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김칫국 제대로 마신 '1기 신도시' 재건축
2025-05-28 권한일 기자
매일일보 = 권한일 기자 | "분당 8천호, 일산 6천호, 평촌·중동·산본 신도시 각 4천호씩 최대 4만호를 선도 아파트로 선정한 뒤 내년 특별정비구역 지정, 2026년 시행계획 및 관리처분계획 수립, 2027년 착공, 2030년 입주를 목표로 정비사업을 추진하겠다."
국토교통부와 경기도, 1기 신도시, LH가 머리를 맞대 발표한 '1기 신도시 선도지구' 사업은 이렇게 요약된다. 첫 적용 단지를 둘러싼 관심과 청사진이 연일 보도되고 있고 몇 년째 논의만 거듭해 온 1기 신도시 재건축은 이렇게 급물살을 타는 분위기도 연출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오롯이 수요자 입장일 뿐. 정작 집을 짓는 공급자인 건설사들은 현실적인 문제와 사업성 면에서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과거에는 높은 안전진단 허들로 인해 역설적으로 재건축 단지의 희소성과 경제성이 부각되고 수요·공급자의 관심이 높았지만, 윤석열 정부가 부동산 규제 철폐를 기치로 정비사업 문턱을 대폭 낮추면서 희소가치는 대부분 희석된 상황이다. 실제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수도권 주요 구축 아파트 일대에서 '조합설립인가' 또는 '안전진단 통과' 소식을 접하기 쉽지 않았지만, 최근에는 이런 내용이 적힌 현수막이 식상하게 느껴질 정도다. 현 정부는 출범 후 줄곧 민간 중심의 주택 공급 확대를 내세우고 있다. 반대로 말해 민간 건설사가 앞장서서 인허가·착공에 나서지 않으면 정부의 주택 공급 목표에도 차질이 불가피한 셈이다. 요즘 건설사들은 치솟은 공사비와 높은 조달 금리를 비롯해 미분양 걱정과 기투입된 공사비 회수 문제로 하루하루 촉각을 곤두세운 채 방어적인 경영 기조를 견지하고 있다. 서울 강남 일대 노른자 재건축 단지에서도 시공 원가와 사업성 문제로 공사를 맡겠다는 건설사가 나오지 않아 유찰이 거듭되는 게 현실이다. 기업은 당연히 이윤을 최우선으로 한다. 돈이 안 되면 일을 안 한다는 얘기다. 1기 신도시의 제반 인프라와 교통망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서울 시내를 앞서기 힘든 만큼 수도권 지역으로 분류해 사업성을 판단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기존 최고 15층 아파트가 상당수인 200%대 용적률은 사업성을 더 떨어뜨린다는 평가가 많다. 정부가 특별법을 통해 용적률을 현재의 두 배인 최대 500%까지 완화할 수 있는 길을 열었지만, 상향된 가구 수에 대한 미분양 고민은 그만큼 불어난다. 특히 초고층 아파트가 우후죽순 늘어설 경우, 기존 조합원이 로얄동·고층을 선점하게 될 것이고 일반 분양분에 대한 조망권·일조권 불만과 '닭장 아파트'만 무더기로 지었다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1기 신도시나 3기 신도시 관련 발표가 계속 나오고 있지만 내부에선 사업성 검토 결과, 선제적으로 움직일 필요는 없겠다는 게 결론"이라고 귀띔했다. 국가가 주도하는 1기 신도시 재건축을 위해 법적·정책적으로 넘어야 할 고비는 비교적 순조롭게 풀리는 모습이다. 문제는 칼자루를 쥔 건설사가 자발적으로 나서야만 일단 첫 삽을 뜨고 아파트를 허물고 다시 지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정부가 대대적으로 선도지구 선정 계획을 내놨지만, 민간 건설사의 구미를 당기기 위해선 앞으로도 갈 길이 첩첩산중이다. 국민들은 기념비적인 발표보다 내실 있고 실효성 있는 실행을 원한다. '정책 발표가 서 말이라도 민간이 꿰어야 보배'가 아닐까. 1기 신도시 재건축이 임박했다는 김칫국부터 마시기 전에 선도지구 사업에 뛰어들 시공사들을 위한 당근책 마련이 더 시급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