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비혼 출산 어떻게 생각하세요?
2025-07-09 권한일 기자
매일일보 = 권한일 기자 | 바야흐로 초개인화 시대다. 단체에 속한 일원보다 '나와 타인'의 개성에 더 큰 가치가 부여된다. 불과 10년 전까지 '돌아이'라는 비아냥을 들었을 법한 독특한 취미와 관심사가 존중받고 혼자서도 잘 놀고 혼밥과 혼술을 거리낌 없이 즐기는 이가 진정한 위너(승자)로 칭송받는 세상이다.
K-콘텐츠는 세계적으로 인기몰이 중이다. 개성 넘치는 이 땅의 MZ들이 그 원동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대한민국이 결혼·출산·육아 분야에선 해묵은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다. 남녀가 만나 친인척과 지인들의 축하 세례 속에서 결혼식을 치르고 공식적인 부부로 거듭나 아이를 낳고 키워야만 소위 '정상적인' 가정이 된다는 고정관념이 꽉 들어차 있어서다. 유교 조선의 흥망성쇠와 일제 강점기를 지나 격동의 20세기를 거쳐 세상 유례없는 산업화까지 숨 가쁘게 겪으면서 이 땅에는 비교와 경쟁이라는 부작용이 뿌리내렸다. 일례로 현재까지도 상투적인 형태에서 벗어난 가정은 때론 멸시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러는 사이에 이 나라 출산율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수준까지 추락했다. 한 아이의 아빠인 필자는 아이를 통해 결혼 전이나 신혼 때 느껴보지 못했던 이루 형언할 수 없는 기쁨과 행복을 경험하곤 한다. 내 아이만이 줄 수 있는 충만한 기쁨을 모른 채 평생을 살았다면 어땠을지 상상만 해도 마음 한편에서 뭔가 묵직한 억울함이 솟는다. 여러 이유로 결혼을 미루거나 당차게 비혼(非婚)을 선언한 지인들이 떠오를 때가 있다. 나도 한때 그들과 똑같은 생각이었지만 지금의 이 마음 그대로 과거로 돌아간다면 결혼은 차치하더라고 2세는 꼭 보고자 할 것 같다. 비혼주의자나 독신주의자는 자녀 양육이 주는 기쁨과 행복을 느끼면 안 되는 걸까. 그들이 따가운 시선에서 벗어나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는 곳이야말로 성숙한 개인주의와 진정한 평등이 뿌리내린 사회가 아닐까. 최소한 법적으로는 그 부분을 인정하고 혼인신고가 없더라도 출생신고가 있으면 국가와 지자체가 제공하는 출산·육아 지원과 기업 법정 휴직 등을 똑같이 쓸 수 있어야 마땅하다. 동거 커플이나 일부 성소수자가 아이를 가지거나 인공 수정 또는 입양을 통해 마음 편히 출산하고 양육하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형성되면 이 나라의 선결 과제인 출산율 제고에 일정 부분 도움이 될지 모른다. 실제로 4년 전 기준 OECD 평균 합계출산율은 1.56명이었고 특히 비혼 출산은 41.9%에 달했다. 반면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 0.84명, 비혼 출산율 2.5%에 불과했다. 프랑스는 비혼 동거를 인정하는 '팍스(PACS·시민연대계약)' 제정 이후 출산율이 상승했다. 지난 2022년 기준 합계출산율 1.80명으로 EU 회원국 중 '출산율 1위' 국가로 거듭났다. 프랑스 내 비혼 출산율은 62.2%에 달한다. 이외 여러 나라의 비혼 출산율과 합계출산율을 봐도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확인된다. 예를 들어 미국 비혼 출산율은 40.5%, 합계출산율은 1.66명이다. 멕시코는 각각 70.4%, 1.82명이다. 노르웨이의 비혼 출산율은 58.1%, 합계출산율은 1.48명, 스웨덴은 각각 55.2%, 1.66명이다. 프랑스의 '팍스', 스웨덴의 '가족법', 영국의 '시민동반자법' 등 해외에선 법적으로 혼인하지 않은 이성 또는 동성 파트너의 법적인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인구 감소로 국가비상사태까지 선포한 대한민국이지만 대다수 출산 장려 정책은 여전히 법률혼을 중심으로 폐쇄성을 띄고 있다. 아이를 가지기 전부터 출산 후 양육과 교육 등 현실적인 부분을 일단 고민하게 되는 나라에서 그나마 나오는 지원의 대상조차 될 수 없는 정책적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것이다. 출산율 추락으로 지방 소멸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제 국가 소멸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쏟아진다. 유교 문화의 사고방식이 불러온 케케묵은 가족의 형태와 편협한 잣대를 깨부수고 민족과 국가의 영속을 위해서라도 비혼 출산과 비혼 육아를 나라 전체가 품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