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서울 아파트 매매 ‘쑥’, 전·월세 거래 ‘뚝’…서민 주거 사다리 ‘흔들’
매일일보 | 최근 한두 달 사이 서울 아파트 매매량이 ‘쑥’ 증가하면서 회복세를 보이는 가운데, 전·월세 거래량은 ‘뚝’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공급부족 우려 증대에 따른 전·월세 가격과 매매가격 상승이 지속되면서 기존 임대차 수요가 매매시장으로 돌아선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서울 전셋값이 1년이 넘게 뜀박질하자 임대차 시장에서 매수 시점을 저울질하던 실수요자가 아파트를 사들이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5월 3일 서울시 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4월(계약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량은 총 1만 5,442건으로 집계됐다. 전세가 9,441건, 월세는 6,001건이었다. 이는 지난 2021년 2월 1만 5,018건 이후 3년 2개월 만에 가장 적은 기록이다. 반면 지난 4월 서울 아파트 매매는 4,343건으로 집계됐다. 3월의4,208건에 이어 두 달 연속 4,000건 대를 기록했다.
지난달 거래량은 이날 기준 2,583건으로, 부동산 거래 신고 기한(30일)이 아직 남은 점을 고려하면 4,000건을 웃돌 것이란 관측이다. 강남, 성동 등 일부 지역에선 신고가 거래가 속출했다. 연내 금리 인하 기대와 종합부동산세 등 부동산 세금 완화 추진 소식에 부동산시장이 바닥을 다지고 오름세로 돌아섰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아파트 공급난 우려와 전셋값 고공행진 등이 맞물려 상승론에 힘을 싣고 있다.
이에 반해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셋값 불안이 계속 가중되고 있다. 고분양가·고금리로 내 집 마련을 미룬 수요가 전세로 몰린 데다 ‘전세 사기’ 트라우마로 중소형 아파트 수요 증가가 겹쳐 전셋값 상승으로 이어진 탓이다. 그러나 정부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러다가는 서민 주거 안정은커녕 부동산 가격 안정까지도 다 놓칠 판이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5월 4주 차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0.1% 올라 54주 연속 상승했다. 이는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12년 이후 세 번째로 긴 상승 기간이다. KB부동산 등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지난달 5월 27일 기준 6억 58만 원으로, 1년 전인 지난해 5월 5억 2,322만 원보다 14.8% 올랐다.
이사이 전셋값이 수억 원 오른 단지가 서울뿐 아니라 수도권과 지방 도시에서도 속출하고 있다. 4년 전과 비교해도 대표적 부촌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나, 서울 집값의 마지노선으로 인식되는 이른바 ‘노도강(노원·도봉·강북)’ 등 지역을 가리지 않고 전셋값이 급등했다.
전셋값 상승은 전세를 끼고 집을 산 뒤 시세차익을 노리는 갭투기를 자극하는 불씨로 작용한다. 나아가 전셋값 상승은 향후 더 확대될 우려도 커지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 등으로 신규 공급이 줄고, 보증금 5% 이내에서 ‘4년 주거’를 보장한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 5년 차를 맞이하면서 집주인들이 전셋값을 한꺼번에 올리려는 기류도 보이고 있다.
최근 전셋값이 상승하는 가장 큰 요인은 ‘2+2년’의 임대차계약이 처음 만료되면서 임대인이 지난 4년간 오른 전셋값을 한꺼번에 인상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 2년을 추가로 살았기 때문에 임대인은 현재 세입자와 재계약을 하든, 새로운 세입자와 계약을 하든 시세만큼 전셋값을 올릴 수 있다. 게다가 전셋값 자체도 많이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코로나19 엔데믹 직후 고금리로 주택시장이 침체하면서 주택 매매 수요가 전세로 눌러앉고 있어서다.
설상가상으로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책 부실도 전세 수요자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전세사기 지원 특별법」에서 보듯 땜질 처방이 대부분이다. 지난해 6월 특별법이 시행됐지만, 피해를 인정받기부터 쉽지 않다. 피해자로 인정받고 피해주택을 경매에서 낙찰받았더라도 정부가 공언한 경락자금 저리 대출은 은행 문턱에서 막히고 있다. 겉보기엔 여러 지원책이 있지만 피해자들은 ‘빛 좋은 개살구’라는 하소연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파트 신규 입주 물량 감소가 기름을 붓고 있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신규 입주 물량은 지난해 36만 5,963가구였는데 올해 입주 물량은 33만 1,729가구로 전년 대비 9.32% 감소가 예상된다. 심지어 내년엔 24만 1,785가구에 그쳐 2013년 19만 9,633가구 이후 최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무엇보다도 서울 아파트 신규 입주 물량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올해 2만 3,786가구로 지난해 3만 2,759가구보다 무려 27.39%나 줄어들 것이라 예상된다. 2025년엔 2만 3,000가구, 2026년엔 3,200가구로 더 줄어들 전망이다. 결국 한정된 땅덩이에서 아파트 신규 공급의 최대 해법이라 할 수 있는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공사비 급등과 주택시장 침체 등의 문제로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2026년까지 주택 공급량이 부족한 것까지 고려하면 앞으로도 2~3년간 전셋값 상승이 이어질 공산이 크다. 따라서 정부는 임대주택 공급 확대로 전세 수요를 분산시키는 등 아파트 전세 수급 불균형 완화에 초점을 맞춘 특단의 대책을 서둘러 내놔야 한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전셋값이 많이 떨어져 집주인들이 하반기에 4년 치를 한꺼번에 올린다 해도 보증금 부담이 그다지 많이 늘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최근 들어선 전셋값이 1년 넘게 오르고 있는 데다 추가 상승이 우려되고 있어 공급부족에 따른 집값 상승 전망에 무게가 실리면서 실수요자들 사이에서 “차라리 내 집을 마련하자”라는 심리가 크게 퍼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는 서민들이 오른 전세금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전세보증금을 안심하고 돌려받는 것도 쉽잖은 상황이 됐다.
한국에서 ‘전세 제도’는 내 집 마련을 위한 ‘주거 사다리’이지만, 공적 금융시스템과 사인 간 금전거래, 주택 공급과 금리 전망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 있다. 무엇보다도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을 구제책으로만 보지 말고 대승적인 견지에서 서민 주거와 부동산시장 안정 대책으로 봐야 한다. 정부는 전세시장 안정 대책을 하루빨리 서둘러 내놓아야만 한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