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극단적 ‘살인 폭염’ 장기화, 175년 만에 가장 더워 온열질환 주의해야
2025-08-19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매일일보 | 절기는 가을에 들어선다는 ‘입추(立秋)’가 지나간 지도 열흘이 훨씬 넘었지만, 살인적 폭염(暴炎)의 기세는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마치 대한민국 전체가 찜질방이 된 듯한 느낌이다. ‘입추’ 절기가 지나면 마법처럼 날씨가 시원해진다는 의미의 ‘입추 매직’이라는 밈(Meme │ 문화 인자)마저 무색해졌다. '
대한지리학회지(지리학 제14권 제2호 │ 1979년 9월)에 게재된 ‘우리나라 자연 계절에 관한 연구(A Study of Natural Seasons in Korea │ 이병설)’에 따르면 여름이 끝나는 시점은 평균기온 20도 이하, 가을이 시작하는 시점은 최고기온 25도 이하로 정의하고 있는데 이를 근거로 하면 여름은 정점이고 가을은 아득히 멀기만 하다. 올해 여름 역대 최장 열대야를 기록하면서 온열질환자가 누적 2,700명대를 기록하고 추정 사망자도 1명 늘어났다. 지난 8월 17일 질병관리청의 ‘온열질환 응급실 감시체계’에 따르면 전날 기준 하루 온열질환자는 43명 늘었다. 이로써 올해 감시체계가 가동된 지난 5월 20일부터 8월 16일까지 온열질환 누적 환자는 2,704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발생한 2,377명보다 327명이 늘어나 13.8% 증가한 수치다. 사망자 수는 23명으로 전날보다 1명 추가로 발생했다. 이렇듯 기록적인 폭염으로 인해 가축과 양식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월 17일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따르면 지난 6월 중순부터 두 달여 동안 가축 90여만 마리가 폐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폐사한 가축은 가금류가 84만 8,000여 마리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돼지도 5만 2,000여 마리가 죽었다. 고수온으로 인해 우럭과 넙치 등 127만 8,000여 마리의 양식장 어류 피해도 접수됐다. 더욱 심각한 것은 밤낮이 없다는 데 있다. 낮엔 연일 폭염 경보가 뜨고, 밤엔 그 열기가 식지 않아 초열대야 현상에 시달린다. 30℃ 중후반의 폭염은 예사로운 일이다. 밤 온도까지 30℃에 육박한다. 온열질환 위험을 피해갈 시간대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달 21일부터 열대야가 나타난 서울의 경우 역대 최장 열대야 기록을 27일로 늘렸다. 서울에서 기상 관측을 시작한 1907년 이래 118년 만에 가장 긴 열대야 일수를 기록한 서울은 당분간 무더위가 계속될 것으로 전망돼 최장 열대야 기록은 다음 주까지 매일 갈아 치울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부산은 지난달 25일부터 23일째, 제주는 지난달 15일부터 33일째 열대야가 이어졌다. 전국 곳곳에서도 40℃에 육박하는 무더운 날씨가 이어졌다. 전국 183개 구역 중 제주 산지를 제외한 182곳에 폭염특보도 내려지기도 했다. ‘폭염주의보’는 하루 최고기온 33℃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발령하고, ‘폭염 경보’는 하루 최고기온 35℃ 이상인 상태가 2일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될 때 발령한다. ‘열대야’는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최저기온이 25℃ 이상인 밤을, ‘초열대야’는 밤 최저기온이 30℃ 이상인 밤을 말한다. ‘폭염 경보’와 ‘초열대야가’ 일상처럼 돼 버린 지금,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이 온열질환이다. 온열질환은 이상 고온에 노출돼 발생하는 두통, 어지럼증, 근육경련, 피로감 등의 증상으로, 이를 방치하면 생명을 위협받는다. 이런 건강장해는 누구에게나 닥치는 문제지만 고령자나 사회적 약자에게 발생할 가능성이 더 크다. 폭염은 누구에게나 괴롭지만, 사회적 약자에 피해가 집중된다는 점에서 가장 ‘불평등한 재난’으로 꼽힌다. ‘존 C. 머터(JOHN C. MUTTER)’ 컬럼비아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재난의 상황은 늘 사회적 약자에게 더 가혹하며, 자연보다는 인간이 더 큰 피해를 준다.’라고 역설했다. 어떤 기상재해보다 많은 인명을 소리 없이 앗아가는 ‘침묵의 살인자(Silent Killer)’인 폭염이 우리 여름의 일상이 됐다. 최근 폭염으로 인해 숨진 사람들도 밭에서 일하던 78세 여성과 65세 남성, 집에 있던 71세 여성 등 고령자들이다. 올해 발생한 온열질환자 2,704명의 연령 별로는 50대(18.7%), 60대(18.5%), 40대(14.2%) 순이었음은 이를 방증(傍證)한다. 올여름 역대 최악 폭염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가 함께 겪고 있다. 지난 8월 17일(현지 시각)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에 따르면, 올해 7월은 기상 관측 기록상 지구가 겪은 가장 더운 7월이었다. NOAA는 “현재 지구의 월 최고기온 기록은 14개월 연속으로 깨지고 있다”라고 했다. NOAA가 집계한 지난 7월의 지구 평균 지상 기온은 섭씨 17.01℃였다. 이는 지구 전체 단위로 기상 관측을 시작한 1850년 이후 175년 만에 가장 높은 7월의 온도라고 한다. 20세기 평균기온인 15.8℃보다 무려 1.21℃나 더 높다. 올해 1~7월 지구 표면 온도 평균 역시 15.08℃로 20세기 같은 기간 평균기온 13.8℃보다 1.28℃ 높아 관측 이래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NOAA 산하 국립환경정보센터(NCEI)의 전망에 따르면 2024년이 관측 역사상 가장 더운 해가 될 확률은 77%로 추정된다. 유럽에서도 올해 지독히 더운 여름을 겪으며 최고기온 기록이 연일 바뀌고 있다. 이탈리아는 낮 체감 기온이 40℃에 육박해 수도 로마 등에 폭염 경보가 내려졌다. 스페인도 남부 안달루시아 등에서 40℃를 넘는 폭염이 나타나고 있다. 이렇듯 전 세계가 폭염에 시달리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도 역대급 폭염이 장기화하면서 온열질환자 발생은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통상 우리나라 무더위는 광복절과 절기상 처서(處暑)를 지나면 꺾이는 추세를 보여왔다. 그러나 올해는 폭염과 열대야가 광복절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에 올해 처서(8월 22일) 이후에도 기온이 바로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상청은 오는 8월 26일까지 최저 24~26도·최고 30~34도의 기온 분포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온열질환은 땀을 많이 흘려 수분이나 염분이 제대로 공급되지 못하는 열탈진이 가장 많이 발생하고 열사병이 다음을 차지하고 있다. 실제로 올해 발생한 온열질환은 열탈진이 55.3%(1,496명)였으며 열사병 21.1%(570명), 열경련 13.9%(377명), 열실신 8.3%(224명) 순이었다. 따라서 폭염으로 인한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물을 자주 마시거나 활동을 자제하고, 샤워(Shower)를 자주 하며, 외출 시에는 양산과 모자 등으로 햇볕을 차단해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더운 시간대인 정오~오후 5시에는 야외활동을 중단하고 시원한 곳에 머무르는 등 더위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특히 체온 38도 이상이거나 피로감, 근육경련, 두통 및 불편함 등 위험 증상이 발견되면 환자의 의식을 확인하고 즉각 시원한 장소로 이동시킨다. 옷을 헐렁하게 풀어 시원하게 하고 수분 및 휴식을 취하게 한 뒤, 경과를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한편 전기요금이 부담스러워 에어컨을 켤 엄두도 내지 못하는 에너지 빈곤층은 생사의 기로(岐路)에 직면해 있다. 환기도, 통풍도 되지 않는 쪽방촌 거주자와 거동이 불편한 장애인, 독거노인 등은 더운 바람이 나오는 선풍기 하나에 의존해야만 하는 실정이다. 점점 길어지고 강도가 높아지는 폭염은 이제 이례적인 자연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인 사회적 재난이 되고 있음을 직시하고 폭염 때문에 ‘에너지 약자’들이 고통받는 일도 되풀이되지 않도록 ‘폭염 전기료 감면’ 등 취약계층 보호에도 결코 소홀함이 없어야만 한다. 특히, 지구 온난화 등을 감안하면 올여름 같은 무더위가 매년 반복될 가능성이 높고 더 심해질 수도 있다. 정부는 하절기 전기요금을 감면하는 ‘에너지 바우처’ 제도 등으로 취약계층을 지원하고 있으나 대상이 한정돼 있어 실효적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여름엔 선풍기를 넘어 에어컨이 생존 필수품이 된 만큼 전기료 감면을 뛰어넘어 세대별 냉방기기 현황을 파악한 뒤 에어컨 구매를 지원하는 등 취약계층에 대한 폭염 지원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꿔야만 한다. 또한 현재 권고사항인 폭염 시 작업 중지나 유연 근무를 법제화하는 입법 추진도 서둘러야만 한다. 해마다 되풀이되어 발생하는 폭염 속 야외노동자 사망을 막기 위해서는 말뿐인 ‘권고사항’만으로는 실효성이 턱없이 부족하다. 22대 국회에 이미 작업 중지를 의무화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발의돼있는 만큼, 국회는 하루빨리 법안 통과를 위해 초당적인 협력을 해야만 한다. 개정안에 담긴 작업중지권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에서도 근로자의 일반 권리로서 보장돼야 하는 권리임을 확인하고 있다. 안전 규제를 당장의 비용이 아니라 장기적 생산요소로 이해하고 인정하는 경영계의 인식 전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성북구도시관리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