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은행에서 1개월 이상 연체된 개인사업자(소호) 대출 총액은 올해 1분기 말 기준 1조 3,559억 원에 달했다. 지난해 1분기 말보다 37.3%(3,683억 원)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 말 기준 카드사들의 연체율도 1.63%로 1년 전(1.21%)보다 0.42%포인트 상승했다. 2014년(1.69%) 이후 9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신용카드 연체가 늘어난 것은 그만큼 궁지에 몰린 이들이 많다는 의미다. 신용카드는 자금 융통이 어려울 때 가장 마지막에 활용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물가는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렵다. 고금리는 물가를 올리고 오른 물가 탓에 금리를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장기화하면 서민은 물론 중산층마저 경제활동이 위축된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지난 5월 21일 발표한 ‘2024년 5월 소비자동향조사 결과’를 보면, 5월 소비자심리지수(CCSI │ Composite Consumer Sentiment Index)가 98.4로 전월 대비 2.3포인트 하락해 기준치 100을 밑돌았다.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소비자동향지수(CSI)중 6개 주요 지수를 이용하여 산출한 심리지표로서 장기평균치(2003년 1월 ~ 2023년 12월)를 기준값 100으로 하여 100보다 크면 장기평균보다 낙관적임을 100보다 작으면 비관적임을 의미한다. 가계의 소득 감소는 소비 부진을 낳고, 이는 내수 악화를 불러와 체감경기를 추락시킨다. 게다가 한국은행은 지난 5월 23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재 수준인 연 3.50%로 동결했다. 지난해 2월부터 11차례 연속 동결 결정이다. 이는 물가상승률이 둔화 흐름을 이어가고 있지만 성장세 개선, 환율의 변동성 확대 등으로 물가의 상방 리스크가 오히려 커졌고 지정학적 리스크도 지속되고 있는 만큼 현재의 긴축 기조를 유지하면서 대내외 정책 여건을 면밀하게 점검해 나가는 것이 유일한 대안이란 판단이다. 이렇듯 금리 인하 시점은 현재로선 더욱 불확실해졌다. 실질소득이 감소한 상황에서 고물가·고금리 추세가 장기화로 이어지면 취약계층에게는 더욱 심각한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자칫 헤쳐나오지 못할 만큼 큰 사회적 문제를 야기할 위험이 큰 만큼 금융당국은 취약계층이 부담을 덜 수 있도록 서둘러 핀포인트(Pin point)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