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범죄 내몰리는 경계선 지능인… 관련 대책 마련 시급

최근 지자체 중심 지원책 나오고 있지만 국가 차원 대책은 전무 전문가, 국가 차원 조사 및 각 생애 주기에 맞는 지원 절실 지적

2025-06-30     김수현 기자
경계선

매일일보 = 김수현 기자  |  # A씨의 여자친구 B씨는 지난 4월 18일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경계선 지능인인 C양 등을 만나 "아르바이트 자리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A와 B는 이날부터 지난달 5일까지 본인들이 운영하는 유흥업소에 C양을 데리고 있으면서 "말을 듣지 않으면 외국에 팔아버리겠다"라고 협박해 성폭행하거나 성매매 등을 시킨 혐의로 현재 구속 송치된 상태다.

# 지난 2019년 10대 중고등학생 16명이 경계선 지능인인 ㄱ군을 수개월간 폭행하고 금품을 갈취한 것이 적발됐다. 이들은 ㄱ군의 아버지 휴대전화에 송금앱을 설치하게 시킨 뒤 15차례에 걸쳐 2200만원이 넘는 돈을 뜯어냈다. 돈을 주지 않을 경우 학교 인근 공터에 ㄱ군을 불러 집단적으로 폭행을 일삼았다.

경계선 지능인들은 일반인에 비해 상황 판단력이 떨어져 사기·납치·성매매 등 각종 범죄에 휘말리는 경우가 많다. 지난 2014년 세간을 떠들석하게 했던 ‘신안 염전노예 사건’의 피해자 역시 경계선 지능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경계선 지능의 경우 지속적인 교육과 돌봄이 수반되지 않을 경우 뇌기능이 떨어져 지능이 점점 하락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이들에 대한 꾸준한 관심과 재교육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이에 따라 각 지자체들은 경계선 지능인 관련 조례를 제정하는 등 지원책을 내놓고 있지만, 아직 국가적 차원의 대책은 미비한 수준이라는 평가다. 30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지난 2020년 ‘경계선지능인 평생교육지원’에 대한 조례를 제정하고, 지난해 전국 최초로 경계선 지능인에게 평생교육 지원센터를 개관하는 등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경기도 역시 지난 2022년 ‘경계선 지능인 평생교육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평생교육 프로그램 운영을 계획 중이다. 지난 21대 국회에서는 ‘경계선지능인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 발의됐지만 회기가 지나면서 입법에 실패했다. 당시 법안을 대표 발의한 허영 의원실 관계자는 “현재 해당 법안의 수정안을 준비 중이다.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지원을 위해 이번 국회에는 반드시 법안을 처리할 계획”이라 전했다. 이처럼 경계선 지능인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싹트고 있지만, 아직 이들에 대한 이해는 제도권에 충분히 스며들지 못한 상황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서울행정법원 행정6단독 윤성진 판사는 IQ가 72인 경계선 지능인 ㄴ씨가 서울 동작구청장을 상대로 장애인 등록신청 반려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청구한 소송을 기각했다. ㄴ씨 측은 "다른 종류의 장애는 정도가 심하지 않아도 등록을 허용하는데, 지적장애인만 정도가 심한 장애로 범위를 제한해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지적장애를 어느 범위까지 사회보장권의 수급 대상으로 할 것인지는 당시의 사회적·경제적 배경과 공동체의 인식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정책적 판단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라며 "70 이하로 구체화한 것을 두고 잘못된 입법 재량의 일탈·남용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국가적 차원의 조사와 구체적인 지원책이 자리 잡지 않는다면 경계선 지능인들의 사회적 자립은 물론 차별이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진우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보는 “전체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경계선 지능인이 제도적 지원 밖에서 계속 방치된다면,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 또한 지속적으로 발생하게 될 것”이라며 “경계선 지능인을 위해 국가 차원의 실태조사 및 조기진단 시스템 마련하고 각 개인의 특성에 맞는 자립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경계선 지능인에 진단은 물론이고, 생애주기별로 교육·고용·일상생활·가족 관계·출산 및 양육·권리구제 등 전반적인 삶에서 개별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박광옥 한국보건복지인재원 교수는 “대부분의 경계선 지능 청년은 경계선지능 등으로 인해 생애주기 과업 수행에 다양한 어려움을 겪고 있어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 교수는 이어 “개인별로 필요한 지원은 다양할 수 있지만 생애주기별 지원이 지속적으로 제공될 수 있는 체계가 구축될 필요가 있다”며 “다음 생애주기의 원활한 과업 수행을 위해 연령별 지원이 상호 연계된 서비스 구축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