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디폴트옵션’ 믿었는데… 수익률 ‘기대이하’

정부, 퇴직연금 사전지정 운용제도 시행 1년 돌입 디폴트옵션 수익률 6개월 1.77%, 1년 5% 못미쳐

2024-08-18     이광표 기자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노동자의 은퇴 준비를 돕기 위한 퇴직연금 사전지정운용제도(디폴트옵션)가 도입 1년을 넘었지만 수익률에 대한 가입자의 불만이 이어지고 있다.

이 제도는 2022년 7월 도입돼 1년간 시범운용을 거쳐 지난해 7월 본격 시행됐다. 주요 연금 선진국에서 운용하는 디폴트옵션 제도를 모델로 하며, 이들 국가의 퇴직연금처럼 연평균 6~8%의 안정적인 수익률이 목표다.

과거 퇴직연금 수익률이 낮았던 이유는 자금이 대부분 예금 같은 원리금보장형 상품으로 운용됐기 때문이다. 원인은 크게 3가지였다. 먼저 퇴직연금 가입자(근로자) 스스로 적극적으로 운용하려는 의지가 없거나 금융투자 지식이 부족한 것이 첫 번째였다. 또 퇴직연금 계좌를 관리하는 퇴직연금 사업자(금융회사)가 계좌 수익률을 높일 수 있도록 유도할 인센티브가 없다는 것이 두 번째였으며, 제도를 관장하는 정부의 무관심이 마지막 원인으로 꼽혔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사전지정운용제도가 기존 퇴직연금 수익률이 물가상승률을 쫓아가기도 버거운 수준이라는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도입됐다는 취지가 무색하다. 가입자의 자금 대부분이 여전히 원리금보장형으로 운용되고 있어서다. 금융감독원 사전지정운용방법 비교공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사전지정운용제도 전체 자금의 89.6%가 은행 예금이나 보험사 이율보증보험계약(GIC) 같은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몰려 있다. 개인이 직접 가입해 관리하는 개인형 퇴직연금(IRP)은 84.1%로 그나마 낫지만, 직장에서 가입된 DC(확정기여)형 퇴직연금의 경우 그 비율이 91.7%나 된다.

사전지정운용제도 도입 후에도 가입자의 자금이 원리금보장형 상품에 집중되는 문제점이 전혀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제도 자체의 기형적 모습이 지적된다. 연금 선진국의 디폴트옵션은 원리금보장형 상품 가입이 제한적이다. 연금은 장기간 투자를 통해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기에 원리금보장형이 아닌 원리금비보장형 상품에 투자돼야 한다. 그런데 한국 제도는 원리금보장형 상품을 100% 선택할 수 있게 돼 있다. 앞서 언급한 연금 선진국과는 다른 모습이다.

또한 한국은 가입자 상당수가 금융회사의 홍보성 독려 때문에 사전지정운용제도에 가입해 있다. 문제는 근로자가 금융회사가 제시하는 6~7개 디폴트옵션 상품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데 있다. 금융투자 지식이 부족한 근로자 입장에서 제시된 상품 설명서만 보고 고르기가 어려우니 그냥 원리금보장형이라고 적힌 초저위험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도입한 사전지정운용제도는 엄밀하게 말하면 선진국형 디폴트옵션이 아니다. 디폴트옵션의 핵심은 근로자(가입자)가 아무런 선택을 하지 않아도 기본(디폴트)으로 선택(옵션)된 자산배분형 포트폴리오로 투자하도록 만들어놓은 것이다. 즉 퇴직연금 사업자가 근로자 특성에 맞춰 디폴트옵션을 정해놓으면 그 옵션대로 투자가 진행된다. 다만 이 디폴트옵션에서 선택적 탈퇴(옵트 아웃: opt out)는 가능하다. 근로자가 일부러 해당 옵션을 해지하거나 탈퇴하겠다고 했을 때만 다른 방식으로 변경되게끔 한 것이다.

DC형 퇴직연금 계좌는 재직 중에 해지할 수 없으니 장기투자에 더없이 적합하다. 자산배분 포트폴리오는 조금만 공부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투자법이다. 퇴직연금 디폴트옵션을 구성하는 상품 역시 자산배분형 펀드이거나 자산배분에 위험자산 비중 조절 기능이 추가된 TDF(타깃데이트펀드)가 대부분이다. 연금 상담을 하다 보면 투자할 돈이 없다는 분들을 만난다. 그분들에게는 다음과 같은 말을 들려준다. “이미 퇴직연금에 충분한 투자 자금을 적립하고 있습니다. 퇴직연금을 잘 챙겨서 굴리면 노후 준비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