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 안 잡혔는데 통화량 증가일로…물가·집값 자극 우려 여전

긴축 고집하는데 고삐 풀린 시중 유동성과 가계대출  한은 "통화량만으로 금융시장 완화적이라 볼수 없어"

2025-07-15     이광표 기자
긴축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유동성 지표인 시중통화량(M2)이 1년째 증가일로다. 특히 올해 들어 통화량의 증가율이 빠르게 늘고 있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통화량 증가세가 주춤하는 듯했으나 최근 들어 ‘약발’이 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물가와 부동산 가격 상승의 불씨가 사그라지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함께다.

한국은행이 15일 공개한 '통화 및 유동성' 통계에 따르면 지난 5월 평균 광의 통화량(M2 기준·평잔)은 4014조1000억원으로 4월보다 9000억원 많았다. 광의통화는 지난해 6월부터 12개월 연속으로 늘고 있다. 광의통화는 현금 등 협의통화(M1)에 2년 미만 예ㆍ적금 등을 포함한 개념으로 시중 통화량을 측정하는 데 사용하는 지표다. 광의통화가 늘었다는 건 시중에 그만큼 많은 돈이 풀렸다는 뜻이다. 우려되는 점은 증가율이 최근 들어 빨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4월 광의통화(원계열)는 전월대비 5.7% 늘었었다. 2022년 11월(5.9%) 이후 1년5개월 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이었다. 지난해 3월부터 2~3%대를 기록하던 전년 대비 광의통화 증가율은 3월 5%로 뛰더니 4월엔 그보다도 높아졌다. 한국은행은 “한동안 광의통화 증가세가 둔화하다가 지난해 말 이후 증가율이 점차 상승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이러니한 건 기준금리가 지난해 1월 3.5%로 인상된 뒤 동결을 이어간 만큼 고금리 긴축 기조는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긴축 기조는 그대로인데 유동성만 계속 불어나는 모양새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우선 금리 인하가 늦춰질 것이라는 전망이 커지면서 안전자산 수요가 늘었다. 이 때문에 장기 투자보단 2년 미만의 단기 예금에 돈이 몰렸다. 경상수지 흑자도 통화량을 늘린 요인 중 하나다. 지난해 1분기 경상수지는 적자였지만, 지난해 2분기부터 흑자로 전환했고 올해 1분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기업이 달러를 벌어들인 뒤 이를 원화로 환전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국내 통화량을 증가시키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증가세가 뚜렷해진 가계대출도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은 지난 석 달간 15조원 넘게 급증했다. 5대 은행을 포함한 은행권 전체 가계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1115조5000억원으로 지난 3개월 동안 17조원 가량 늘었다. 주택담보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대출 증가 속도가 빨라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금감원은 현장점검까지 돌입했고, 시중은행들은 부랴부랴 대출금리를 인상하며 총량관리에 나선 상황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가계대출 현장 점검을 통해 은행권이 DSR 40% 규제를 제대로 준수하고 있는지 살펴볼 것"이라며 "특히 은행 포트폴리오상 5%, 3% 비중을 넘지 못하고도록 하고 있는 DSR 70%, DSR 90% 규제 대해서도 이행 여부를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선 고금리 속에서도 시중 유동성과 대출이 계속 불어나는 현상을 두고 금리 인상의 목적 달성이 사실상 실패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한은은 신중한 입장이다. 광의통화량의 증가는 여러 변수의 하나일 뿐 긴축을 판단하는 지표로 활용하는 데 주의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물가상승률이 둔화하고 있고, 근원물가가 떨어지고 있다. 통화량만으로 금융시장이 완화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한은 관계자는 “한은의 통화운영 체계는 금리 중심”이라며 “통화량 등 유동성에는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다른 시각도 있다. 보편적으로 시중 통화량을 측정할 때 가장 많이 보는 게 광의통화인데, 1년째 시중에 돈이 계속 풀리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는 건 수요를 그만큼 창출할 수 있다는 의미인데, 결국 부동산 가격이나 전반적인 물가의 상승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문가들도 시중에 풀린 돈이 부동산으로 쏠릴 경우 집값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실제 코로나19 확산 직후 기준금리는 0.5%까지 낮아지고, 정부는 지출을 확대하면서 광의통화 증가율은 전년 대비 10%를 넘어서기도 했다. 당시 시중에 돈이 대폭 풀리면서 부동산과 주식 가격을 끌어올렸다. 전 세계가 돈 풀기에 나선 만큼 글로벌 인플레이션이란 결과를 낳기도 했다. 최근 우리금융연구소가 내놓은 ‘유동성 지표로 살펴본 주택시장 진단’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이후 광의통화 증가율과 주택가격 상승률은 동조화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최근 자산 가격 상승이 나타나는 것도 부동산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6월 넷째 주 서울 아파트 가격은 1주일 전보다 0.18% 올랐다. 14주 연속 상승세다.  이처럼 통화량이 증가세를 이어감에 따라 한은의 기준금리 유지가 과연 옳았느냐는 지적도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현 상황을 긴축 기조 유지로 보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중 유동성이 전혀 흡수되지 않음이 장기간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특례대출 등 부동산 시장 떠받치기를 위해 정책 대출을 늘리면서 금융 시장 안정성에 관한 일각의 우려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