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귀시 선처’에도 사직 전공의 묵묵부답… 속내는 ‘갈팡질팡’

‘고학생 출신’ 전공의, 생활고에 대리 기사·배달 알바까지 투쟁엔 동의, 생계 수단은 막막… ‘의정갈등 해소’ 학수고대

2024-06-10     이용 기자
대구

매일일보 = 이용 기자  |  정부가 의료현장에 복귀하는 전공의들에게 불이익이 없을 것이라 약속했지만, 사직 전공의들이 여전히 투쟁 의사를 불태우고 있다. 다만 일부 전공의들은 생활고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복귀도, 투쟁도 망설이고 있다.

10일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의 의대증원 정책에 항의하기 위해 대한의사협회가 회원들을 대상으로 투표를 실시한 결과 오는 18일 전면휴진에 나선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도 오는 17일부터 응급실과 중환자실 등 필수 부서를 제외한 전체휴진을 결의했다. 의협과 의대교수 단체는 투쟁 이유에 대해 사직 전공의를 보호하겠단 명분을 내세운다. 임현택 의협 회장은 어제(9일)도 정부를 향해 "전공의와 의대생들에게 용서를 구하라. 현 의료농단 사태의 책임질 자들을 즉시 파면하라"고 촉구했다. 이미 정부는 복귀 전공의에 대해 선처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어제 한덕수 국무총리에 이어, 오늘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도 복귀한 전공의에 대해 어떠한 불이익을 주지 않을 것이라 약속했다. 정부는 이미 지난 4일부터 각 병원에 전공의의 사직서 수리 금지 제한을 해제한 상태로, 사직 전공의들은 이제 다른 병원에서 일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절대 다수의 사직 전공의들은 현장에 돌아오지 않는 중이다. 실제 의협이 실시한 집단휴진 투표에 참여한 7만800명 중 전공의는 5835명, 군의관·공보의·사직전공의 등 기타는 6323명이다. 투표 참여 인원 90.6%가 ‘강경 투쟁에 찬성한다’고 응답한 만큼, 전공의 사이에서도 투쟁 참여 여론은 더 크다. 이에 대해 사직 전공의 P씨는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경제적 형편이 여유로운 전공의들은 투쟁에 적극적이다. 최근 의사들은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난 경우가 많다. 집세나 생활비로 골머리를 앓을 이유가 없으니, 사태 장기화에도 의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복귀 의사 유무와는 별개로, 일부 전공의들은 의정 갈등이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 곤란을 겪는 형편이다. 이들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생계수단이다. P씨에 따르면, 특히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고학생 출신 전공의들은 당장 거주지부터 고민하는 실정이다. 병원 기숙사는 본래 수가 적은데다가, 일부는 이번 사태에 방을 빼기도 했다. 서울에 마땅한 거주지가 없는 전공의들은 적게는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대의 보증금과 함께 기숙사보다 비싼 집세를 당장 지출해야 하는 신세가 됐다. 가정을 꾸려 자녀가 있는 전공의는 생계가 더욱 막막한 처지다. 일부는 배달 라이더, 대리 기사, 수험생 과외 등에 종사하기도 한다. 사직 전공의 C씨는 “전공의 월 급여는 400만원 내외로, 사실 적은 돈은 아니다. 다만 고학생 출신은 비싸기로 소문난 의대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 하고, 의사 아들 뒷바라지 해주던 부모님께 용돈도 드려야 해 빠듯하다”고 토로했다. 한 식약처 관계자는 “정부 부처 업무는 업무 강도도 높고 임금도 비교적 적어서 원래 고임금 의사들에겐 인기가 없었다. 그런데 최근 일부 의사들이 업무 내용을 묻거나, 어떻게 취업하는지 물어보는 경우가 있었다”고 말했다. C씨는 "(사태가) 금방 끝날 것으로 여겨 용돈벌이 겸 단기 알바를 해왔는데, 이젠 안정적인 수익을 위해서 장기 알바를 구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실제 의협은 장기 사직으로 생활고를 겪는 전공의들에게 100만원씩 지원하는 생계지원사업을 진행했는데, 전공의 2900여명이 신청한 것으로 나타났다. 선배 의사와 전공의를 일대일로 연결해 무이자나 저금리로 매달 25만원씩 빌려주는 사업에는 전공의 약 390명이 지원했다. C씨는 “생활고에 시달리는 전공의들이 복귀할 마음이라도 생기면 다행이다. 이젠 의정 간 자존심 싸움이 돼버려서, 복귀 불이익이 사라진 지금도 돌아오지 않겠단 전공의들이 많다”라며 “이젠 윗사람들간 기싸움이 빨리 정리되기만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한편,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10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통해 개원의의 진료거부 행위에 단호하게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조 장관은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비상진료체계가 17주간 지속됐다"며 "국민과 환자의 불편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어제(10일) 의협이 집단 진료거부 계획을 선언한 데에 깊은 유감과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고 전했다. 이날 중대본은 의료 집단 진료거부에 대한 대응방안을 논의했으며, 논의 결과에 따라 개원의에 대한 진료명령과 휴진 신고명령을 발령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각 시도는 의료법 제59조제1항을 근거로 각 시·도는 관할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집단행동 예고일인 18일에 진료를 실시하라는 진료명령을 내렸다. 명령에도 불구하고 당일 휴진하려는 의료기관은 3일 전인 6월 13일까지 신고해야 한다. 조 장관은 “의료계 전체의 집단 진료거부는 국민과 환자의 생명권을 위협하는, 절대 용납될 수 없는 행동”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