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물가 안정화, 인플레이션 압박 줄어…가격 인상‧인하 분쟁 우려
우크라이나 전쟁發 물가상승 이후 올해부터 둔화 관측 기업 담합 등 부정적 영향 커져…업종 갈등까지 나타나
2025-07-22 신승엽 기자
매일일보 = 신승엽 기자 | 물가 안정화 여파로 인플레이션 압박이 줄어들면서, 경제계에 가격 인상과 인하에 관한 갈등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2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비롯된 글로벌 공급망 위기가 해소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글로벌 리스크는 산적하다. 특히, 국내 물가도 안정화 단계에 접어들었으나, 가격 인하 사례는 드물어 산업계 간 충돌이 우려된다. 그간 물가 상승은 글로벌 공급망 위기에서 비롯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세계 경기가 침체된 가운데,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를 침공해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무너졌다. 러시아는 주요 원자재 수출국이기 때문에, 유럽연합(EU) 등의 무역 제재로 원자재 공급망이 흔들렸다. 그간 러시아에 의존한 원자재 구매처를 찾아야 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도 물가 위기를 피할 수 없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12월 및 연간 소비자물가동향’을 살펴보면, 작년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전년 대비 3.6%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연도별로 보면 2017년 1.9%, 2018년 1.5%, 2019년 0.4%, 2020년 0.5%, 2021년 2.5%, 2022년 5.1% 등으로 나타났다. 물가 상승률이 우크라이나 전쟁 시기에 맞춰 급상승한 상황이다. 올해는 물가가 안정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획재정부는 ‘경제동향(그린북)’ 7월호에서 “최근 우리 경제는 물가 안정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제조업·수출 호조세에 내수 회복 조짐이 가세하며 경기 회복 흐름이 점차 확대되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전산업 생산은 다소 줄었지만, 수출 확대와 내수 활성화 등의 지표가 개선된 것으로 분석됐다. 산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물가 안정화 상태에 돌입했지만, 여전히 원자재 가공품의 허들은 높은 편”이라며 “통상 거래처와 작성한 계약서는 분기, 반기와 연간으로 기간이 정해졌다. 올해 물가 안정화 흐름이 나타나도 하락한 물가를 반영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미 오른 판매 가격은 내려가지 않기 때문에, 담합 등의 현상을 견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업 간 담합 고물가 기조에 더욱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접수(신고·직권)된 공정거래법상 부당공동행위는 189건으로 집계됐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2020년 137건 △2021년 138건 △2022년 149건 △지난해 189건 순이다. 올해 상반기 공정거래법상 부당공동행위도 전년보다 높은 수치를 기록하면서, 이러한 기조가 지속되고 있다. 지난 2020년보다 50% 가량 늘어날 전망이다. 물가 안정화에 따른 산업계 분쟁도 찾아볼 수 있다. 원자재 사용이 많은 건설업계에서 이러한 현상이 부각된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4월 건설공사비지수는 전년 동월 127.45 대비 2.06% 상승한 130.08을 기록했다. 이어 5월 지수는 4월보다 0.1%, 전년 동월(127.39)보다 2.21% 오른 130.21으로 나타났다. 건설업계는 공사에 돌입할 시 오히려 손해를 보는 상황에 직면했다. 2021년 995억원이던 건설 외부감사 기업의 평균 매출은 지난해 1158억원으로 16.4% 증가했다. 반면, 건설업체 평균 영업이익률은 6.0%에서 2.5%로 하락했다. 순이익률은 2021년 4.9%에서 지난해 1.1%까지 떨어졌다. 전체 건설 외부감사 기업 중 25.6%는 영업 적자 상태인 것으로 조사됐다. 건설업계는 공사원가율을 줄이기 위해 작은 부분에서도 절감을 꾀하고 있다. 결국 건설자재 중 하나인 시멘트 가격 인하를 요구하고 나섰다. 시멘트는 건설 시공에 반드시 필요한 자재다. 그간 시멘트 가격은 주연료(유연탄)과 전기요금 등의 변화에 맞춰 가격을 인상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주연료의 부담이 줄었기 때문에, 가격을 인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유연탄 가격은 2022년 상반기 t당 256달러에서 하반기 444.53달러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작년 3월 195.90달러, 7월 148.45달러로 떨어졌다. 올해 1월에도 128.21달러를 기록했으며, 지난달에는 100달러 선이 무너졌다. 2022년 하반기 고점보다 79%나 줄어든 셈이다. 대외적인 원자재 가격 변동에 따른 가격 유지 명분이 사라졌다는 평가다. 건설업계는 레미콘업계와 시멘트업계에 가격 협상 참여를 요청하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더 이상 인상된 가격을 유지할 명분이 없다는 내용이 골자다. 시멘트업계는 인상된 가격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출하량 감소와 환경설비 비용 확대 등을 주장하고 있다. 이중 환경설비 비용 확대는 폐기물 활용으로 강화된 기준인 만큼, 거래처를 설득할 명분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제품 가격은 유지했지만, 용량을 줄이는 편법도 방지된다. 제조업자는 내달 3일부터 제품의 용량·규격·중량·개수를 축소하는 경우 소비자에게 별도로 고지해야 한다. 가격을 올리지 않아도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함이다. 산업계 관계자는 “그간 물가 상승 기조가 1라운드였다면, 물가 안정화에 따른 분쟁은 2라운드라고 볼 수 있다”면서 “인하 폭을 두고 신경전이 붙을 것은 당연한 수순인 만큼,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되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