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물 들어오는 K-방산, 노만 저어야
2025-05-30 서영준 기자
매일일보 = 서영준 기자 | 연일 수주 낭보를 울리며 '세계 4강' 고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던 K-방산이 암초를 만났다. 실력 때문이 아니다. 분단 상황에서 자주국방을 위해 능력을 키워온 K-방산은 세계 무대에서 기술과 성능은 물론 가격 경쟁력도 충분히 인정받았다.
유럽을 중심으로 'K방산 견제론'이 확산되는 점은 변수로 지목되지만 진격을 멈출 정도의 위기로는 아직까지 와닿지 않는다. 수출 영토를 유럽 뿐만 아니라 중동·남미·동남아·미국 등으로 지속적으로 확장해 나가고 있고, 품목도 다양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지난달 친유럽연합(EU) 성향의 폴란드 신정부와 2조원대 다연장 로켓 '천무' 추가 구매 계약을 맺으며 양국 간의 신뢰를 확인했고, 1조원 규모 루마니아 자주포 수주 경쟁도 이르면 다음달 구매 계약을 체결할 것으로 전망된다. 잘 나가는 K-방산에 제동을 거는 장애물은 내부에 있다. 조선업계 대표 라이벌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이 7조8000억 규모의 KDDX(한국형 차기 구축함) 수주를 두고 벌어진 진흙탕 싸움 때문이다. 동종업계 간의 단순한 경쟁이 아닌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이라는 '범죄'까지 연루돼 있어 K-방산의 신뢰에 금을 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들의 갈등은 현대중공업 직원들이 2013년 해군본부 함정기술처에서 한화오션의 전신인 대우조선해양이 만든 KDDX 보고서 등을 취득, 회사 내부망에 공유하면서 시작됐다. 해당 직원들은 군사기밀보호법 위반으로 유죄 판결을 받고 끝났지만, 방위사업청이 현대중공업의 KDDX 입찰을 허용하면서 한화오션이 들고 일어났다. 한화오션은 기밀 유출 과정에서 현대중공업 '임원 개입’이 있었다며 판결문, 형사기록 등을 내세우고 있는 반면 현대중공업은 "악의적 짜깁기 자료"라며 한화오션 관계자들을 맞고소했다. 방산 대기업들 간의 갈등은 그 자체로도 업계 전반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는 퇴행적 행태다. 힘겹게 개발한 기술을 한순간에 탈취당한 한화오션과, 재판 후에도 기자간담회서 직원들이 거론돼 곤욕을 치르고 있는 현대중공업. 잘못을 하나하나 따지는 사이 경쟁사인 해외 방산업체들만이 이 상황을 웃으며 지켜보고 있다. 끝없는 내홍은 모두를 패자로 만든다. 글로벌 시장에서 신뢰도가 떨어지면 상선 수주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K-방산은 중동, 남미, 동남아 등 뻗어 나가야할 지역이 적지 않다. 수출입은행법 개정안 통과로 수출길도 열린 상황이다. 지금은 노만 힘껏 저어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