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유찰률 치솟은 공공공사… "공사비 현실화·투명성 제고 시급"
중대형 SOC 낙찰 2년 새 78.6%→31.0% 급감 공사비 급등 속 '예산 경직·출혈 경쟁' 우려 가중
2024-05-29 권한일 기자
매일일보 = 권한일 기자 | 자잿값과 인건비 등 공사 원가 고공행진으로 민간사업은 물론 정부와 지자체가 발주하는 공공공사(SOC)에서도 유찰이 잇따르는 가운데 공사비 현실화와 입찰 투명성 제고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추정공사비가 2000억원 이상인 기술형 입찰은 경직된 예산 배정과 치열한 경쟁으로 매몰 비용 부담이 크지만 공사비 상향 폭이 낮은 만큼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29일 <매일일보>가 조달청 나라장터 입찰 정보를 분석한 결과, 올해(1월1일~5월29일까지) 개찰된 추정공사비 300억원 이상 중대형 공공공사 71건 가운데 22건(31.0%)만 낙찰 업체가 선정됐다. 이외 개찰 건들은 입찰사가 아예 없었거나 단수 업체만 응찰해 경쟁입찰이 성사되지 않았다. 이 기간 개찰된 공사비 2000억원 이상 대형공사 15건 중 낙찰 건설사가 나온 프로젝트는 동부건설과 남광토건이 경쟁입찰에 나선 부산항 진해신항 준설토 투기장(3구역) 호안(1공구) 축조공사(추정공사비 3760억원)이 유일하다. 올해 유찰된 공공공사 상당수는 일정 규모 이상의 기술형 입찰로 확인된다. 이는 발주 시점부터 설계·시공을 한꺼번에 입찰하는 방식이다. 응찰하는 업체는 원도급 공사뿐 아니라 설계에도 참여하게 된다. 입찰 준비 단계에서부터 설계 비용 등을 부담하면서 발생하는 매몰 비용은 건설사 입장에선 공사비 문제와 함께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분석이다. 현행 공고 입찰제에서 탈락 업체는 공사비의 최대 2% 한도로 입찰 설계 비용을 보상받을 수 있지만, 선제 투입되는 노력과 낙찰 후 수익성을 복합적으로 고려할 때, 응찰에 나서는 업체가 급감하는 양상이다. 통상 대형 공공공사를 도급해 준공하면 굵직한 시공 실적으로 인정받고 공사비 미회수 우려도 없어 업계에선 안정적인 수익원으로 각광 받아왔다. 그러나 최근 1~2년간 자재값과 인건비 등 원가가 급등하면서 공공기관이 제시한 추정공사비가 건설사 입장에선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여기에 제시된 공사비에서 투찰률(%)로 낙찰자가 선정되는 경쟁입찰 방식은 향후 낙찰 시공사에 공사비 적자의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많다. 실제로 공사비가 치솟기 직전인 불과 2년 전(개찰일 기준, 2022년 1월~6월 30일)까지만 해도 300억원 이상 중대형 공공사업 총 56건 가운데 78.6%인 44건이 낙찰됐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통계를 보면, 건설공사비지수(자재·노무·장비비 등 직접공사비 수치화)는 2022년 3월 143.74에서 올해 3월 154.85로, 공공공사에 주로 적용되는 토목공사비 지수는 145.49에서 157.39로 가파르게 올랐다. 올해 들어 유찰된 주요 대형 공공공사는 △강남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 2공구(추정공사비 3170억원) △고양 일산 킨텍스 제3전시장(6199억원) △부산 진해신항 방파호(3516억원) △광주도시철도2호선 7·10공구(3022억원) 등이다. 아울러 서울 대심도 빗물 터널 공사는 거듭된 유찰 끝에 공사비 상향을 거쳐 △강남역 구간(한신공영·설계업체 건화) △도림천 구간(대우건설·한국종합기술) △광화문 구간(DL이앤씨·동명기술공단) 등이 최근 수의계약을 진행했다. 서울 대심도 공사는 전체 추정공사비만 1조4000억원에 달하지만, 반복된 유찰과 재입찰 공고, 부처 간 사업비 조율이 거듭되면서 준공 목표일이 당초 계획보다 1년 지연된 2028년 말로 미뤄졌다. 정부는 올해 가덕도 신공항 사업과 새만금 국제공항 턴키 심의를 비롯해 향후 GTX 추가 노선 및 철도 지하화 등 굵직한 공공공사 주관사 선정을 앞둔 만큼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우선 지난 3월 말 '건설경기 회복지원 방안'을 통해 공공 프로젝트 공사비에 적정 단가를 반영해 공사비를 산출하고 유찰 시 총사업비 조정 협의를 즉시 추진하겠다는 내용 등을 밝힌 데 이어 최근 '공공공사 공사비 현실화 연구 용역'을 추가 공고한 상태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은 "공공공사에서 최소한의 수익률이 보장받지 못한다면 건설사들도 입찰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건설사가 적정한 수익률을 확인할 수 있도록 공공 건축비를 좀 더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