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산업계 ‘서든데스’ 비상…정치권은 ‘경제’ 나몰라
2025-07-22 이상래 기자
매일일보 = 이상래 기자 |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요즘 그야말로 동분서주다. 재계 2위 SK그룹을 이끄는 수장인 그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맡아 산업계 얼굴이다. 인공지능(AI)에서 SK그룹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본 최 회장은 직접 미국으로 날아가 글로벌 IT 거물들과 만나 영업 전선에 뛰어 들었다. 상반기에 가장 중요한 SK그룹 회의에조차 미국에서 화상회의로 참석할 정도로 빠듯하다. 지난 19일에는 대한상의 회장으로서 제주도로 날아가 기자간담회에 참석했다.
최 회장의 키워드는 ‘위기’ 그리고 ‘변화’다. 지난해 10월 그는 SK그룹 경영진 앞에서 ‘서든데스(돌연사)’를 꺼내들었다. 최 회장이 서든데스를 언급한 것은 2016년 6월 이후가 마지막이었다. 그의 위기감은 현실이 됐다. 지난해 SK그룹은 핵심 사업인 반도체, 정유, 배터리 부문이 부진하면서 ‘서든데스’가 과장이 아니었음이 판명됐다. SK그룹은 SK이노베이션-SK E&S 합병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위기에서 벗어나 생존을 위한 강력한 ‘변화’다. 문제는 위기가 SK그룹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재계 1위 삼성전자는 정기인사 시즌이 아님에도 메모리 반도체 수장을 바꿨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부진)으로 부진하는 배터리 업계도 수장들을 교체했다. 국내 다수의 기업들은 사업구조 재편에 한창이다. 변화 없이 현상 유지로 대처했다가는 산업계 대전환 시기에 도태될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국내 기업들의 위기는 곧 경제 위기다. 민생의 위기다. 국내 기업인들은 생존 위협을 느끼며 변화를 부르짖고 있다. 그런데 정치권은 그야말로 ‘권력 놀음’에 빠져있는 모양새다. 얼마 전 총선에서 경제와 민생의 이야기가 있었는가. 서로가 ‘심판론’만 앞세우며 상대 진영을 비난하기에만 급급한 선거였다. 정치적 이념에 기인하는 심판론이 국민들의 먹고 사는 문제 해결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궁금하다. 지금도 정치권은 그 어떤 변화가 감지되지 않는다. 집권여당 당 대표 선거에서 키워드는 ‘대통령 여사 문자’다. 이 대통령 여사 문자가 국민들의 실질적 삶에 어떤 관련성이 있는지 여당의 해명을 듣고 싶다. 문자 논란 다음에는 ‘패스트트랙 폭로전’이 자리했다. 집권여당의 경제 비전은 정녕 숨은 그림 찾기인가. 그렇다고 거대 야당에 민생 비전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어마어마한 의원수를 등에 업은 야당은 이 나라를 뒤흔들 수 있는 힘으로 대통령 탄핵 청문회, 검찰청 폐지 등을 언급할 뿐이다. 수권정당으로서의 경제 비전은 여기서도 찾기 힘들다. 가뜩이나 미국, 유럽연합(EU), 중국 등 거대한 글로벌 경제 플레이어가 천문학적인 보조금을 꺼내 자국 기업들에 힘을 실어주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 기업인들의 고군분투가 ‘권력 레이스’에 함몰된 정치권에는 후순위로 밀리는 대한민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