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우발적 세계에서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 컴북스이론총서 『마이클 오크숏』

2024-07-24     김종혁 기자

매일일보 = 김종혁 기자  |  

자율적 개인과 공동체가 양립할 수 있을까?
우발적 세계에서 타인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

어떻게 다양한 목소리를 내는 개인들이 평화롭고 안정적인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까?

개인의 자유가 인간의 핵심 가치로 자리매김한 이래 꾸준히 제기되어 온 쟁점이다. 합리주의는 정치를 마치 통제 가능한 공학처럼 다루며 이 문제에 답하려 했다. 그러나 이성을 과신하는 개인은 각자의 욕망에 끝없이 매진해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모든 위험 요소를 제거하겠다는 헛된 목표에 매여 자유를 잃고 만다.

‘바벨탑 이야기’의 비극적 결말을 피하려면 개인과 공동체를 새롭게 틀 짓는 철학이 필요하다.

정치철학자 마이클 오크숏은 회의주의적 관점에서 ‘개인의 자율성’을 새롭게 정의한다. 자율적 개인은 인간 인식이 지닌 한계를 인정하고 변화와 우연으로 가득한 우발적 세계를 끊임없이 탐구한다.

과거나 미래보다 현재 자신이 누리는 삶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며, 대화를 마치 놀이처럼 즐기면서 서로에게 반향을 일으킨다. 이들이 구성하는 ‘시민적 결사체’는 타인의 존재를 충분히 인정하고 인식하는 자유주의적 정치사회다.

이 책은 인간의 실존 문제를 탐구해 바람직한 정치를 구현하려 한 오크숏의 사유를 열 가지 키워드로 살핀다.

오크숏이 플라톤의 동굴 우화를 참조해 ‘인식론적 감옥에 사는 포로’ 상태에서 벗어난 철학자의 역할을 어떻게 설정했는지, 토머스 홉스의 ≪리바이어던≫에서 도출한 ‘영원함을 논하는 정치철학’이란 무엇인지 등을 상세히 이해할 수 있다. 이해와 합의가 갈수록 요원해지는 분열의 시대를 헤쳐 나갈 실천적 지식을 제공한다.

마이클 오크숏(Michael Oakeshott, 1901∼1990)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영국의 철학자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역사를 전공했다. 1951년부터 런던 정치경제대학교 정치학 교수를 지내며 홉스와 헤겔 등을 주제로 가르쳤다. 순수철학에서 시작해 역사·과학·정치·종교 등 모든 지식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면서 독자적 지식 체계를 세우려 했다. 대표작으로 ≪경험과 그 양상들≫(1933), ≪정치 영역에서의 합리주의 외≫(1962), ≪인간 행위에 관하여≫(1975), ≪역사란 무엇인가? 외≫(1983)가 있다. 관념주의 철학을 재해석하며 회의주의적이고 비정초주의적인 철학적 관점을 내세웠다. 이를 통해 당대 부상하던 실증주의, 실용주의 그리고 역사주의라는 지적 조류에 대응했다. 정치적 합리주의를 비판하며 개인성을 중심으로 시민적 결사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종교적 삶의 의미와 시적 표현을 포함한 경험의 다채로운 양상 그리고 이를 통한 대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오크숏에 따르면 논박을 통해 타인을 표면적으로 누를 수는 있어도 감화하기는 어렵다. 반면 대화를 마치 놀이처럼 즐기며, 대화 속에서 각자가 내는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서로에게서 흘러나오는 향기에 취할 수 있다. 그때 자신의 반향이 얼마나 더 널리 퍼질지는 철학자 자신에게 달린 문제가 아닐까. 어쩌면 오크숏은 철인왕이 되는 데 수십 년의 교육이 필요하다고 기술한 플라톤보다 철학자에게 더 큰 의무와 책임을 부여한 것일지도 모른다. -- “10 시적 표현과 대화 놀이” 중에서

지은이 김지훈은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서양정치사상 담당 교수이자 철학과 겸직 교수로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철학·심리학·생리학(PPP) 학부 과정을 마쳤고,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에서 근대 서양정치사상 연구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논문으로는 “리바이어던을 기다리는 프로메테우스: ‘이성적 원칙’에 따라 설립되는 (정치적) 주권자의 가능성과 한계”(2023), “스트라우스가 정의하는 홉스 정치철학의 주요 ‘문제’: 근대 정치철학에서의 ‘올바른 삶’이란”(2022) 등이 있으며, 역서로 ≪내전: 관념 속 역사≫(2024), 편서로 ≪동굴 속의 철학자들: 20세기 정치철학자와 플라톤≫(2021)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