멎지 않는 ‘美 경착륙’ 공포… 경기개선 확신 없인 증시 상승 제한적

KDI “美 경기 급격 악화 시 국내 수출 둔화” 유가 상승·내수 부진·세수 결손도 악재 꼽혀

2025-08-06     서효문 기자

매일일보 = 서효문 기자  |  ‘블랙먼데이’ 여파가 국내 경제를 휘감으면서 미국 경착륙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아직 경·연착륙 여부를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지만 내수부진 지속 등 경기 개선 확신이 줄어들 경우 국내 증시 상승이 제한적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6일 금융권에 따르면 미국의 경착륙 시나리오가 전세계 증시를 패닉으로 몰아넣고 있다. 미국 경기가 가파르게 냉각한다면 단순히 증시의 범위를 넘어 글로벌 실물경제에 타격을 가할 수 있어서다. 주가지수를 가파르게 끌어내린 금융시장의 출렁임과는 별개로 대미 수출을 동력으로 경기회복에 시동을 걸고 있는 실물 부문에도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대미 수출은 지난해부터 미국의 견조한 소비와 투자에 힘입어 자동차·정보기술(IT)을 중심으로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그 결과 수출 분야에서 미국의 약 18%까지 확대됐다. 지난달 대미수출은 102억달러로 역대 7월 기준 최대치를 보였으며, 12개월 연속으로 월별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은 “미국 경기가 급격히 악화한다면 자연스럽게 미국의 수요가 줄 것”이라며 “우리나라의 수출도 둔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국내 경제를 이끌고 있는 반도체와 밀접한 ‘인공지능(AI) 거품론’도 국내 경제·증시 회복에 부담스럽다. 챗GPT 이후 빠르게 성장해온 AI 산업은 현재 수익성 문제가 대두됐고, 엔비디아 등 미국 테크업종의 2분기 실적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AI 시장이 위축된다면 한국 수출품목 1위인 반도체 산업에도 악영향을 받는다. 여기에 중동지역 위기감까지 고조, 국제유가가 다시 급등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d이 경우 안정세로 접어든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세에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중동지역 전쟁이 확산해 유가가 급등하면 우리 경제가 회복하는 데 큰 어려움을 주기 때문에 지켜봐야 할 변수”라고 말했다. 증시 상승 동력 확보를 위한 경기 개선에 악재로 꼽히는 내부 요소 역시 많다. 대표적인 것이 고물가·고금리에 따란 소비·투자 위축이다. 통계청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소매판매는 작년보다 2.9% 감소했다. 2009년 1분기(-4.5%) 이후 약 15년 만에 최대 폭 감소다. 2분기 설비투자는 작년보다 1.3%, 건설기성(불변)은 2.4% 감소하는 등 투자도 부진한 모습이다. 갑작스럽게 불거진 티몬·위메프 미정산 사태도 소비 심리를 한층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꼽힌다. 금융감독원이 파악한 티몬·위메프의 판매대금 미정산 규모는 지난달 31일 기준 2745억원이다. 정부는 미정산 금액이 최대 1조원에 육박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주가가 내리고 미국 경제의 침체가 현실화한다면 우리 경제의 소비·투자가 원래 경로보다 위축되거나 회복이 뒤로 밀릴 가능성이 있다"며 "경제 성장률에 비해서 체감은 잘 안되는, 온도 차가 있는 양극화된 경기 흐름이 더 심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수 결손’ 또한 악재다. 올해 상반기 국세 수입은 168조6000억원으로 작년 상반기보다 9조9800억원(5.6%) 감소했다. 작년에 이어 2년 연속 세수 결손이 확실시되고 있다. 한편, 미국의 경착륙을 확신하기에는 과하다는 시선 또한 있다. 5일 국내 증시 폭락은 정상적인 주가 조정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경착륙을 우려할 정도는 아니라는 의견이다. 해당 의견의 근거는 911테러,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이다. 최근 증시 폭락이 과연 그때만큼 위험한 상황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얘기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5일 코스피 폭락은 침체 우려, AI 버블, 엔케리 트레이드 청산 등 여러 가지 요소가 맞물려 있다”며 “그렇지만 하루만에 8% 이상이 하락한 것은 조금 과한 우려에 따른 움직임”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다행히 과거 주가 급락 후 시차를 두고 복원되는 경험들이 적지 않았다는 점을 통해 빠르게 반등을 예측할 수 있다”며 “역대 코스피 하루 급락 사례들과 급등 사례를 보면 시기가 유사한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도 “미국의 고용지표 둔화와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 지표로는 경착륙을 단언하기 어렵다”며 “초과 저축분이 소진되고 코로나19로 봉쇄된 이민이 풀리자 구직이 늘어나면서 노동시장 과열됐다 진정되는 과정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 또한 “미국의 경제지표가 나빠진 건 맞지만 주가지수가 이 정도로 폭락할 정도는 아니다”라며 “주식시장 자체의 문제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