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스펙 좋은 사람 뽑는 것은 당연?”

겉으로만 ‘창조적 열린 채용’…알고 보면 화려한 닫힌 채용?!

2009-11-06     이진영 기자

[매일일보 = 이진영·김경탁 기자]  인터넷 포탈 사이트의 묻고답하기 게시판이나 취업관련 카페에는 “△△에 입사하려면 스펙은 얼마나 되어야 하나요?”라는 질문이 종종 올라온다. ‘스펙’이란 직장을 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학력, 학점, 토익 점수 따위를 합한 것을 이르는 말로 ‘명세서’라는 뜻의 ‘specification’에서 유래된 단어이다.

대학생들이 새내기 시절부터 스펙 쌓기에 몰두한다고 혀를 차던 것은 이제 까마득한 옛말이고, 이제는 심한 경우 초·중등학교 시절부터 먼 장래를 위해 스펙을 쌓고 있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오는 시대이다.

취업준비생들 끼리의 스펙 쌓기 경쟁이 심화되다 보니 대학졸업을 미루고 해외어학연수를 다녀오는 것은 이제 기본이고, 외국대학의 MBA(경영학 석사)를 따와도 취업이 쉽지 않다는 하소연도 쉽게 들을 수 있다.

국내 대기업의 직원채용 트렌드를 선도해온 삼성그룹이 1995년 신입사원 공채에서 학벌제한을 철폐하겠다고 선언한지 벌써 1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취업준비생들의 스펙쌓기 경쟁은 오히려 더 심해져만 가는 분위기이다.

이와 관련해 <매일일보>이 삼성전자의 ‘창조적 신입사원 채용제도 도입’발표를 계기로 삼성의 ‘열린채용’제도의 허와 실을 추적한 결과 ‘열린채용’이 실제 내용적으로도 열려있는지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삼성전자 “부서장의 학연·지연이 당락에 영향 미치는 일 절대 없다”

학벌없는사회 “진짜 열렸다면 학력기재 없애고 지방대쿼터 도입해야”

삼성전자는 11월 2일 “창조적 조직 문화에 맞는 실무형 인재 선발을 위해 혁신적인 신입사원 채용제도를 도입해 하반기 인턴십 선발부터 적용해 나가기로 했다”고 발표하고, 12일부터 16일까지 지원을 받아 약 800명 정도의 인턴을 선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제도는 기존 인문계와 이공계 인턴십으로 구분하여 별도로 시행해 오던 인턴십 과정을 하나로 통합하고 실습기간을 현행보다 2배 이상 확대하여 8∼9주짜리 실습프로그램으로 개선하여 실무능력이 철저히 검증된 인재 위주로 채용하는 방식.기존의 삼성전자 인턴은 4주 과정을 마친 사람에게 정규 공채시에 가산점을 줄 뿐 정규직 채용으로 연결하지는 않았는데, 앞으로는 인턴사원이 정규직으로 바로 채용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말이다.삼성전자 측은 인턴십 개편의 가장 큰 특징에 대해 지금까지 삼성직무적성검사(SSAT)만으로 선발해, 실습 후 면접에 일부 가점을 주던 기존 방식과 달리 SSAT 및 면접으로 선발하고 실습 성적이 우수하면 최종면접을 거쳐 실제 채용으로 연결함으로써 채용과의 연계성을 높인 점이라고 설명했다.신입사원 채용제도 변경을 통해 ‘직무와 성과 중심’으로 평가기준을 전환하고, 입사시 실제 근무할 부서에서 미리 실습토록 함으로써 해당 부서장들의 평가가 최종 채용 의사결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이에 따라 인턴선발절차 또한 한층 강화될 예정으로, 기존의 짧은 면접시간(1인당 35분)이 지닌 문제점들을 보완하기 위해 1시간 동안 실시되는 집중면접을 새롭게 도입하여 지원자들의 전공능력과 잠재역량을 최대한 검증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인턴십 과정 개편에 대해 삼성전자 인사팀 관계자는 “기존의 상하반기 공채제도는 현행대로 유지할 예정이나, 이번 시행결과의 추이를 살펴가며 향후 인턴의 비중을 점차 늘려 나가는 것을 검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언론 호들갑? 삼성 “면접 길어진 것 뿐”

삼성그룹은 지난 1995년 입사지원자격에 학력제한을 철폐한 ‘열린채용제’를 처음 도입해서 화제가 된 바 있는데, 이번에 발표된 실무형 신입사원 채용제도는 기존의 열린채용 방식을 업그레이드시킨 것이다.본인이 노력하고 준비만 하면 학력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다는 삼성의 ‘열린채용제도’는 타 대기업의 신입사원 채용방식과는 다른 성격을 띠는 것은 물론, 학력을 제일 중요시하는 한국 사회를 흔들어 놓을 만큼 파격적인 시도로 호평을 받아왔다. 삼성전자의 신입사원 채용방식이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은 삼성전자가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어하는 꿈의 직장이라는 점과 함께 이 회사의 인사제도 개편이 다른 기업들에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삼성은 분명 누구나가 지원할 수 있는 균등한 자격을 주고 있고, 이는 국내 다른 기업들에 비해 분명히 선진적인 방식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삼성의 신입사원 선발 방식을 ‘열린채용’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삼성전자의 채용제도 개편은 ‘채용제도 혁신’이라는 호평과 함께 여러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삼성전자 관계자는 <매일일보>과의 전화통화에서 개편된 인턴십 선발제도가 기존의 열린채용제도와 비교해 변화된 점은 “면접시간이 좀 늘어난 것뿐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밝혔다.

“스펙 좋은 사람 뽑는 것 당연?”

특히 이 관계자는 “두 인턴 사원의 평가가 똑같았을 때는 출신학교를 보고, 둘 중에 소위 스펙이 좋은 사람을 뽑는 것은 기업 입장으로서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열린채용’을 내걸고 있는 대외적인 홍보와 달리 삼성전자 내부적으로는 신입사원 공채에 학벌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상식이라는 점을 회사 관계자가 스스로 시인한 셈이다.이와 관련해 시민단체인 ‘학벌 없는 사회’관계자는 4일 <매일일보>과의 인터뷰에서 “삼성이 정말 혁신적인 열린채용제를 표방하려고 한다면 지원서에서부터 출신학교 기재를 애초부터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대내외적으로 알려진 ‘열린채용제’의 본질은 학력과 출신을 따지지 않는다는 것인데, 삼성은 지원서에 학교이름을 기재하도록 하기 때문에 지원서를 제출하는 그 시작부터가 ‘말로만 열린채용’이라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학벌 없는 사회’관계자는 “출신학교 기재가 불가피하다면 지방쿼터제를 실시해서 지방대 출신 학생들을 어느 일정 수만큼 뽑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하며, 이것이야말로 혁신적인 것”이라고 덧붙였다.더 큰 문제는 신입사원에 대한 평가를 맡고 있는 부서장의 학력과 지연 등의 이유로 당락이 결정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 이에 대해 삼성전자 관계자는 “부서장은 앞으로 함께 일을 할 참신하고 똑똑한 사원을 뽑는 것이기 때문에 부서장의 평가에 의존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부서장의 학연이나 지연 등이 당락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절대 없고, 해당 부서장들의 평가가 매우 정확하다”고 주장했다.하지만 ‘스펙 좋은 사람을 뽑는 것이 당연하다’는 발언은 부서장의 학연이나 지연이 당락과 상관없다는 주장과 비교해 어딘지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이다.더욱이 <매일일보>이 삼성전자 임원들의 학벌을 분석해본 결과 외국계대학과 영남권대학 출신의 비중이 상당히 큰 것으로 나타나 임원 개개인의 출신과 배경이 신입사원 선발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