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뉴노멀이 된 이상기후, 일터와 일상의 안전부터 담보돼야

2024-07-11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박근종

매일일보  |  지난 7월 10일 새벽 충청권과 전라권 등에 쏟아진 기록적 폭우로 5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되는 등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기상청은 시간당 강수량 기록을 경신하며 200년에 한 번 내릴 만한 기록적 폭우가 전북, 충남 지역 등을 강타한 이유를 “한반도 여름 장마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모든 기상 변수들이 총체적으로 합쳐져 나타난 결과”라고 설명한다. 지난 7월 9일 밤부터 10일 새벽까지 전북과 충남, 경북 지역에 역대급 ‘야행성 폭우’가 내리면서 시간당 강수량이 관측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7월 10일 기상청에 따르면 전북 군산시 어청도에는 이날 오전 1시 전후 시간당 146mm의 폭우가 내렸다. 지난해 기상청에서 ‘극한호우’로 규정한 시간당 50mm 기준의 3배에 달하는 강수량으로 시간당 140mm 넘는 비가 내린 건 1998년 7월 31일 전남 순천에서 145mm 사례가 유일해 기상청의 관측자료가 확인되는 범위에서 시간당 강수량 역대 최고치라고 한다.  정체전선(장마전선)과 서쪽에서 발생한 저기압, 남쪽에서 불어와 고온다습한 하층제트기류까지 모두 결합하며 상승 작용을 일으키며 예측불허의 ‘야행성 폭우’로 돌변해 사망 6명, 실종 2명, 도로 하천제방 등 공공시설 391곳이 파손되고 이재민 3,568명을 발생케 했다. 정체전선과 하층제트기류가 한반도 장마의 공식적인 상수였다면 올해 유난히 많이 발생하는 저기압은 새 변수다. 인접 지역에서 ‘극과 극’의 날씨를 보이는 것 역시 이번 장마의 특징인데 지난 7월 10일 군산시 어청도에서는 시간당 146mm의 역대급 기록적 폭우가 쏟아지는 동안 불과 80km 떨어진 전북 부안군에서는 시간당 3mm가량의 약한 비가 왔다.  정체전선이 남북으로 얇고 동서로 긴 띠 형태를 보이면서 발생한 현상이다. 비 피해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기상청은 7월 11일에도 많게는 충북 40mm, 경북 60mm의 비가 더 내릴 것으로 내다봤다. 역대 최대 시간당 강수량을 기록했던 전북 지역에도 최대 60mm의 비가 예보돼 각별한 주의가 요망된다.  한편 지난 7월 9일 새벽 5시 12분께는 경북 경산시에서 40대 여성 택배 노동자가 배송 업무를 하던 와중에 폭우에 휩쓸려 실종됐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배달을 못하겠다”라는 말을 동료에게 전한 뒤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해마다 여름철이면 폭염과 폭우로 인한 노동자들의 안전사고가 반복되고 있다.  과거에는 보기 드물었던 이상기후가 점차  ‘뉴노멀(New Normal │ 새로운 표준)’이 되고 있는 만큼, 정부가 극한 날씨에 노출된 일터의 안전을 지키는 데 만전을 기해야 한다. 기후변화가 심화되면서 우리나라 여름철 장마 기간에 짧은 시간에 많은 비를 집중적으로 쏟아내는 ‘기습 폭우’가 뉴노멀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통상적으로 ‘장마’는 정체전선이 남북으로 오르내리며 ‘오랜 기간 지속되는 비’를 뜻하는 단어인데,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대기의 습윤 정도가 커지면서 정체전선이 머무는 곳에 세찬 비가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현상이 늘어날 것이란 의미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여름철 장마 기간의 강수 ‘강도’는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기상청이 발간한 ‘2022년 장마백서’에 따르면, 시간당 30㎜ 이상의 집중호우의 발생 빈도는 최근 20년(2001∼2020년) 동안 1970~1990년 보다 20% 이상 증가했다. 국내 연구진이 지난해 국제기후학저널(International Journal of Climatology)에 발표한 ‘한국과 동아시아의 여름철 평균 및 극한강수량의 장기변화’ 논문을 인용한 한겨레신문(정봉비 기자)을 보면, 지난 60년간 하루 100㎜ 이상의 집중호우 빈도 역시 꾸준히 우상향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번 장마 기간에도 단시간에 집중적인 물폭탄으로 내리는 ‘기습 폭우’가 빈발(頻發)하고 있다. 지난 7월 10일 새벽 충청과 전북, 경북 지역에선 시간당 1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면서 인명과 재산 피해가 속출했다. 전문가들은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면서 수증기가 넓게 퍼지면 강한 비를 유발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기록적 폭우가 자주 발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특히 서해와 동해의 해수면 온도가 전세계 해역과 비교해봐도 빨리 증가하고 있는 것이 주요 원인 중 하나로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면서 수증기가 넓게 퍼져 지속적인 비를 내리게 하는 층운(層雲)이 아니라 위로 쌓여 순간적으로 강한 비를 내리게 하는 적운(積雲)이 만들어지는 경향이 강해진 탓이라고 한다. 장마가 끝나면 극심한 폭염도 이어질 전망이다. 올해는 더위가 유난히 일찍 시작됐는데, 지난 6월 서울의 평균 기온이 117년 관측 사상 처음으로 30도를 웃돌기도 했다. 세계 곳곳이 섭씨 50도를 넘나드는 대재앙 같은 폭염으로 시름하고 있다.  올 여름 지구는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해’가 될 것이라는 세계 전문가들의 예측이 현실이 되고 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국(NOAA) 등 대기 관측 기관들은 작년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관측 이후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고 밝혔고,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해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보다 섭씨 1.45도가량 상승해 역사상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됐다고 밝혔다. 특수고용직인 택배 노동자들은 폭염과 폭우, 한파 등에 빈번하게 노출되고 있지만, 현실은 위험한 상황에서 작업을 중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기상 악화로 인해 산업재해 발생의 위험이 있을 때 노동자의 판단에 따라 작업을 중지할 수 있는 ‘작업 중지권’이 보장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택배 노동자들은 「산업안전보건법」적용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배송물량 자체가 줄어들지 않는 한 무리 해서라도 일을 끝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노동계는 기상악화가 심각할 경우 배송물량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와 택배업계, 노동계가 머리를 맞대고 이상기후에 대비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실효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노동관계법 적용이 제한적인 특수고용직이 아니더라도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규정만으론 구멍이 많다. 작업 중지를 할 수 있는 위험 요건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없는 데다 노동자가 작업 중지를 요청하더라도 사업주가 그로 인한 손실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정부가 이상기후에 대비하기 위한 작업장 기본 수칙을 만들어놔도 권고 사항에 그칠 뿐이어서 지키지 않아도 강제할 방법이 여의치 않다.  고용노동부가 폭염·한파 시 ‘작업 중지’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법안에 대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라며 사실상 반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지난 6월 28일 국회 입법조사처는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 입법영향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폭염·한파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개정안에 따라 작업 중지가 이루어질 경우 근로자를 건강 장해로부터 보호하는 효과가 있을 거라고 분석했다.  궁극적으로 기업 생산성에도 도움이라는 분석이다. 개정안에 담긴 작업중지권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서도 근로자의 일반 권리로서 보장돼야 하는 권리임을 확인하고 있다고 밝히며, 폭염·한파를 피함으로써 오히려 사업장 생산성 감소와 노동시간 감소를 줄일 수 있고, 산업재해 감소 효과도 클 거로 내다봤다.  정부가 입법적 보완을 어떻게 담보할지 면밀하게 그리고 촘촘히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안전 규제를 당장의 비용이 아니라 장기적 생산요소로 여기는 경영계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뉴노멀이 된 이상기후, 일터와 일상의 안전부터 담보되어야 한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