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PF 정상화 ‘속도전’…M&A 규제 풀어 부실 저축銀 정리
PF 부실·고금리 장기화 속 M&A로 출구전략 기대
신속한 구조조정 초점...금융지주 역할론도 재부상
2025-06-04 이광표 기자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시장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며 저축은행업권의 어려움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금융당국이 M&A 활성화를 위한 추가 규제 완화 등을 모색하고 있다.
금융당국이 금융권 내 유동성 위험 확산을 방지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어서, 주요 금융지주의 역할론이 재부상할 수도 있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수도권 저축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이 금융감독원 내부 관리 기준(10~11%)보다 높아도 M&A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수도권 저축은행이 부실화되기 전에도 M&A가 가능해진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현재는 비수도권 저축은행 대주주가 수도권 저축은행을 M&A할 경우 인수 후 영업 구역이 2곳 이하여야 한다. 다만 부실화로 구조조정 대상이 된 수도권 저축은행이 인수 대상이라면 영업 구역 제한 규정에 예외를 둔다. 저축은행의 영업 구역은 수도권 2곳(서울, 인천·경기)과 비수도권 4곳(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강원, 광주·전라·제주, 대전·세종·충청) 등 6곳으로 나뉜다.
금감원은 자본적정성이 양호하더라도 향후 건전성이 악화할 여지가 있는 수도권 저축은행에 예외 조항을 확대 적용하는 방식을 거론하고 있다. BIS 비율이 부실 우려에 근접한 수도권 저축은행이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지난해 말 기준으로 BIS 비율이 금융당국의 권고치 이하에 근접한 수도권 저축은행인 페퍼저축은행(11%), 제이티저축은행(11.4%), 오에스비저축은행(11.6%) 등이 완화된 규제를 적용받을 수 있다는 관측이다.
저축은행 M&A는 금융지주 계열사 위주로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금융지주가 든든한 뒷배로 있는 저축은행이 된다면 부동산 PF 등 리스크 높은 대출 대신, 서민금융 비중을 높이고 박리다매식으로 이익을 낼 수 있다는 논리다. 금융지주 입장에서도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할 기회다. 당장 성과가 필요한 금융지주라면 수도권 대형사를 인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가계대출을 적극적으로 취급하는 곳은 대체로 자금력 있는 금융지주 산하 저축은행이었다.
올해 1분기 말 기준 신한저축은행의 가계대출 비중은 77.2%로 집계됐고, KB저축은행은 전체 여신 잔액 중 74.5%가 가계대출이었다. 이와 달리 전국 저축은행 79곳의 평균 가계대출 비중은 38%에 그쳤다. 업계 1·2위인 SBI·OK저축은행의 가계대출 비중도 각각 52.9%와 46.8% 수준이었다.
금융당국이 규제 완화 카드를 꺼낸 건 저축은행 업계의 구조조정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고금리 장기화와 부동산 PF 부실에 연체율이 치솟았고, 이에 대비해 대규모 충당금을 쌓으며 실적도 악화했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저축은행 업계는 총 1543억원의 순손실을 냈고, 연체율은 8.8%를 기록했다. 과거 저축은행 사태의 여파가 이어지던 2015년 말 연체율(9.2%)에 근접한 값이다.
이런 가운데 저축은행 M&A는 한참동안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지난해 7월 금융위원회가 ‘저축은행 대주주변경·합병 등 인가기준’ 개정안으로 한 차례 M&A 규제를 완화했지만 현재까지 성사된 M&A는 0건이다. M&A 혜택이 비수도권 저축은행에 맞춰져 있다는 평가도 영향을 미쳤다. 개정안에 따르면 수도권 저축은행은 BIS 비율이 7% 미만으로 떨어져 적기시정조치 대상일 때만 규제 완화 적용이 가능하다.
저축은행 업계는 규제 완화를 대체로 반기는 분위기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저축은행의 자체적인 구조조정이 수월해진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금융지주는 내부통제나 리스크 관리에 역량을 쌓아왔기 때문에 사모펀드·외국계에 비해 금융지주가 대주주로 있는 방식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규제 완화에 따른 저축은행 대형화에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솔로몬저축은행이 2002년 골드저축은행, 2005년 한마음저축은행, 2006년 나라저축은행, 2007년 한진저축은행 등 부산·경기·호남 지역 저축은행을 잇달아 인수하며 업계 1위로 올라섰지만 저축은행 부실 사태를 맞으며 2013년 결국 파산했기 때문이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서울 마포 프론트원에서 열린 대출 갈아타기 서비스 간담회 직후 취재진과 만나 “조그만 것(저축은행) 하나 터지는 상황과 덩치가 큰 것이 터지는 상황은 영향력이 다르다. 이런 관점에서 저축은행 M&A를 보고 있다”며 “필요하면 (규제 완화를) 검토해 볼 수 있지만 지금 단계에선 생각하지 않았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