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여자와 하룻밤?... ‘캐주얼 섹스’
쾌락과 유희만 넘치는 일회용 성관계 권하는 세상
중, 고등학생 20.4% 결혼 않고 동거만 가능
여대생 절반 성 경험 有, 임신중절 24%
과거 보수적 관념과 사회적 틀 속에서 제한적이고 은밀하게 진행되던 섹스는 20세기 이후 혁명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빠른 변화를 겪었다. 1940~50년대 핀업 걸의 섹스 심벌 이미지는 “플레이보이” 잡지에서 적나라하게 다뤄졌고, 60년대 프리섹스를 거쳐 70년대 각종 포르노 영화에서 절정에 달했다.
이때부터 섹스는 본격적으로 산업화됐고, 각종 섹스 기구와 스와핑, 혼전 동거, 게이, 레즈비언 등이 화두에 오르내렸다. 이제 섹스는 숨기거나 수군거려야 할 테마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즐기고 드러내도 무방한 것이 됐다. 혼전동거, 원나잇 스탠드 등을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 역시 더 이상 새로운 소재가 아니다.
실제로 최근 한 국회의원이 전국 여대생 3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성의식과 실태’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절반 정도가 성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통계는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일명 ‘캐주얼섹스’의 일면을 보여준 것이다. 마음 맞고 몸이 맞으면 ‘원나잇 스탠드’ 쯤은 얼마든지 가능한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결혼에 있어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다뤄보겠다던 드라마 ‘웨딩’, 시청자들에게 무공해 드라마라는 호평을 얻었던 이 드라마는 주인공 장나라와 이현우의 원나잇 스탠드가 밝혀지면서 시청자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제작진은 드라마 전개와 관련 있는 극적 장치로 설정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4월 종영한 드라마 ‘원더풀 라이프’ 또한 대학생들의 하룻밤 ‘관계’로 시작됐다. 여자친구를 찾아 외국으로 날아간 주인공 김재원이 그곳에서 낯선 여자 유진을 만나 우연히 함께 술을 마시고 하룻밤을 보낸다. 원나잇 스탠드의 결과 여주인공은 한국으로 돌아와 아이를 출산한다.
신드롬을 일으켰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는 여주인공 삼순의 절규(?)를 통해 달라진 성인식을 엿볼 수 있었다.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난 너무 오래 굶었어!, 오래 굶은 이 누나는 피눈물이 난다” 등의 대사가 그것이다.
‘혼전동거’ ‘원나잇 스탠드’ 등 드라마 속 이런 소재들은 단순히 드라마의 재미를 위한 장치만은 아니다. 드라마는 허구를 바탕으로 하지만 어떠한 방식으로든 현실의 생활과 사람들의 가치관을 반영한다. 모순적이지만 가장 현실적인 허구인 셈이다.
최근 한나라당 안명옥 의원이 내놓은 조사 결과는 드라마 속 성문화가 곧 현실과 일맥상통함을 보여줬다.
전국 여대생 3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성의식과 실태’에 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여대생 2명 가운데 1명은 성경험이 있으며, 3명 가운데 1명은 현재 성관계 상대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 여학생의 48%가 '성관계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34%는 현재 성관계 상대가 있다고 답했다. 그러나 성 경험자 가운데 반드시 피임을 하는 경우는 47%에 그쳤고, 따라서 임신중절을 했다는 응답도 24%나 이른 것으로 조사됐다.
이 통계는 요즘 방송의 필수요소처럼 등장하는 이른바 캐주얼 섹스의 일면을 보여주는 결과다.
캐주얼 섹스 권하는 사회=이처럼 방송을 통해 보편화된 ‘캐주얼 섹스’는 자칫 어린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성 인식을 심어줄 위험이 있다.
지난 5월 한국사회조사연구소가 도내 33개 초.중.고교생 1천68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20.4%는 결혼하지 않고 동거만 해도 되며, 36.4%는 혼전 동거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했다. ‘혼전동거가 가능한갗 에 대해 중학생은 `해서는 안된다`(50.4%)는 응답이 `할 수 있다`(27.8%)는 응답보다 많은 데 비해 고교생은 긍정의견(45%)이 부정의견(29.5%)보다 많았다.
같은 달 맥스무비와 미디어라인 코리아는 ‘2005년 한국판 킨제이 보고서’라는 흥미로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알프레드 킨제이 박사(1894~1956)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성 연구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연구는 금기시됐던 성에 관한 담론을 세상 밖으로 끌어내 50년대 미국사회에 큰 충격을 가져왔다.
여성 8천명, 남성 5천300명을 대상으로 15년에 걸쳐 "지금까지 상대한 파트너의 수는?" "자위행위는 일주일에 몇 번이나 하나?" "오르가슴을 언제 느꼈는가?" 등등 성 관계 횟수, 섹스 시간, 성감대 등에 관해 노골적 조사를 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성은 곧 죄악이라 여기며 눈쌀을 찌푸리던 사람들 중 무려 남성의 92%, 여성의 62%가 일상적으로 자위 행위를 하며 동성애를 한 번 이상 경험한 남성이 37%, 여성이 19%에 달했다.
또, 여성의 절반 정도가 혼전 성관계를 경험했으며, 26%가 혼외 정사를 즐기고 있다는 충격적인 결과가 나왔다. 1만8천 명의 인터뷰를 조사, 분석한 이 보고서의 이름은 '뉴스위크'가 "다윈의 진화론 이래 이보다 더 충격적인 과학서는 없었다"고 표현한 일련의 '킨제이 보고서'였다.
조사 결과 성인의 67%가 다른 이성과 관계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 결과를 좀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섹스를 처음 경험한 시기에 관한 질문에서 응답자의 48.5%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35.50%가 ‘20대 중·후반’, ‘아직 없다’가 13.5%, ‘30대 이후’가 2.6%였다. 즉 전체 응답자의 83.5%가 10대에서 20대 사이에 처음 성경험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금까지 섹스파트너가 몇 명이나 되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1~2명’(44.9%)이 제일 많았고, ‘5명이상’이 19.6%, ‘없다’(17.6%)와 ‘3~5명’(17.4%)은 비슷한 퍼센트를 기록했다.
이런 조사결과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고리타분한 순결 이데올로기 운운하기 위함이 아니다. 섹스 자체를 하나의 도구화, 일회성화 시켜 버리는 인식의 문제인 것이다.
물론 섹스를 통한 성적 쾌락 그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섹스 후에 뒤따르는 가장 기본적 예의와 책임 없이 오로지 육체적 쾌락, 놀이, 유희만이 목표가 돼버리는 세태가 문제다.
가장 단적인 예가 ‘대한민국 낙태율 세계1위’라는 조사결과다. 인구4천만의 한국에서 한해 평균 낙태 건수 150만~200만 건이라는 엄청난 수치를 기록한다.
성문화가 음지에서 양지로, 금기시되던 관습에서 개방적이고 건전한 육체적 즐거움의 하나로 바뀌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긍정적이고 밝은 것과 가볍고 일회적인 것의 차이점은 엄연히 존재함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편 ‘여대생 절반이 성 경험있다’는 안 의원의 설문조사 결과에 대해 네티즌들은 사이버 상에서 한바탕 설전을 벌였다.
일단 표본 조사 집단의 수가 너무 적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고작 300명이 조금 넘는 숫자로 전국 여대생의 상황을 대표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런가 하면 “조사에 나온 수치보다 훨씬 많은 것이다. 주변에 보면 대부분 성관계 경험이 있다” 고 주장하는 네티즌들이 상당수였다. 반면 “절반 이사이라니 너무 높은 수치다.
그런 경우는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또 “왜 여자만 조사를 하냐? 성관계를 여성 혼자만 하는갚 라고 반박하는 글도 눈에 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