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싸는 개미들...'박스피'에 지쳤는데 정부는 시장 혼란 부추겨

韓 주식 팔아 해외로...美 주식 순매수 규모 역대최대 산유국 희망고문에 관련주 급등락...개미들만 뒤통수

2024-06-10     이광표 기자
 
10일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올해 들어 국내 증시가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면서 국내 증시에서 투자자들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정부의 규제 완화와 낙폭 과다 인식 등의 이슈,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제도 도입 등으로 잠깐 반등한 것을 제외하면 올해 증시는 연속 박스권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일각에선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을 꼬집고 있다. 올해 들어 '밸류업'을 외치며 증시 부양에 나섰던 정부가 최근엔 실체없는 '산유국'의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시장 혼란을 부추겼고, 관련주에 투자했던 개미들은 뒤통수를 맞는 형국이 되버렸다. 이미 '박스피'에 지친 동학개미들은 해외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국내 투자자의 해외 주식 순매수액이 빠르게 증가하는가 하면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중에서 잘 팔리는 상품의 대부분도 해외 주식형 상품인 것으로 나타났다. 9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올해 초부터 지난 5일까지 국내 투자자들이 해외 주식을 순매수한 금액은 65억 5866만 달러(약 9조 50억원)로 집계됐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올해 해외 주식 순매수(매수가 매도보다 많은 것)는 2022년 118억 8983만 달러(16조 3247억원)를 넘어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부진한 국내 증시와 달리 해외 증시는 호황이 이어지고 있다. 코스피는 올해 초부터 지난 5일까지 불과 1.01% 상승했고, 코스닥은 3.91% 하락했다. 같은 기간 미국 나스닥은 15.43%,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은 12.17%를 기록하며 말 그대로 날아올랐다. 지난달 말 국내 투자자의 외화증권 보관액은 1200억 5200만 달러(162조 8505억원)를 기록했다. 역대 최고치인 것은 물론 1200억 달러대로 진입한 것 역시 처음이다. 해외 주식이 인기를 끌면서 국내 ETF 시장에 새로 등장하는 상품도 대부분 해외 증시와 관련된 ETF다. 코스콤 ETF 체크에 따르면 국내 개인투자자들이 주로 투자하는 상위 50개 ETF 상품 중 해외 ETF는 34개에 달한다. 특히 상위 10개 중 7개는 모두 미국 주식형 상품이다. 개인이 상위 50위 ETF에 투자한 총금액 6조 8644억원 중 무려 73%(5조 413억원)는 해외 ETF에 투자했다. 증가세 역시 해외 ETF가 압도적이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해외 ETF 순자산총액(AUM)은 지난해 말 28조 2578억원에서 지난 6일 기준 42조 6716억원으로 50%가량이나 늘어났다. 같은 기간 국내 주식 ETF의 AUM 규모는 92조 8094억원에서 103조 6724억원으로 12% 느는 데 그쳤다. 박윤철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시에 상장된 해외 ETF 투자가 늘었다는 건 개인투자자들이 해외 투자 규모를 늘렸다는 것”이라면서 “해외 주식시장에 눈을 돌리는 개미 수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최근 정부가 직접 나서 시장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3일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마이크를 잡고 동해에 다량의 가스·석유 매장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 발단이었다. 이후 관련 테마주가 급등락을 반복하며 투자자들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20%의 가능성만 보고 판단하기에는 이른 시점'이라는 경고를 내보냈지만 대통령의 공식적인 브리핑 한마디가 시장 혼란을 야기시켰다는 지적이다. 실제 경북 포항 영일만 일대 심해에 매장된 석유·가스 개발 기대감으로 관련주들이 일제히 급등했다가 하락하는 등 주가가 롤러코스터 흐름을 보이고 있다. 불확실성 증대에 투자심리가 위축된 것으로 변동성이 높아지면서 테마주 양상 우려도 커지고 있다. 1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한국가스공사와 대성에너지 등 석유·가스 관련주들은 지난주 주가가 급등락하며 롤러코스터 흐름을 보였다. 정부 발표에 한때 급등세를 보였지만 이후 시추 성공에 대한 불확실성 증대와 분석에 대한 의문 제기로 다시 급락했다. 동해 심해 석유·가스 시추 개발 기대감에 급등했던 이들 종목들의 주가가 며칠 만에 하락한 것은 불확실성에 대한 냉정한 시각이 작용했다. 시추 진행 전까지는 매장량을 알 수 없고 탐사 비용과 시간 등을 고려했을 때 불확실성이 크다는 판단에 투자심리가 위축된 것이다. 이에 테마주로 변질 되지 않으려면 과도한 주가 변동성이 완화돼야 한다면서 투기성 매매를 자제하면서 옥석가리기를 통한 신중한 투자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번 장세가 지난해 '2차전지', '초전도체' 테마주 장세의 연장선이라는 의견도 있다. 확실한 근거 없이 폭등했다가 어느 순간 매수세가 사라지면서 끝나 버리는 광풍(狂風)일 뿐이라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왜 대통령이 얘기하냐"고 되물으며 "어디까지 언제까지 올라갈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하지만 '시장이 망가진다'는 결론은 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