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전세사기특별법·민주유공자법 등에 거부권 행사···취임 후 14번째
농어업회의소법·한우산업지원법에도 거부권 한덕수 "상당한 부작용 우려···거부권 불가피"
2025-05-29 이태훈 기자
매일일보 = 이태훈 기자 | 윤석열 대통령이 야당이 강행 처리한 전세사기피해지원특별법, 민주유공자예우관련법 등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법안 내용에 대한 여야 견해차가 크고, 국가 재정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윤 대통령은 취임 후 14번째 거부권을 행사하게 됐다.
정부는 29일 오후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지난 28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들에 대한 거부권 건의안을 의결했다. 대상은 '전세사기특별법', '민주유공자예우법', '농어업회의소법', '지속가능한 한우산업 지원법'이다.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여 즉각 거부권을 행사했다. 정부는 원칙적으로 여야 합의 없이 통과된 법안을 공포하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특히 전세사기특별법과 민주유공자예우법에 대해선 공포 시 여러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난색을 표한 바 있다. 전세사기특별법은 전세사기 피해자의 보증금 반환채권을 공공이 우선 매입한 뒤 먼저 보상하고 자금을 회수하는 '선(先) 구제, 후(後) 회수'가 핵심인데, 정부는 전세사기 피해자를 신속하게 구제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정부재정 누수로 국민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다른 사기 피해자들과의 형평성 문제도 있다. 민주유공자법은 4·19나 5·18처럼 별도의 특별법이 존재하지 않는 민주화운동 희생자와 가족도 유공자로 예우받도록 하는 법이다. 민주당은 법안이 통과되면 박종철·이한열 열사 등이 비로소 민주유공자로 인정받을 수 있고, 법도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인도적 지원 내용만을 담고 있어 '문제없는 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경찰 7명이 순직한 동의대 사건, 민간인을 감금·폭행한 서울대 프락치 사건 등도 해당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국가보훈부도 "국가보안법 위반자의 경우에도 보훈심사위원회 심의·의결을 통해 민주유공자로 등록이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한 총리는 이날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이같은 우려점을 거듭 설명했다. 먼저 전세사기 특별법에 대해선 "이 법안이 시행되면 임차보증금반환채권 매입에 수조 원의 주택도시기금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며 투입된 비용의 상당액은 회수도 불투명하여 기금 부실화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주거복지 증진 등 본연의 사업은 위축될 수밖에 없으며 그 피해는 무주택 서민 등 국민께 고스란히 돌아갈 것"이라며 "여러 유형의 사기 피해자와의 형평성, 사적자치 원칙 위배 등 여러 문제점을 정부와 여당은 지속적으로 제기했다"고 덧붙였다. 민주유공자법에 대해서는 "민주유공자를 선정하는 기준과 절차가 명확하지 않아 대상자 선정이 자의적으로 이루어질 소지가 크다"며 "민주유공자 예우를 통해 민주주의의 숭고한 가치를 널리 알리고 민주주의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입법 취지를 달성하기보다는 국론 분열과 갈등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총리는 농어업회의소법과 한우산업지원법에 대해선 각각 "지자체에 대한 재정의존도가 높아 관변화할 우려가 높다", "돼지나 닭 등 여타 축종 농가들과의 형평성에 어긋날 우려가 크다"는 거부 명분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상당한 사회적 갈등과 부작용이 우려되는 법안들이 일방적으로 처리된 것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며 "국무위원들과 함께 상기 법안들에 대한 국회 재논의를 요구하는 안건을 심의하고 그 결과를 대통령께 건의드리지 않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의 연이은 거부권 행사로 정부·여당과 야당의 대치 국면은 심화할 전망이다. 국정 동력 확보를 위해 거대 야당의 협조가 필요한 윤 대통령이지만, 한동안 도움을 기대하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이 이날 4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임기 내 공포를 거부한 법안은 총 14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