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경 칼럼] 2022 개정 교육과정, 진로는 선택이 아닌 필수

2024-08-29     매일일보
박성경
내년 고등학교 1학년부터 '2022 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된다. 이번 교육과정의 비전은 '포용성과 창의력을 갖춘 주도적인 사람'이다. 특히 주도성(agency)에 대한 강조는 개정의 비전에서뿐 아니라 인간상과 핵심역량에서도 반복적으로 언급되고 있다. 주도성과 관련하여 이번 교육과정의 핵심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고교학점제'의 전면 시행이다. 고교학점제란 진로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 이수하여 누적 학점이 기준에 도달하면 졸업을 인정받는 교육과정 이수 운영 제도이다. 학생들이 졸업을 위해 이수해야 하는 교과목 174학점 중 총 90학점을 자율로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선택이 아닌 필수이수학점이 84학점이 있긴 하나, 1학년 과목과 비주요 교과를 중심으로 편성되어 있으며 고학년 주요 교과는 대부분 자율 이수 학점으로 구성되었다. 과목 선택의 자율권이 늘어났으니 잘하거나 좋아하는 과목을 중심으로 이수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학생들이 많이 보인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치열한 입시 경쟁 속에서 과목의 선택은 나의 주관보다, 대학의 평가 기준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 선택해야 할 것이다. 지난해 2월 경희대·고려대·성균관대·연세대·중앙대 5개 대학은 공동연구를 통해 '고등학생 교과 이수 과목의 대입전형 반영 방안 연구:자연계열 모집단위를 중심으로'를 발표했다. 이 연구는 대학들이 보유한 학과별로 학생들이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과목인 '핵심 과목'과 이수를 권장하는 과목인 '권장 과목'을 제시했다. 의학과의 경우 수학1·수학2·미적분·화학1·생명과학1·생명과학2가 핵심 과목으로, 확률과 통계·물리학1·화학2가 권장 과목으로 제시되었다. 이렇게 대학이 이수 과목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이상, 이를 전략적으로 선택하지 않으면 해당 학과로 진학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희망 전공과 적성이 뚜렷한 학생이라면 이는 반길 만한 변화라고 사료된다. 희망 학과와 관련된 과목들을 핵심적으로 학습하고, 더 높은 수준의 역량을 길러서 대학에 진학할 수 있기 때문이다. 희망 학과는 있지만 적성에 조금 맞지 않는 학생에게도 괜찮은 소식이다. 대학에서 길러야 할 역량을 미리 확인하고 검증하는 고등학교 시기를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망 전공이 뚜렷하지 않다면, 이번 변화는 큰 위협일 수 있다. 고교학점제는 1학년 중반에 첫 과목 선택을 요구하기에, 1학년 중반까지 진로가 뚜렷하지 않다면 과목 선택이 심히 난해하다. 과목을 정한 후 진로를 선택하더라도 내가 선택한 과목과 맞지 않아 포기해야 하는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이런 변화는 수시를 넘어 정시까지 확대되고 있다. 서울대학교는 현재도 정시에서 생활기록부를 평가하고 있다. 선택한 과목, 해당 과목의 성적, 활동 내용 등이 주요한 평가 기준이다. 합격 사례를 살펴보면 선택한 과목의 종류 또한 중요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서울대학교는 2028 대입부터 생활기록부 반영 비율을 2배로 높이겠다고 밝혔으며, 이외 서울 상위권 대학들도 정시에 생기부 반영을 예고하고 있다. 수학과 과학의 선택과목이 사라지는 2028 대입부터 수도권 대다수 대학이 정시에서도 생기부를 반영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에는 진로 선택이 대입 전략에서 '플러스' 요인이었다면, 이제는 진로가 없는 학생이 대입에서 '마이너스', 혹은 넘어서 '과락'을 받을 수 있는 입시가 되고 있다. 물론 변화하는 기술과 세계 정세를 볼 때 이런 교육과정 변화는 필요하다. 하지만 급격한 변화에 피해를 보지 않도록 교육기관과 가정에서 학생의 진로 선택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