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공공사업 공사비 현실화 어려운 이유는
경직된 예산 산정 방식…고물가 시대 제대로 반영 못해 기재부·지자체, 보수적 예산 심의…적정 공사비 확보 어렵게 해
2025-06-24 김수현 기자
매일일보 = 김수현 기자 | 주요 공공공사 사업들이 시시각각 인상되는 공사비 영향으로 사업체들의 참여가 저조해 유찰이 잇따르고 있다. 정부는 올 초 공공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확대 및 공사비 적정단가 반영 대책을 내놨지만, 아직은 효과가 쉽게 나타나지 않은 모양새다.
24일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지난 2022년 1월부터 올해 1월 말까지 정부와 지자체는 총 64건의 기술형 공사 입찰을 공고했다. 이중 31.2%인 20건만이 입찰에 성공했고 나머지 70%가량이 유찰됐다. 대규모 공공공사의 경우 착공 수년 전부터 사업비를 책정하는데 최근 공사비가 빠르게 인상되는 만큼 기존 계획으로는 사업체들이나 대주단이 투자 매력을 못 느끼고 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GTX B노선 1·2·3공구 △남부내륙철도 1·9·10공구 △제2경춘국도 1~4공구 등 발주 금액이 1조원이 넘는 대형 사업까지 시공사를 찾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실제로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11일 시의회 시정질문에 참석해 위례신사선 사업의 우선협약대상자인 GS건설 컨소시엄이 사업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GS건설은 지난 2020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 급등한 공사비 문제로 시와의 지속적인 갈등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사업비 10조5300억원 규모의 초대형 프로젝트인 ‘가덕도신공항 부지조성공사’ 역시 시공사 선정에 난항을 겪었다. 정부는 지난 5일까지 공사 입찰을 진행했지만 한 하나의 건설사들도 공고에 응하지 않았다. 높은 공사 난이도와 짧은 공기에 건설사들이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평가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적정 공사비가 확보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건설업계에서는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공공사업 유찰 사태의 가장 큰 원인으로 경직된 예산 책정 방식과 발주 시스템이 최근 몇 년 사이 늘어난 인건비와 원자재 가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12월 기준 건설공사비지수는 153.26(2015년 100 기준)으로 1년 사이 3.2% 상승했다. 지난 2020년(121.80)과 비교하면 공사비는 단 3년 사이 25.8%나 올랐다. 이 기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 12.3%을 감안 할 경우 공사비는 물가에 비해 2배가량 뛴 것이다. 이에 더해 공사 발주를 맡은 중앙 부처나 지자체가 물가 상승을 고려해 공사비를 상향 책정을 결정해도, 기획재정부 혹은 지방 의회의 보수적인 심의를 거치면서 예산 조정되거나 오히려 삭감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아울러 정부의 공공사업 입찰 과정이 건설사들에게 ‘저가입찰’과 ‘출혈경쟁’을 강요하는 형태가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정부가 발주하는 공공사업의 경우 발주처가 먼저 내보인 금액과 비교해 가장 낮은 금액을 제시하는 업체가 수주를 맡는 구조다. 일감이 급한 건설사 일수록 제대로 사업성을 따지기보다는 경쟁자를 제처야 하는 ‘치킨게임’에 빠질 수밖에 없다. 건설업 호황 당시 가지고 있었던 공공공사의 이점도 약해졌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경기가 호황일 당시에는 시공능력평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공사 난이도는 높고 수익성은 낮은 공공사업에 뛰어드는 경우도 있었지만, 요즘 같은 불황에는 사업성이 낮은 SOC 사업에 섣불리 손을 댈 수 없다”고 말했다. 손태홍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원은 “장기적으로 품셈 현실화나 물가 상승분을 공사비에 반영하는 등 제도적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며 “근본적으로 예산이 너무 적게 잡혀 유찰이 나는 경우라면, 예산을 더 배정해 재입찰에 나서는 것이 시장에서는 가장 빠른 효과를 낼 것”이라 조언했다. 엄근용 연구위원은 “각종 설계지침 변경에 따라 최초 제안에 비해 공사비 및 운영비 증액이 불가피하거나 건설자재 가격 급등과 같은 사유로 공사비가 크게 상승하는 경우 총사업비 변경 등 현실화가 필요하다”라며 “민간 투자를 지속적으로 유인하기 위한 부가세 및 취득세 감면 등의 민간투자사업 세제 지원의 연장도 요구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