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중견 건설업계, 부담스런 해외사업 대신 'SOC' 정조준
대형건설사 해외 사업 관련 법정 다툼 부지기수
중견사 사업 무게추 '주택→공공토목' 이동 양상
2025-06-03 권한일 기자
매일일보 = 권한일 기자 | 국내 주택 경기가 불황의 고비를 넘고 있는 가운데 중견 건설사들이 공공공사(사회간접자본·SOC)를 대안 삼아 집중하고 있다. 해외 사업의 경우 진행 과정에서 각종 리스크를 떠안아야 하는 부담이 있고, 최근 국내 공공 발주 사업의 공사비 상향 조치도 인식 개선에 한몫하는 분위기다.
3일 해외건설업계에 따르면 작년 연말 기준으로 우리 건설사들이 해외 발주처에서 1년 이상 못 받은 장기 미수금은 약 1조5000억원에 달한다.
해외 사업 미수금 발생 사유로는 발주처의 재정 악화(61.43%)가 가장 많았다. 합의 지연(12.90%), 전쟁, 쿠데타 등 국가위험(9.05%)이 뒤를 이었다. 국가별로는 이라크(53.47%), 이집트(12.77%), 베트남(9.43%), 리비아(6.45%), 인도(4.11%) 등 우리 기업의 수주 텃밭인 중동에 집중됐다.
시공 능력 상위 10대 대형건설사들의 지난 1분기 사업보고서를 보면, 해외에서 진행 또는 중단된 사업에서 발주처와의 갈등으로 소송 또는 중재 중인 사안은 총 77건이다.
이는 각 건설사분 소송가액만 20억원(삼성물산 150억원 이상)이 넘는 중대 사안만 공시된 것으로 소액 소송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소송 내용은 △공사비 미지급 △설계변경에 따른 추가 비용 미지급 △공사 진행 중 부당계약해지 손해 청구 △공기 지연에 따른 비용 보상 △공사대금에 대한 관세 및 부가세 환급 청구 등 다양하다. 최초 소장 접수 후 10년 넘게 법적 다툼이 진행 중인 사안도 상당수 확인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형건설사에 비해 해외 경험이 없고 자금력과 대응 여력 또한 부족한 중견 건설사 입장에선 해외 사업 추진이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주요 중견 건설사들은 공사대금 미지급 또는 사업 중단 위험성이 낮고 금융비용 조달은 상대적으로 수월한 공공 발주 사업 수주에 적극 나서고 있다.
동부건설은 공공사업을 확대하는 대표적인 중견 건설사로 꼽힌다. 이 회사 토목사업부는 국내외 도로·교량·항만 등 각종 토목 프로젝트에서 높은 시공 실적과 기술력을 갖췄다고 평가된다. 특히 최근 주택 부문 실적 감소분을 상쇄하기 위해 공공 수주에 매진하는 양상이다.
지난 반년여 간 동부건설 토목사업부가 단독 또는 컨소시엄 주관사로 참여해 수주한 공사비 300억원 이상 중대형 공공공사는 △대전 정림중~사정교 간 도로공사(총공사비 570억원) △서울대 사회대 16동 리모델링·혁신센터 증개축 공사(364억원) △경기 월곶~판교 복선전철 제2공구 노반신설 기타공사(2819억원) △천안 대한민국 축구종합센터 신축(845억원) △인천 연수 인천발 KTX 송도역사 증축 기타공사(371억원) △광양 여천항 낙포부두 개축공사(1600억원) △부산항 진해신항 준설토투기장 1공구(3760억원) △서울 양천우체국 복합청사 공사(1938억원) 등 8건에 달한다.
한신공영도 기존 주택사업 위주에서 공공 프로젝트로 사업망을 확장하고 있다. 올해 3월부터 이 회사가 단독 또는 컨소시엄으로 수주한 공공공사는 △경부선 천안~소정리간 눈들건널목 입체화 공사(331억원) △강원 정선 임계~동해 신흥 도로공사(701억원) 등이다. 또한 기수주한 △포항삼척철도 △서울도시철도 9호선 4단계 연장 사업 등에선 설계변경을 거쳐 공사비를 1000억원 이상 증액했다.
HJ중공업 건설부문은 △신분당선 광교~호매실 복선전철 제1공구 건설공사(1976억원) △부산진해 경제자유구역 명지지구 2단계 2공구 조성공사(867억원) △고양~서울 간 통일로 우회도로 건설공사(666억원) 등의 공공사업을 신규 수주했다. 또한 △인천공항 주변전소C 등 10동 시설공사(384억원) △경기 광명~서울 간 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381억원) 등은 추가 증액을 공시했다.
이 밖에도 금호건설은 지난해 말 월곶~판교 복선전철 제9공구 노반신설 기타공사(안양 비산동~성남 분당 구간·2720억원), 공주 천연가스발전소 건설공사(224억원) 등의 공공공사를 수주했다. KCC건설은 한국전력공사의 '500㎸ 동해안 변환소 토건공사 사업(1312억원)으로 공공사업 수주고를 쌓았다.
대보건설은 토목 사업 역량 강화를 위해 DL건설에서 27년간 토목 업무를 수행한 김준호 상무를 토목영업 본부장으로 신규 영입했다.
한 중견건설사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해외 사업은 자본력과 인력풀 등에서 한계점이 많아, 차별화된 노하우를 갖춘 일부 분야 또는 알짜 프로젝트가 아니면 엄두를 내지 못한다"면서 "공사비 상승으로 국내 공공공사 또한 꺼려졌지만 최근 정부 주도의 공사비 현실화 조치 후 입찰에서 개선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