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호준 칼럼] 역사를 잊고자 하는 경기도에 미래는 없다

2025-08-08     매일일보
유호준
"역사를 내어 주고 얻고자 하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와 관련해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SNS를 통해 분노를 드러내며 쓴 글입니다. 한반도 노동자들의 강제노동이 이뤄졌던 일본 니가타현 사도광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고, 요미우리 신문은 "일본이 강제노동 문구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한국 정부가 수용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 일본이 자신의 전쟁범죄 역사를 지우기 위한 노력에 우리 정부가 침묵 내지는 동의했다는 점에서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김동연 지사에게 묻고 싶습니다. 왜 경기도가 가해자였던 기지촌 여성 피해자들의 역사를 지우려고 하는 시도에 대해서는 침묵하십니까? 동두천 소요산 입구에 자리한 미군 기지촌 여성들의 성병을 관리하던 성병관리소 건물은 1973년에 설립되어 1992년까지 운영되다가 1996년 폐쇄되었습니다. 경기도에는 이러한 성병관리소가 6개소 있었지만, 현재는 동두천 성병관리소 건물만 유일하게 원형 그대로 유지되어 있습니다. 동두천시는 소요산 확대개발사업을 위해 옛 성병관리소 건물을 철거할 방침을 밝혔습니다. 이 공간이 사라지면 이제 국가폭력의 공간이었던 성병관리소 건물은 다 사라집니다. 우리 정부가 국가폭력의 가해자였음을 기록하는 공간이 또 하나 사라지는 셈입니다.  2022년 9월 대법원은 정부 주도로 성병관리소를 운영했던 기지촌 문제는 국가폭력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기지촌 여성들이 그 폭력의 피해자임을 확인했습니다. 경기여성가족재단이 2020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경기도도 미군 ‘위안부’에게 유흥영업종사자의 등록증(검진증)을 교부하는 등 경기도 역시 국가폭력의 가해자였다고 합니다. 김동연 지사는 일본의 전쟁 범죄 가해 역사 지우기에는 분노하시면서 이처럼 경기도가 가해자였던 기지촌 여성 피해자의 역사를 지우려는 시도에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국가폭력의 또 다른 대표적인 공간이었던 남영동 대공분실은 이제 민주인권기념관이 되어 보존되고, 아픔을 기억하며 희망으로 미래를 열어가는 기념시설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동두천 옛 성병관리소도 기지촌 여성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행해졌던 국가폭력을 기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어야만 합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부끄러운 역사도 우리의 역사입니다. 수많은 친일파들이 제국주의에 부역했던 역사를 기억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 정부가 기지촌 여성들의 성판매를 조장하고, 성병관리소를 만들어 강제로 검진과 치료를 강요하는 등의 국가폭력의 가해자였다는 사실 역시 기억해야 합니다. 오는 9월 기존의 '기지촌 여성'을 '기지촌 여성 피해자'로 바꾸어 기지촌 여성들이 국가폭력의 피해자였음을 명확히 하고, 기지촌 여성 피해자에 관한 역사적 자료, 공간 등의 보존 등 기념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기존 '경기도 기지촌 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를 새롭게 '경기도 기지촌 여성 피해자 보호·지원 및 기념사업 등에 관한 조례'로 바꾸는 조례 개정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이를 통해 옛 성병관리소의 보전을 비롯해 경기도 내 기지촌 여성 피해자들과 국가폭력 가해자들을 기록하는 일에 김동연 도지사가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제 일은 여기까지입니다. 이제 남은 건 김동연 경기도지사께서 기지촌 여성 피해자들에게 경기도의 부끄러운 과거를 사과하고, 기념사업에 나설 의지를 밝히실 차례입니다. 역사를 잊고자 하는 경기도엔 미래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