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역대급 재난이 된 폭염, 온열질환 예방하고 취약층 보호에 총력 지원을

2025-08-08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박근종

매일일보  |  과거에는 보기 드물었던 이상기후가 점차 ‘뉴노멀(New Normal │ 새로운 표준)’이 된 가운데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폭염(暴炎)이 시작됐다. 기후 위기의 영향으로 매년 폭염일수가 늘어난 가운데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경보·폭염주의보 등 폭염특보가 내려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밭일하다 쓰러진 60대 여성이 숨지는 등 열사병으로 숨진 사례가 계속 발생하고 전북 익산에서는 폭염 속에 하루 사이 화재 진압 등 6차례 현장 출동을 한 익산소방서 소속 한 소방관이 쓰러져 숨을 거뒀으며, 최근 프로야구 경기가 역대 처음으로 폭염 때문에 취소되기도 했다. ‘최고기온 섭씨 35도 이상이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라는 한국야구위원회(KBO) 규정에 따라서다.  찜통 같은 무더위 속에서 온열질환자와 사망자 수도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폭염위기경보를 ‘심각’ 단계로 올리고 폭염 피해를 막기 위한 범정부 차원의 대응에 나서고 있다. 질병관리청의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에 따르면 지난 8월 6일 오후 4시까지 발생한 온열질환자는 1,810명,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는 17명으로 집계됐다. 오는 8월 15일까지 이런 극한 폭염이 계속 이어진다니 고령자 등 사회적 약자들로서는 걱정이 아닐 수 없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제3조(정의) 제1호 가목에서는 폭염을 ‘자연재난’으로 정의하고 있다. 대전지방검찰청은 건설노동자의 열사병 사망과 관련해 폭염 시 작업중지권 등 대응 매뉴얼을 마련하지 않았다며 사용자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등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한 사실도 확인됐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폭염을 일상적 자연재난으로 인식하고 폭염 대책을 재점검하고 보완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절기상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입추(立秋)인 지난 8월 7일에도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더운 바람이 밤낮없이 불어 들면서 열대야로 잠 못 드는 밤도 길어지고 있다. 8월 들어서도 폭염과 열대야가 이어지면서 8월 7일 기준 서울은 7월 21일 이후 17일째, 강릉은 7월 19일 이후 19일째, 제주는 7월 15일 이후 23일째 열대야가 지속되고 있다.  올해 들어 전날까지 발생한 열대야 일수는 12.6일로 최악의 폭염으로 기록된 2018년의 같은 기간 10.8일보다 이틀가량 많다. 이런 기세라면 1994년(16.8일)과 2018년(16.6일)의 최다 열대야 일수 기록을 경신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 기간 폭염일수는 올해가 11.5일로 2018년 22.2일의 절반 수준인 점과는 대조적이다. 한반도 상공에 형성된 강한 고기압 여파로 고온다습한 바람이 해가 진 뒤에도 유입되는 탓이다.  지금 한반도 주변 기압계는 역대 최악의 폭염이 닥쳤던 2018년 여름과 유사하다. 북태평양 고기압과 티베트 고기압이 두 겹의 이불처럼 우리나라를 중층으로 덮은 열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대기 하층부로 유입되는 고온다습한 공기가 상층부의 두 고기압에 막혀 빠져나가지 못한다. 열돔에 갇힌 전국에서 40도 넘는 기온이 관측되고, 해발 965m 고지대에 폭염특보가 발령되고, 최저기온이 30도를 웃도는 초열대야가 나타나고 있다.  여름이 끝나려면 아직도 멀다. 기상청은 8월 7일 전국에 폭염특보를 내렸다. 이날 오후 5시 기준 주요 지역 최고 체감온도는 ▷경기 용인(이동읍) 37.9도, ▷전남 화순(능주면) 37.6도, ▷경북 예천(지보면) 37.4도, ▷경남 진주(대곡면) 37.0도 등이다. 온열질환은 땀을 많이 흘려 수분이나 염분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는 열탈진이 절반에 달하고 열사병도 22%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폭염으로 인한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물을 자주 마시거나 활동을 자제하고, 샤워를 자주하며, 외출시에는 양산과 모자 등으로 햇볕을 차단해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더운 시간대인 정오~오후 5시에는 야외활동을 중단하고 시원한 곳에 머무르는 등 더위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폭염은 누구에게나 괴롭지만, 사회적 약자에 피해가 집중된다는 점에서 가장 ‘불평등한 재난’으로 꼽힌다. ‘존 C. 머터(JOHN C. MUTTER)’ 컬럼비아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재난의 상황은 늘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하며, 자연보다는 인간이 더 큰 피해를 준다.’라고 역설했다. 어떤 기상재해보다 많은 인명을 소리 없이 앗아가는 ‘침묵의 살인자(Silent Killer)’인 폭염이 우리 여름의 일상이 됐다.  온열질환은 이상 고온에 노출돼 발생하는 두통, 어지럼증, 근육경련, 피로감 등의 증상으로, 이를 방치하면 생명을 위협받는다. 이런 건강장해는 누구에게나 닥치는 문제지만 고령자나 사회적 약자에게 발생할 가능성이 더 크다. 최근 폭염으로 인해 숨진 사람들도 밭에서 일하던 78세 여성과 65세 남성, 집에 있던 71세 여성 등 고령자들이다. 지난 7월 30일 부산 연제구 메디컬 센터 건설공사 현장에서 60대 노동자가 폭염으로 숨졌다. 쓰러질 당시 체온이 40도에 달했다고 한다. 그날 연제구의 기온은 35도를 넘어섰고, 부산에는 폭염특보가 13일째 이어지고 있었다. 체감 온도가 33도 이상이면 시간당 10~15분씩 휴식 시간을 갖도록 하라는 고용노동부 ‘권고사항’이 얼마나 무용지물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폭염 피해 같은 산업재해 위험이 있을 때 근로자가 작업 중지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의무사항이 아니라 현장에선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온다.  하지만 이번 대전지방검찰청은 하청노동자의 열사병 사망의 책임을 물어 원청 건설업체 대표이사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원청업체 현장소장과 하청업체 현장소장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로 지난 7월 1일 불구속 기소한 사례는 건설 현장에서 빈번한 산재 사망 원인인 떨어짐·끼임·무너짐 등 사고성 재해 못지않게 폭염도 중대 산업재해를 일으키는 긴급한 위험으로 본 것으로 커다란 경종이 아닐 수 없다. 전기요금이 부담스러워 에어컨을 켤 엄두도 내지 못하는 에너지 빈곤층은 생사의 기로에 직면해 있다. 환기도, 통풍도 되지 않는 쪽방촌 거주자와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독거노인 등은 더운 바람이 나오는 선풍기 하나에 의존해야 하는 실정이다. 정부가 냉방비 일부를 보조해주는 에너지 바우처는 대상과 수준이 너무 제한적이어서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2020년 발간한 ‘2020 폭염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인구 1만 명 당 온열질환 발생률은 저소득층인 의료급여 수급자에서 13.8명으로, 고소득층(5분위) 4.8명보다 약 2.87배 정도 높았다. 특히 최악의 폭염이 찾아왔던 2018년 소득 계층별 온열질환 발생률을 보면 인구 1만 명 당 의료급여 수급자 21.2명으로, 고소득층 7.4명보다 2.86배 정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폭염일수 증가에 따라 온열질환자 발생률이 상승하며 65세 이상 고령인구의 경우 1만 명 당 발생률은 9.8명, 65세 미만은 4.3명으로 나타나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65세 미만보다 2.28배 많다.  당장 급한 것은 취약계층과 근로자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에너지 빈곤층에 무더위 쉼터 등 폭염 대비 인프라가 충분히 제공되고 있는지, 야외작업 수칙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정부가 지원을 강화하지 않으면 올해도 2018년과 같은 상황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음을 각별 유념해야 한다. 정부는 2018년부터 폭염을 ‘자연재난’에 포함시켜 대응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폭염 대처 현장관리관을 각 시·도에 급파했고, 지방자치단체도 재난대책본부를 꾸렸다. 지난 6년간 정부와 지자체가 개발한 각종 폭염 대책을 서둘러 제도화할 때가 됐다. 현재 권고사항인 폭염 시 작업 중지나 유연 근무를 법제화하는 식의 입법이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제 한국에서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나기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여름철 생활필수품이 된 에어컨 사용의 전기료 장벽은 이제 ‘침묵의 살인자’인 폭염에 맞서는 사회안전망 문제로 접근해야만 한다. 점점 길어지고 강도가 높아지는 폭염은 이제 이례적인 자연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인 사회적 재난이 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폭염 때문에 ‘에너지 약자’들이 고통받는 일도 되풀이되지 않도록 취약계층 보호에도 결코 소홀함이 없어야만 한다. 최근 정치권 일각에서 여당의 ‘폭염 전기료 감면’ 제안에 야당이 화답하며 논의가 시작됐다. 여야가 모처럼 같은 목소리를 냈다. 말로만 끝나지 않고 반드시 성과를 내주기를 바란다. 해마다 되풀이되어 발생하는 폭염 속 야외노동자 사망을 막기 위해서는 말뿐인 ‘권고사항’으로는 실효성이 턱없이 부족하다. 22대 국회에 이미 작업 중지를 의무화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는 만큼, 국회는 하루빨리 법안 통과를 위해 초당적인 협력을 해야 한다. 고용노동부가 폭염·한파 시 ‘작업 중지’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법안에 대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라며 사실상 반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지난 6월 28일 국회 입법조사처는 ‘산업안전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 입법영향분석’ 보고서를 발표했는데,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폭염·한파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개정안에 따라 작업 중지가 이루어지는 경우 근로자를 건강장해로부터 보호하는 효과가 있을 거라고 분석했다. 궁극적으로 기업 생산성에도 도움이라는 분석이다. 개정안에 담긴 작업중지권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서도 근로자의 일반 권리로서 보장돼야 하는 권리임을 확인하고 있다고 밝히며, 폭염·한파를 피함으로써 오히려 사업장 생산성 감소와 노동시간 감소를 줄일 수 있고, 산업재해 감소 효과도 클 거로 내다봤다.  정부가 입법적 보완을 어떻게 담보할지 면밀하게 그리고 촘촘히 살펴봐야 할 대목이다. 안전 규제를 당장의 비용이 아니라 장기적 생산요소로 여기는 경영계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뉴노멀(New Normal │ 새로운 표준)’이 된 이상기후에 효율적 대응은 일터와 일상의 안전부터 담보되어야만 한다. 아울러 폭염으로 가축 폐사와 양식장 피해가 잇따르면서 불안정해진 먹거리 물가도 저소득층에게 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지난 6월 11일부터 지난 5일까지 폭염으로 폐사한 가축은 돼지가 2만6천 마리, 가금류 27만7천 마리 등 30만3천 마리에 달한다. 또 양식장에서는 넙치 등 1만 3,000마리가 폐사한 것으로 집계됐다. 폭염이 기승을 부리면서 고랭지의 배추와 무 생산량이 크게 줄고 이에 따른 가격 상승으로 올해 김장 비용이 크게 늘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따라서 정부는 물가 대응을 강화하는 한편 여름철 전력 수요난에도 만반의 대비를 해야 한다. 올여름 전력수요는 지난 5일 93.8GW를 기록해 역대 여름 최대로 집계됐다. 기존 여름철 최대 전력수요는 지난해 8월 7일의 93.6GW다. 여름철 최대 전력 수요는 올해 여름까지 5년 연속 증가세다. 전력 당국이 올여름 확보한 전력 공급능력은 104.2GW 수준이어서 여유가 있어 보인다.  필요할 경우 지난 4월 시(試) 운전을 시작한 신한울 2호기까지 투입해 21기 원전을 가동한다는 계획이라고 한다. 발전기가 고장이 나거나 예비력이 부족할 경우 수요자원(DR), 석탄발전기 출력 상향운전, 전압 하향 조정 등을 통해 최대 7.2GW를 더 수급할 방침이다. 하지만 전력수요가 더 늘어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