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투표’ 밀어붙이는 정부에 상장사 난색

이복현 “근본적 문제, 후진적 기업 지배구조” 재계 “주주 지분 권리 침해...평등 원칙 위배”

2024-06-12     이재형 기자

매일일보 = 이재형 기자  |  소액주주를 위한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는 방식의 상법 개정 의견에 대한 재계의 반발이 거세다. 정부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기 위해 소액 주주의 권익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유지해 오고 있어 당국과 경영계의 갈등이 예상된다. 집중투표제 외에도 이사의 주주 충실의무 등 충돌의 소지가 많은 상황이다.

12일 금융투자협회 불스홀에서 열린 ‘자본시장 선진화 위한 기업지배구조 세미나’에서 집중투표제 등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방안이 제안됐다. 집중투표제는 주주총회에서 이사진을 선임할 때 1주당 1표씩 의결권을 주는 단순투표제와 다르게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예를들어 이사 2명을 선임할 경우 1주를 가진 주주는 2표의 의결권을 가지며 2표를 모두 한 사람에게 행사할 수 있다. 자본시장연구원과 한국증권학회가 공동 개최하고 금융감독원이 후원하는 이날 행사는 향후 정부 상법 개정 방향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세미나를 시작으로 다음달까지 업계 의견을 수렴한 뒤 세부 개정 작업에 착수한다. 나현승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세미나에서 이사 선임 시 집중투표제 확대를 통한 이사회 독립성과 주주 권한 강화 등을 제안했다. 나 교수는 기업의 집중투표제 도입을 의무화해야 한다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대주주 의결권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금감원은 “집중투표제 확대 등은 발표자의 개인적인 의견을 표명한 것으로 정부 차원에서는 아직 결정된 사항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세미나에 참석해 “다수의 시장 참여자도 국내 자본시장의 근본적인 문제점으로 후진적 기업지배구조를 지적하고 있다”며 “전체 주주가 아닌 회사나 특정인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례가 여전히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원장은 “기업이라는 거대한 배를 운행하는 데 선장과 항해사의 역할을 하는 이사는 승객, 즉 전체 주주를 목적지까지 충실하게 보호하는 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역할일 것”이라며 “모든 시장참여자가 윈윈할 수 있는 건설적인 방안을 기대한다”고 했다. 재계는 집중투표제에 반대하고 있다. 정당한 주주의 지분적 권리를 침해할 수 있어 주주 평등의 원칙에 반한다는 논리다. 또 주주 평등과 다수결 원칙의 예외를 정관으로 배제하지 못하게 해 위헌 소지도 있다는 주장이다. 경영계와 당국의 또다른 충돌 지점은 이사의 충실의무다. 이 원장은 한국의 자본시장 선진화를 위해 이사의 충실의무를 일반 주주에게로 확대해야 한다고 제시한다. 그는 “미국 델라웨어주 회사법과 모범회사법은 명시적으로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규정하고 있고, 그 외 영국, 일본 등도 판례나 지침 등을 통해 주주의 이익 보호를 위한 노력을 해오고 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반면 경영계는 기업가 정신 훼손을 우려한다. 이사의 충실의무 위반이 인정될 경우, 형법에 의한 배임죄 처벌, 주주총회에서 해임 의결, 개인적 손해배상책임 등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과감한 투자 결정 등 경영 혁신 정신이 위축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관련해 이 원장은 “이사가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경영 판단을 한 경우 민형사적으로 면책받을 수 있도록 경영 판단원칙을 명시적으로 제도화할 수 있다”며 여지를 뒀지만 경영계를 설득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