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가계대출·부동산가격 동시 ‘위험 수위’, 오락가락 정책 멈춰야

2025-07-08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박근종

매일일보  |  올해 7월 들어 날씨만큼 유난히 뜨겁게 달아오르는 게 있어 올 여름이 무척이나 덮 다. 이달 들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잔액 총액이 710조 7,558억 원으로 지난 6월 말 708조 5,723억 원보다 불과 4영업일 만에 0.31%인 2조 1,835억 원이나 급증했다. 게다가 7월 1주 차 서울 매매가격지수 변동률은 0.2%를 기록하며 2년 9개월 만에 최대폭 상승을 기록했다. 가계대출과 부동산가격이 동시에 ‘위험 수위’를 치닫고 고공비행하고 있는 모양 세다. 

부동산 경기 회복 조짐, 금리 인하 기대심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지만 대출 증가 속도가 너무 가팔라 걱정이다. 게다가 큰 빚을 내 부동산과 주식에 투자하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과 ‘빚투(빚내서 투자)’ 열풍이 약 3년 만에 다시 살아날 조짐을 보여주고 있어 심히 우려가 크다.  4개월 연속 가파르게 증가한 가계대출에서 읽듯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려 부동산·주식을 사들이는 ‘레버리지(Leverage │ 차입) 투자’ 열풍을 극명하게 잘 보여준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달 첫째 주(7월 1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 가격은 전주 대비 0.2% 올라 2021년 9월 셋째 주(0.2%) 이후 2년 9개월 만에 가장 큰 상승 폭을 나타냈다.  올해 들어 감소세를 이어가던 5대 시중은행 가계대출은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지난 4월부터 큰 폭으로 늘고 있다. 월별 증가액은 4월 4조 4,346억 원, 5월 5조 2,278억 원, 6월 5조 3,415억 원으로 고공비행 중이다. 부동산 ‘영끌’ 바람이 불었던 2021년 7월 6조 2,000억 원 이후 2년 11개월 만에 최대폭 증가를 기록했는데, 이달 들어 가파른 기세는 더욱 커지고 있다.  대출 종류별로 나눠서 보면,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잔액은 552조 9,913억 원으로 전월 말 대비 8,387억 원이나 늘어났다. 서울을 중심으로 다시 집값이 오르고 거래가 늘어나자 주택 매수 심리가 강해지고 이에 따른 대출 수요도 더욱 커지는 모습이다. 정부가 ‘2단계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실행을 올해 9월로 연기한 것 역시 대출자들이 ‘영끌’ 계획을 앞당기도록 부추겼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무엇보다도 주목을 받는 건 올 6월까지 감소 추세를 보이던 시중은행 신용대출마저 올 7월 1~4일 불과 4영업일 만에 1조 879억 원 증가로 돌아섰다는 점이다. 최근 증시 활황과 함께 꿈틀대기 시작한 ‘빚투’가 주된 배경으로 지목된다. 증권사가 개인투자자에게 주식 매수 자금을 빌려주는 ‘신용거래융자’ 잔액이 5월 평균 19조 4,387억 원에서 이달 4일 기준 20조 234억 원으로 5,847억 원 뛰었듯, 은행 신용대출도 같은 이유로 늘어났을 것이란 해석이 지배적이다.  은행들이 가산 금리를 올리며 대출 수요 억제에 나섰지만, 대출금리 산정의 기준이 되는 시장금리의 하락 추세가 완연해 역부족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게다가 기준금리 인하 기대 유입으로 지표금리인 은행채 5년물 금리가 0.058%포인트 추가 하락했다. 자산시장의 열기가 식지 않는 한 가계대출 증가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렇듯 가계 부채에 고삐가 풀린 것은 오락가락·갈팡질팡하는 정부 정책을 빼고는 달리 설명할 수 없다. 정부는 지난해 말부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경착륙을 막겠다며 관련 규제 완화와 함께 저금리 주택담보대출을 연 30조~40조 원 공급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젊은 층을 중심으로 무리한 ‘빚투’로 가계 부채 증가세가 심상치 않자,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의 2단계 시행을 불과 6일도 안 남은 지난 6월 25일 돌연 시행을 당초 7월 1일에서 9월 1일로 2개월 연기했다. 그 직후 이번엔 은행을 상대로 주담대 가산 금리 상향을 압박하며 냉탕 온탕을 오락가락 갈지자 행보를 했다. 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금융시장에 대한 조정 능력이 약화하는 동안 채권시장은 정부 뜻과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은행들이 가산 금리를 올리는 것보다 금융채 시중 금리가 더 많이 하락해 은행 가계대출 금리는 내리막을 유지하고 있다. 안 그래도 국내 가계 부채 상황은 세계 최악에 가깝다. 지난해 한국 가계의 소득 대비 빚 상환 부담이 전 세계 주요국 중 네 번째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금리 상황이 길어지면서 빚 부담이 증가하는 속도 역시 상위권을 차지했다. 지난 7월 7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가계 부문의 DSR은 14.2%로 나타났다. 집계 대상인 전 세계 주요 17개국 중 네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한국보다 DSR이 높은 국가는 노르웨이(18.5%), 호주(18.0%), 캐나다(14.4%)뿐이었다. DSR은 차주의 상환 능력 대비 원리금 상환 부담을 나타내는 지표로 DSR이 높을수록 소득에 비해 빚 갚는 상환 부담이 크다는 뜻이다. 최근 가계부채가 급등한 배경에는 신생아특례대출을 중심으로 한 정부의 정책대출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신생아특례대출은 2023년 이후 아이를 낳은 가구에 한해 9억원 이하 주택에 5억원까지 주택담보대출을 지원하는 정부 상품이다. 일반 대출과 달리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적용되지 않고 금리도 최저 1%대로 낮다. 신생아특례대출은 만 2세 이하 자녀를 둔 가정에 저리 대출의 혜택을 준다는 취지로 올해 1월 말 도입됐다.  세계 최악의 저출생과 빠른 고령화를 겪고 있는 우리나라 ‘합계출산율(Total fertility rate │ 15~49세 가임기 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이라 예상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2022년 0.78명에서 2023년 0.72명까지 떨어졌다. 올해 출산율은 0.68명까지 주저앉을 전망이다보니 신생아특례대출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국책 사업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지만 신혼·출산 부부를 중심으로 한 특례 대출 신청금액이 5개월 만에 6조 원에 이를 정도로 급증했고, 이 돈이 아파트로 몰려 집값이 들썩이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금융위원회가 ‘스트레스 DSR’ 2단계 시행 시기를 9월로 연기하는 바람에 대출을 미리 받아두자는 ‘대출 막차’ 수요까지 몰리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부랴부랴 시중은행 담당 임원을 불러 모아 가계대출 관리에 소홀하면 엄중 조치하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달 첫째 주 서울 아파트 가격은 2년 9개월 만에 최대 상승 폭을 기록했고 매수 수요는 2년 8개월 만에 공급을 앞질렀다. 정부는 이제라도 일관되고 강력한 대출 억제 의지를 보여줘야만 할 것이다. 가계 부채가 늘어나면 소비여력마저 떨어져 경제 선순환에 지장을 주고, 자산 거품이라도 꺼질 경우 가계 파산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출 증가세가 꺾이지 않을 경우 전세대출·중도금대출·정책금융 등도 DSR 적용 대상에 포함하는 극약처방(劇藥處方)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당연히 서민과 실수요자 등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앞으로 가계 부채를 줄이겠다”라는 확실하고 일관되고 통일된 메시지나 시그널이라도 꾸준히 내보내야만 할 것이다.  부동산 PF 사업장 부실화 등의 문제는 대출 규제 완화가 아니라 면밀하고 정교한 옥석 가리기와 여건별 핀셋 지원의 ‘투트랙 전략’으로 해결을 해야 한다. 가계대출과 부동산가격은 일단 속도가 붙으면 상승도 빠르지만, 추락은 더 빠르다는 지난 역사의 경고에 귀 기울이고 반추하며 곱씹어 봐야 한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