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높은 산과 깊은 골, 각각의 땅이 품고 있는 아픈 역사와 작은 희망의 물줄기 『평창』

- '대한민국 도슨트 16 평창' 한국의 땅과 사람에 관한 이야기 - 인간에게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던 숨은 비경, 평창의 그 침묵과 함성

2024-07-15     김종혁 기자

매일일보 = 김종혁 기자  |  반만 년 우리 역사 속에 숨어 있던 곳
세계인의 축제인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그나마 우리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평창' 우리 땅이었으면서도 우리가 몰랐던 그 비경과 역사를 차근차근 좇아가며 맛본다.

평창을 만나다. 이중환의 『택리지』, 김정호의 『대동지지』, 뿌리깊은나무 『한국의 발견(전11권)』은 시대별로 전국을 발로 뛰며 우리의 땅과 사람, 문화를 기록한 인문지리지이다. 기록되지 않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 사라진다. 특히 정규 교과에서 깊이 다루지 않는 1970~80년대 이후의 한국은 젊은 세대에게는 미지의 영역이나 다름없다. 그림이나 유물유적을 설명해 주는 것처럼 우리나라 곳곳의 역사와 문화, 그곳에 사는 사람과 땅에 대해 알려주는 ‘대한민국 도슨트’ 시리즈의 열여섯 번째로 『평창』이 출간됐다. 김도연 작가의 『평창』은 높은 산과 깊은 계곡, 맑은 물이 흐르는 평창의 자연 풍광과 그 안에서 삶을 일구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 책은 작가가 고향인 평창에서 오랫동안 경험하고 취재한 것을 바탕으로 썼기에 평창의 진면모를 잘 보여준다. 단순히 아름다운 경관만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평창 사람들의 애환과 삶의 모습, 그리고 평창이 걸어온 역사적 발자취를 진솔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은 우선 평창의 명소와 그곳에 깃든 사연들을 소개한다. 오대산과 월정사, 상원사, 대관령 등 평창을 대표하는 장소들의 유래와 의미를 풀어내면서 그곳을 지켜온 사람들의 이야기도 함께 담아냈다. 작가는 또한 평창 사람들의 삶을 조명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꿋꿋이 이어져 온 평창 사람들의 정신과 문화를 생생한 에피소드와 함께 보여준다. 특히 이 책에서 인상 깊은 부분은 평창의 자연과 사람이 어우러진 조화로운 모습이었다. 험준한 산세와 깊은 계곡, 넓게 펼쳐진 고원 등 평창의 수려한 풍광 속에서도 사람들은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보여주었다. 이는 산촌 민속과 전설, 사찰과 암자, 그리고 역사 유적 등을 통해 잘 드러난다. 산너미목장, 청옥산 육백마지기 등에 깃든 화전민들의 애환, 미탄 동강변 사람들의 삶의 모습, 오대산 사찰을 지킨 한암스님과 탄허스님의 발자취 등은 자연 속에서 이뤄진 평창 사람들의 고투와 정신세계를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이효석의 소설 무대가 된 봉평이나 대관령 목장 지대는 청정한 자연과 더불어 문화와 낭만이 살아있는 평창의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작가 특유의 소박하고 진솔한 문체도 돋보인다. 마치 오랜 지인이 들려주는 평창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친근한 어조는 독자로 하여금 평창의 정취에 더욱 가깝게 다가가게 한다. 다만 책에 수록된 내용이 방대하고 광범위하다 보니 깊이 있게 파고 들어가지 못한 면도 있다. 제한된 지면 안에서 평창의 모든 것을 담아내기에는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독자에게 평창을 직접 찾아 그 진면목을 경험해 볼 기회를 제공한다. 책을 읽고 난 뒤라면 평창에서의 시간은 더욱 깊이 있고 감동적일 것이다. 자연과 사람, 문화와 역사가 어우러진 평창의 참모습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평창이 간직한 자연과 인문학적 가치, 그리고 그 땅에 뿌리내린 사람들의 삶과 정신을 오롯이 담아낸 훌륭한 기행문집이다. 평창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그곳을 찾고 싶은 마음을 북돋아 준다. 아직 평창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만나보지 못했다면, 이 책과 함께 평창으로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험준한 산세에 맑은 물, 그리고 정겨운 사람의 온기가 남다른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지은이 김도연은 1991년 강원일보, 1996년 경인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제1회 중앙신인문학상, 허균문학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소설집 『0시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십오야월』 『이별전후사의 재인식』, 장편소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 『아흔아홉』 『마지막 정육점』, 산문집 『눈 이야기』 『영』 『강릉바다』 『패엽경』 『강원도 사전』 등을 펴내며 왕성한 창작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장편소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임순례 감독의 영화로도 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