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미국發 ‘R의 공포’ 가시권 진입, 실물경제 전이 차단하고 활로 찾아야
2024-08-06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매일일보 | 미국발(發) ‘R(Recession │ 경기 침체)’의 공포가 쏴 올린 직격탄에 글로벌 증시가 일제히 폭락하는 ‘검은 금요일(Black Friday)’을 연출했다. 지난 8월 2일 한국 코스피(KOSPI) 지수는 101.49포인트(3.65%) 급락한 2676.19에 장을 마감했다. 코로나19 확산 당시인 2020년 3월 19일(133.56포인트 하락) 이후 4년 4개월여 만에 최대 하락 폭이다. 지난 8월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오전 9시 14분 현재 코스피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01.61포인트(3.80%) 급락한 2,574.55에 거래되고 있다. 코스피가 2,500선으로 내려앉은 건 지난 4월 19일(종가 기준) 이후 4개월 만이다.
일본 닛케이 지수는 말 그대로 ‘초토화’됐다. ‘경기 침체’ 우려에 ‘나 홀로’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엔화 가치 강세라는 악재까지 겹쳐 지난 8월 2일 5.81% 폭락했고, 대만 자취엔 지수도 4.43%나 곤두박질쳤다. 코스피 지수의 하락률은 3년 11개월 만에 일본 닛케이 지수는 아시아 외환위기인 1987년 이후 사상 두 번째 큰 낙폭이자 36년 10개월 만에 최대 하락 폭이다. 독일 DAX도 2.33% 추락했다. 미국의 7월 구매관리자지수(PMI)가 경기 위축을 가리키는 46.8로 나오자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 연준)의 9월 금리 인하 예고까지 ‘경기 침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면서 투자 심리가 급랭한 것이다. ‘빅테크(Big tech)’들의 실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서 ‘인공지능(AI) 거품론’도 가세했다. 예상보다 부진한 미국의 고용지표 영향이 컸다. 지난 5~7월 미국 실업률 평균은 4.13%로 지난해 3개월 평균치 저점 3.6%에 비해 0.53%포인트 높았다. 특히, 미국의 7월 실업률이 4.3%로 시장 예상치이자 전월치인 4.1%를 0.2%포인트 웃돌며 2021년 10월 이후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시장에서는 이처럼 실업률이 급등하게 되면서 ‘경기 침체(Recession)’를 가늠할 수 있는 ‘삼의 법칙(Sahm’s Rule)’이 발동했다. 이는 연준(Fed) 이코노미스트 출신인 ‘클로디아 삼’ 박사가 내놓은 법칙으로 미국 실업률의 최근 3개월 이동평균치가 앞선 12개월 중 최저치보다 0.5%포인트 이상 높으면 경기 침체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판단한다. 7월 실업률 기준 삼의 법칙 지표는 0.53%포인트로 나타났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이 공개하는 ‘실시간 삼의 법칙 침체 지표(Real-time Sahm Rule Recession Indicator)’에 따르면 지난 8월 2일 오전 발표된 7월 미국 비농업 고용 보고서를 반영한 결과 미국은 ‘경기 침체’에 진입했다. 미국의 ‘경기 침체’를 공식적으로 판가름하는 미국국립경제연구소(NBER)는 다양한 변수를 감안하지만, 통상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분기 연속 감소하면 경기후퇴로 정의한다. 한편 7월 비농업 부문 고용도 11만 4,000명 늘어나는 데 그치며 시장 예상치에 못 미치며 12개월 평균 증가 폭의 반 토막 수준으로 줄었다. 부진한 고용지표에다 엔비디아(NVIDIA) 등 생성형 인공지능(AI) 산업과 인텔의 2분기 실적 쇼크, 글로벌 ‘빅 테크(Big tech)’ 기업에 대한 거품론까지 덮쳤다. 고용 불안은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로 이어졌고 투자자들은 빠르게 주식을 처분하기 시작했다. 미국 연준(Fed)의 9월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라는 호재도 묻힐 정도로 시장 충격은 컸다. 미국 연준(Fed)이 금리 인하 시점을 실기했다는 비판까지 나오면서 9월 금리를 0.50포인트 내리는 ‘빅컷’에 나설 가능성까지 제기된다. 당연히 우리 경제에는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다. 세계 경제가 한꺼번에 흔들리게 되면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치명타가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경기 침체 우려는 시장 변동성 확대로 이어질 게 뻔하다. 1,300원 후반대의 고환율도 문제다. 지난 8월 5일 오전 11시 30분 현재 서울 외환시장 매매기준율 원·달로 환율은 1,360.30에 거래되고 있다. 이미 한·미 금리가 역전된 상황에서 그것도 상단 기준 2.5%포인트 원화 약세로 외국인 투자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실물경제가 침체의 수렁으로 빠져들 수 있다. 주가 하락은 소비심리를 위축시키고 기업의 투자를 가로막는다. 금융이 실물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다시 금융을 위축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져서는 결단코 안 된다. 따라서 금융시장 후폭풍이 실물경제로 전이되는 건만은 어떻게든 막아야만 한다. 고환율과 수도권 집값 폭등, 가계대출 증가세 등으로 금리 인하를 고려하고 있는 한국은행의 고민도 당연히 깊어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이달 발표할 부동산 종합 대책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 집값이 들썩일 수 있다. 재정 당국은 손 놓고 있어선 안 된다. 올해도 세수 결손 조기경보가 발령되면서 2년 연속 ‘세수 펑크’가 현실화하고 있는 등 아무리 세수 여건이 어렵더라도 경제활력 제고를 위한 선별적 재정정책을 펴고 기업 활력을 저해하는 규제와 비효율을 과감히 혁파해야만 한다. 미·중 무역분쟁과 중동정세 악화 등 통상 환경이 악화일로(惡化一再)를 치달리고 있어서다. 기축통화국인 미국 경제가 흔들리면 세계 경제의 타격이 불가피해진다. 미국 대선의 불확실성, 중동 확전 위기 등 지정학적 리스크도 불안을 더 키우고 있는 요인이다. 한국 경제는 2분기 -0.2% 역성장에도 하반기 수출 회복으로 2.5% 성장을 낙관해왔지만 안심할 수 없게 됐다. 더 큰 먹구름이 몰려오기 전에 우리의 주요 수출 지역을 미국·중국 중심에서 동남아·인도·중동·유럽 등으로 확대 다변화하는 노력을 서둘러야만 한다. 수출 품목도 반도체·자동차 중심에서 원전·바이오·로봇·방위산업 등으로 대폭 넓혀가야만 한다. 무엇보다도 불황기에는 오직 경쟁력을 갖춘 기업만이 살아남게 된다. ‘경기 침체’ 우려는 한국 수출의 견인차인 반도체 업황에도 진한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스마트폰과 PC 등의 수요가 늘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인공지능(AI) 열풍도 식어가고 있어서다. 그뿐만 아니라 최근 일부 외신에 따르면 미국은 이달 말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 삼성전자, SK하이닉스가 중국에 HBM을 공급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대중국 반도체 추가 통제 조치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HBM 시장은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마이크론테크놀로지 등 3개 업체가 지배하고 있는데, 해당 규제가 시행된다면 HBM3, HBM3E를 비롯해 HBM2 이상의 최첨단 AI 메모리칩과 이를 만들기 위한 장비의 중국 납품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실적 부진과 경기 둔화의 우려가 겹치며 인텔(Intel) 주가는 50년 만에 최대 하락 폭(-26.06%)을 기록했다. 시장의 불안을 보여주듯 워런 버핏(Warren Buffet)의 버크셔해서웨이(Berkshire Hathaway)는 보유했던 애플(Apple) 주식의 절반가량을 지난 2분기 이미 매각했다. 커지는 ‘R(Recession │ 경기 침체)’의 공포 속 금리 인하와 경기 둔화, 부동산 시장, 가계 부채라는 복합 위기에 대처하는 정책 운용 능력은 지금부터 시험대에 올라섰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지난 8월 1일 제조업과 고용지표 악화로 무너졌던 미국 증시는 다음 날에도 실업률 이슈가 불거져 급락장을 이어갔다. 미국 경제 불안을 반영해 미국 달러 가격은 큰 폭으로 떨어진 데 반면 일본 엔화 가격은 치솟았다. 미국발 충격에 2일 코스피가 3.65% 폭락했던 한국 증시는 이번 주 다시 변동성에 노출될 전망이다. 수출이 성장세를 이어가고 물가도 안정되고 있어 극단적인 위기 가능성은 비교적 낮지만, 한국 증시는 국내보다 대외 변수에 민감한 만큼 장기적인 하락장에 적극 대비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상황이 엄중한데도 정부와 정치권은 그저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것 같아 우려를 더한다. 정부는 지난 2분기 경제성장률이 -0.2% 역성장한 이후 내수가 얼어붙고 수출이 주춤하지만, 여전히 낙관론을 펴고 있다. 22대 국회는 개원한 지 두 달이 넘었지만, 극한의 정쟁에 매몰된 탓에 여야가 합의 처리한 민생 안건이 전무(全無)하다. “위기감이 없다는 게 진짜 위기”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쓰나미급 대외 악재가 몰려오는 만큼 경각심을 높이고, 팽팽한 긴장감을 견지하고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상정해 유연한 선제적 대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미국 증시가 본격적으로 침체 국면에 빠지게 되는 경우 국내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위험에 노출될 대상은 당연히 서학개미들이 분명해 보인다. 현재 개인이 보유한 해외 주식 자산은 1,000억 달러(약 136조 원)에 이르고, 그 대부분은 미국 주식으로 보인다. 최다 보유 종목인 테슬라(Tesla), 엔비디아(NVIDIA)는 지난 한 달간 20% 정도 이미 주가가 하락한 상태다. 투자 판단은 개인의 몫이자 스스로 책임이지만 서학 투자의 경우 제도적으로 내몬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국내 증시의 상승률은 장기간 미국에 뒤처지고, 국내 기업들의 물적분할·중복상장이 반복되면서 ‘국장 탈출’을 선택한 투자자들이 많아서다. 대표적인 게 바로 금융투자세(금투세)다. 예정대로 내년 1월부터 시행되는 경우 주식 거래로 5,000만 원 이상 벌면 이 중 22%를 세금으로 내야만 한다. 미국 증시에 투자한 서학개미들은 이미 22%를 내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주주환원율이 낮은 한국 증시에 없던 세금까지 내는데 굳이 돌아올 이유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 당국은 이들이 다시 국내 증시로 돌아올 여건을 서둘러 만들어줘야만 한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