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재 칼럼] 야당의 역할은 누군가를 지키는 것이 아니다

2024-08-01     매일일보
김민재

문재인 정부 시기였던 2019년 즈음 어느 정치인의 '웃픈' 일침이 있었다. 21세기 야당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가 '삭발, 단식, 의원직 사퇴'라는 말이었다. 박지원 당시 민주평화당 의원이 자유한국당의 조국 당시 법무부장관 사퇴를 촉구하는 장외투쟁을 비판하며 남겼던 말이다. 그는 이 세 가지를 '정치인의 3대 쇼'라고 규정하며 "삭발해도 머리는 다시 자라고, 단식해도 굶어 죽지 않고, 실제로 의원직을 사퇴한 사람은 없다"고 비판했다.

물론 우리 역사에서 많은 굵직한 정치인들이 삭발과 단식을 통한 투쟁을 해 온 것이 사실이다. 대표적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있다. 1983년 5월 18일부터 6월 9일까지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비롯하여 민주화를 위한 5개 조건을 걸고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김영삼의 단식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민주화 요구와 열망이 모여 결과적으로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김영삼은 전두환 정권에 의해 강제로 정계은퇴를 당한 후 자택에서 칩거하던 중이었다. 독재정권에 의해 정상적인 민주주의 시스템이 무력화된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목숨을 건 단식'뿐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김영삼에게 단식이란 민주적 정당성이 없는 전두환 정권을 향한, 강제로 정계 은퇴를 당한 야당 지도자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확실한 정치적 의사 표명 방식이자 투쟁 방식이었다.

박지원 의원 발언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결국 정치인의 행위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리라. 정치인이라면 적어도 이미 주어진 민주주의 시스템 하에서 의회와 정당을 중심으로 한 토론과 합의를 이끌어 내어 실질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재 민주당이 진행 중인 전당대회는 그러한 '변화의 의지'를 드러내는 자리이다. 특히 제1야당에게는 여당보다 자신들이 더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음을 대중에게 선전하는 장이기도 하다. 민주당 최고위원과 시도당위원장에 출마한 후보들은 자신이 '이재명을 가장 잘 지킬 사람'이라며 홍보한다. 심지어는 그 지역에 대한 공약과 비전 대신 '윤석열 하야 촉구'를 걸고 단식을 하기도 한다. 아무리 '친명호소'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참 기괴한 풍경이다.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이재명 수호, 윤석열 퇴진' 구호 속에서 정말 지켜야 할 사람은 누가 지킨단 말인가?

야당은 대안정부다. 머리를 밀고 곡기를 끊기까지의 '고뇌와 투지'는 분명 중요하지만, 정치는 그것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목소리 큰 사람, 강성 발언만 하는 사람이 이기는 체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특정인'만' 지키자는 정치는 민주주의를 병들게 한다. 이재명도 윤석열도, 지켜야 할 대상이 아니다. 정말 지켜야 할 사람은 시민이다. 대안정부는 정당과 의회를 무대로 시민들이 처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고, 상대 진영에게조차 손을 먼저 내밀어 대화와 합의를 주도해야 한다. 한국의 야당은 지금 어디쯤 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