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조두순 사건'… 국내 아동성범죄 실태
[매일일보=윤희은 기자] 2008년 12월, 안산시 단원구 교회 화장실에서 8세 여아가 57세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피의자는 성기를 빨라는 요구를 아이가 거부하자 주먹으로 얼굴을 수회 때리고, 이에 아이가 울자 시끄럽다며 목을 졸라 기절시켰다. 이후 아이를 잔혹하게 강간, 이로 인해 아이의 복부와 하복부 및 골반부위에 영구적 상해를 가했다. 항문과 대장기관, 여성 생식기까지 없어진 아이는 평생 인공장치를 달고 살아야한다.
이 사건은 2009년 9월에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졌다. 당시 방송 프로그램이 피해자에 ‘나영이’라는 가명을 썼기 때문에 한동안 ‘나영이 사건’으로 불렸고, 훗날 범인의 이름을 딴 ‘조두순 사건’으로 개칭되었다. 현재 조두순은 징역 12년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국내 아동 성범죄는 올 1,2분기에 185건과 279건이었지만 3분기인 9월까지는 314건으로 대폭 늘어났다. 청소년성문화센터의 고혜경 센터장에 의하면 2000년부터 2008년까지 이루어진 상담소 내부 조사 결과, 유아나 아동에 대한 성폭력이 2.5배 증가했다.
또한 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지난해 13세 미만 아동 성범죄 건수는 1220건으로, 4년 전인 2005년보다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전문가들은 아동성범죄의 증가 원인이 낮은 기소율에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2006년부터 2009년까지 4년간 국내 아동성폭력 피해 실형 선고자는 580명에 불과하고, 기소율은 40% 가량이다. 신고 된 사건 100건 중 60건은 기소 단계 전에 ‘무혐의 처분’을 받고, 기소가 돼도 벌금이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러다보니 “성폭행범이 마음 놓고 범행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는 쓴 소리까지 제기된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정치권이 나섰다. 지난 10월 28일 열린 여성부 국정감사에서는 아동성범죄와 관련한 의원들의 발언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한나라당 이애주 의원은 “여성부가 지원하는 아동성폭행 관련기관인 원스톱지원센터와 해바라기아동센터는 산부인과 여의사가 사건의 증거 채취를 하는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같은 당 김금래 의원은 “피해아동과 가족의 사후 심리 상담 프로그램을 개발”을 여성부에 제안했으며, 민주당 김상희 의원은 “여성부는 아동성폭력 사건이 터졌을 때 계속 모니터링하며 양형 기소율이 낮은 것에 대해 법무부와 협의를 했어야 한다”고 질타했다.
특히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의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는 아동 성폭력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두지 않거나 성인이 될 때까지 정지시키는데, 우리나라도 강력하게 처벌 가능한 사법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 상임공동대표와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상임대표를 지낸 곽 의원은 최근 신낙균, 김금래, 이애주, 김상희, 박선영 의원 등과 더불어 <아동성폭력 피해지원 현황과 과제>라는 제목의 공동 정책자료집을 내기도 했을 정도로 아동성범죄 사태에 지대한 관심을 지닌 전문가.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은 6일 이루어진 <매일일보>과의 서면인터뷰에서도 아동성범죄 근절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 다음은 곽 의원과의 인터뷰 전문.
- 정부가 강력한 처벌 제도를 구축하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동성범죄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아동성범죄가 갈수록 급증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18세 이하 아동청소년 대상 성폭력 사건은 2006년 5159건, 2007년 5460건, 2008년 6339건을 기록하고 있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아동성폭력범의 재범률이 3년 내 71%에 이른다는 점이다.
- 아동성범죄가 계속해서 증가하는 원인을 어디에 있다고 보나.
△ 솜방망이 처벌을 하기 때문이다. 아동이 성폭력을 당했을 때 고소하는 경우가 41.2%, 이중 구속률은 16.5%에 불과하다. 게다가 기소된 사건 중에서 실형을 선고하는 경우는 반도 안 되는 41.8%다. 아동성폭력은 있을 수 없는 반인륜적 범죄다. 보다 엄격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본다.
기소율이 낮은 것도 문제다. 아동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은 수사 과정에서 입게 되는 2차 피해 때문에 피의자에 대한 기소자체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 성폭력 사건이 피해아동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를 주는 범죄인지 그 심각성에 대해 온 국민이 공유해야 하는데 많은 이들이 그것을 모른다. 그게 현실이다.
- 아동성범죄에 대한 검찰과 경찰의 수사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는데.
△ 그렇다. 국감과정에서도 지적됐듯이 조두순 사건에서 피해자는 진술을 5차례나 해야 했다. 처음에는 녹화가 안됐다고 다시 하라고 했다가, 두 번째는 음성이 안됐으니 다시 녹화하자고 하고, 세 번째는 소리가 너무 작게 녹음 됐으니 다시 하자고 했다.
성폭력 사건의 경우, 경찰과 검찰 입장에서 2차 피해를 줄일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제도적으로 마련돼 있는 녹화진술 조차도 지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고, 진술에 있어서도 한번만 하게 하는 게 아니라 경찰․검찰․법원에 거쳐서 계속 진술을 거듭해야 하는 고통을 주고 있다.
- 아동성범죄에 대한 대안책으로 어떠한 것들이 필요하다고 보는지.
△ 양형기준을 높이고 공소시효를 없애는 것을 비롯해, 아동성범죄를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아동들이 생활하는 현장에 아동성범죄 가해자가 일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인터넷을 통해 성을 유인하는 행동에 대해서도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아동기관인 원스톱지원센터와 해바라기아동센터에 근무하는 종사자들의 전문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교육을 더 철저히 하고, 실질적인 원스톱 시스템이 가동되도록 야간에도 진단서 발급이 가능하도록 보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여러 피해자 지원 기관들이 일관된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되도록 연계 방안을 더 연구해야 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