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불법행위 '망신살'

미국선 불공정거래...한국선 공정위 조사 방해

2006-10-21     권민경 기자

3천억 벌금, 미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액수
담합 관련 삼성직원 7명 기소 가능성 있어

삼성전자가 미국에서 반도체 가격을 담합한 혐의로 3억달러(약 3천 억 원)의 벌금을 물게 됐다. 미국의 불공정 거래와 관련한 벌금으로는 지난 99년 비타민 가격 담합 혐의로 로슈홀딩 AG가 낸 5억 달러에 이어 미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액수다. 또 부시 행정부 하에서 추징된 벌금으로는 가장 많은 액수다.

미 법무부의 토머스 바닛 반독점국장은 지난 10월 13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통해 삼성전자가 하이닉스, 인피니언,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와 가격을 담합했다는 사실을 인정함에 따라 벌금으로 3억 달러를 납부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미 법무부는 또 이번 합의가 이 사건과 관련된 삼성전자 직원 7명에 대해 형사책임을 면제하는 것은 아니라면서 기소 가능성을 시사했다. 바넷 국장은 “이들은 합의에서 제외됐다”면서 7명의 신원은 밝히지 않았지만, 이들에게는 별도의 형사범죄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음을 밝혔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담합 등을 통해 경쟁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를 형사범으로 간주해 엄한 처벌을 내린 것이다. 이는 미국의 반독점법이 얼마나 엄한가를 입증하는 단적인 보여준다. 미 법무부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삼성반도체 미국 현지법인은 1999년 4월부터 2002년 6월까지 다른 반도체 회사들과 D램 칩 가격을 담합한 혐의로 지난 3년 동안 미 당국의 수사를 받아왔다. 미국의 델과 HP, IBM등 PC 제조업체들이 PC 가격은 하락하는데도 D램 가격이 계속해서 오르자 반도체 회사들의 담합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D램 가격은 공급 초과 등으로 하락세였으나 2001년 11월부터 4개월간 128메가 제품의 경우 4배로 오른 데 이어 2002년 6월부터 9월까지는 128메가 DDR 가격이 배로 급상승했다. 2002년 6월 미 법무부는 곧 미국의 마이크론과 독일 인피니온, 한국의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고 이에 마이크론은 2004년 1월에 유죄를 인정하고 정보를 제공하면서 사면을 받았다. 그러나 뒤늦게 유죄를 인정한 인피니온과 하이닉스는 각각 1억6천만 달러와 1억8천500만 달러의 벌금을 물었다. 또 인피니온사 직원 4명은 실형을 받고 복역했다.마이크론은 재빨리 죄를 인정한 덕분에 벌금 한 푼 내지 않고 풀려났지만 삼성전자를 비롯한 한국과 유럽의 반도체 회사들은 대가를 톡톡히 치른 셈이다. 알베르토 곤살레스 미 법무장관은 이번 사건 합의와 관련, “가격 담합은 자유시장체제를 위협하고 혁신을 저해하며, 미국 소비자들로부터 경쟁 가격의 이득을 앗아간다.”고 밝혔다.미 법무부와 삼성전자가 합의한 3억 달러 벌금은 샌프란시스코 지방법원의 승인을 거쳐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 사건과 관련된 삼성전자 직원 7명에 대해서는 기소 가능성이 제기됐다. 바넷 국장은 “이들은 합의에서 제외됐다”면서 7명의 신원은 밝히지 않았지만, 이들에게는 별도의 형사범죄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음을 밝혔다. 바넷 국장은 “우리는 개인의 기소를 반독점 행위 처벌과 저지 노력의 중요한 요소로 보고 있으며 적극 가담자를 기소해 미국 내에서 복역시키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또 반도체회사들의 미국 내 가격 담합행위와 관련해 독일 인피니온 테크놀로지사의 임원 4명이 이미 유죄판결을 받고 미국 내 감옥에서 복역했다고 덧붙였다.이번 가격 담합 사건과 관련해 삼성전자 내부에서 특별한 자성의 움직임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3천억 벌금을 물게 된 것이 딱히 ‘유죄’를 인정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단순히 사안에 대해 ‘타결’을 본 것”이라고 말했다. 또“이번 사건 이후 답함행위와 관련한 어떤 공식적 지침이 내려오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한편 이 관계자는 “거액의 벌금을 물기로 했지만 이미 미국 법인이 지난해와 올해에 충당금 적립을 완료한 상태여서 전체적인 경영에는 영향이 없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미국 현지 반도체법인(SSI)은 지난해 4·4분기에 1억 달러의 충당금을 쌓은 데 이어 올 3·4분기에 추가로 2억 달러를 충당했다. 추가 충당금 2억 달러 부분은 3·4분기 실적에서 지분법 평가손에 따른 영업외 비용으로 반영됐다.담합을 이유로 3억 달러라는 막대한 벌금을 물게 된 데 대해 일각에서는 너무 과하다는 의견도 있다. 업계에서도 “삼성전자의 독주에 대한 미국 업체의 견제”라는 시각이 많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자유시장체체가 확립되면서 공정경쟁과 기업윤리에 대한 기준이 점차 높아지고 있음을 강조했다.

미국이나 유럽 연합(EU)의 경우 반독점법에 대해 우리와 달리 처벌이 상당히 엄격하다. 세계 최대의 기업 마이크로소프트(MS) 역시 2003년 반독점 혐의로 피소돼 리얼네트워크사에 7억7천만 달러에 달하는 현금 및 기술 지원을 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또 지난해 EU로부터 반독점법 위반행위로 6억 달러(7천200억)억)의 벌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이 사건은 지난 98년 12월 마이크로소프트 경쟁사인 선마이크로시스템스가 EU감독기관에 “MS가 데스크톱 시장의 우월적인 지위를 악용, 서버 시장에서 불공정한 경쟁을 자행하고 있다”고 고소함으로써 시작됐다. 이제 국제 사회에서 공정경쟁을 하지 않는 기업은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정부에 의한 반독점법 규제도 그렇거니와 독점을 행하는 기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반응도 부정적이다. 그만큼 기업 이미지를 깎아먹는 일이다. 특히 해외에서는 자유시장 질서를 조금이라도 어지럽히는 행위에 대해 경쟁기업들이 즉각적으로 제보를 하고 정부의 처벌 역시 가혹해지는 추세다. 해외 진출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해지고 수출에 상당부분 의존하는 국내 기업의 경우 이런 현실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됐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기업들이 가장 눈독을 들이고 있는 중국 역시 다국적 기업의 시장 독점을 막는 반독점법을 시행할 예정이어서 각국은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이 법이 발효될 경우 중국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일부 다국적기업은 큰 타격이 예상된다. 우리나라 역시 ‘중국 반독점법 관련 세미나’ 등을 개최하며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한편 삼성은 미국에서 3천억이라는 거액의 벌금을 무는데 합의한 것과 달리 국내에서는 공정위의 조사를 어떻게든 피해가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공정위는 최근 삼성전자의 ‘공정위 조사 대응지침’이라는 문건을 공개해 이들이 얼마나 조직적으로 공정위 조사를 방해하고 있는지 보여줬다. 삼성전자가 계열사에 내려 보낸 이 문건은 ‘전 직원들 비망록(특히 여직원 수첩)은 반드시 폐기’ ‘조직도, 전화번호부, 부서별 업무분장표 삭제’ ‘보관 중인 전 문서 전수검사 후 필요시 폐기 혹은 이관할 것’ 등의 구체적인 행동요령을 적고 있다. 이와 관련해 강철규 위원장은 “공정위의 조사를 방해하는 기업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조사 방해가 계속되면 형사처벌 규정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에 대해 “그런 문건이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전혀 모르는 얘기” 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