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인정' 없는 정치에 대한 절망
2024-06-19 문장원 기자
매일일보 = 문장원 기자 | 22대 국회 전반기 원구성 협상을 둘러싼 여야의 신경전이 보름 넘게 계속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180석이 넘는 범야권은 법제사법위원장과 운영위원장 등 주요 상임위원장을 틀어쥐고 새 국회의 개문발차를 강행했고, 108석의 국민의힘은 여기에 반발해 상임위원회 자체를 거부하면서 별도의 특위를 구성해 현안을 챙기고 있다.
민주주의에서 합의는 정말 중요한 과정이고 가치다. 수적 우위만을 믿고 합의 없이 힘 자랑만 하게 된다면 소수의 의견은 목소리조차 내기 힘들다. 합의는 이럴 때 큰 의미가 있다. 지금 민주당이 다수당의 힘으로 국회를 운영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이러한 '합의'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의 속성이 시끄럽고 지난한 작업을 거치더라도 합의에 이르렀을 경우 우리는 지난 과정을 인정한다. 그렇다고 작금의 국회 상황의 책임이 모두 민주당에 있다고 보기 어렵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합의에 다다르기 위한 협상 테이블 자체를 거부하고 입법권도 없는 '특위'를 통해 국회 주변을 겉돌고 있다. 국정을 책임진 정부‧여당의 모습이라기에는 너무 무책임하다. 더욱이 총선 참패라는 성적표를 받아 들고서 이렇게 국회 자체를 거부하는 모습은 총선에 보여준 민심을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러한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서로에 대한 인정이 없다는 데 있다. 즉 '인정의 정치'가 실종됐다. 상대의 생각,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출구 없는 충돌만 계속되고 있다. '협치'는 언론이 기사를 쓸 때만 사용하는 단어일 뿐 국회에서 실제로 그 뜻이 발현된 적은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니, 합의도 없고 민주주의도 없는 것이다. 정치학자 아렌트 레이파트는 <민주주의의 유형>에서 현대 민주주의를 '승자독식'의 다수적 민주주의와 '권력 공유'의 합의적 민주주의로 구분했다. 다수적 민주주의는 단일정당 정부, 행정부 우위의 의회-행정부, 양당제, 소선거구 선거제도, 다원주의 이익대표체계 등을 특징으로 한다. 합의적 민주주의는 연립정부, 수평적 의회-행정부 관계, 다당제, 비례대표 선거제도 등이 특징이다. 정치 현실 어떠한 구분론에 딱 들어맞을 수는 없지만 레이파트가 분류한 유형에 한국 정치를 들이대면 '승자독식' 다수적 민주주의에 가까워 보인다. '권력 공유' 합의적 민주주의가 이상향으로 보이는 이유는 지금의 한국 정치가 너무 절망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제도 자체를 단번에 바꾸기 어렵다. 그렇다면 상대를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그래야 다음 길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