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더 싸게 vs 더 이상 안돼"…조선-철강 후판가 신경전 '팽팽'
조선, "중국산 저가 후판·철광석 가격 하락 등 가격 인하 요인多" 철강 "2분기 실적 곤두박질…후판 가격 내려가면 어려움 가중"
2024-08-29 서영준 기자
매일일보 = 서영준 기자 | 후판은 두께 6mm 이상의 두꺼운 철판으로, 선박 제조나 건설용 철강재로 주로 사용된다. 조선용 후판은 철강사 후판 매출의 절반 이상을, 조선사는 선박 건조 비용의 20~30%를 차지해 양쪽 모두에게 민감한 사안이다.
지난달 가까스로 상반기 후판 가격 협상을 끝낸 철강업계와 조선업계가 곧바로 이어진 하반기 협상에서도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철강사는 불황의 고리를 끊고자 더 이상의 가격 하락은 막아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조선사는 철광석 가격 하락과 중국산 저가 후판 유입 등을 이유로 가격이 인하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올해 상반기 후판 가격 협상에서는 톤당 90만원대 초반으로 마무리됐다. 90만원 중반대인 지난해 하반기 보다 낮아졌다. 두 업계 간 입장 차이가 쉽게 좁혀지지 않아 통상 협상 마무리 시점인 5월보다 두 달 정도 늦어졌다. 조선업계가 꺼내든 카드는 ‘원재료 철광석 가격 하락'이 대표적이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지난주 철광석 톤(t)당 시세는 96.74달러로, 2022년 11월 이후 처음 100달러 이하로 떨어졌다. ‘중국산 저가 후판 유입’도 있다. 한국철강협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수입 철강재는 788만3000톤이다. 이중 중국산은 약 60%(472만5000톤)에 달한다. 지난해와 비교했을 경우 수입량이 7만6000톤 증가했다. 중국 철강재의 상반기 평균단가는 톤당 863달러(114만8900원)다. 이는 전세계 평균인 977달러(130만500원)보다 약 15만원 저렴하다. 국산은 평균 단가가 톤당 2570달러(342만1180원)다. 중국산보다 3배 비싼 셈이다. 교량 건설이나 선박 건조에 사용되는 후판의 경우 국산이 톤당 90만원 중반(지난해 말 기준)인 데 반해 중국산은 70만원대다. 조선사들이 중국산 후판에 눈길을 두는 이유가 여기서 나온다. 실제 HD한국조선해양도 2분기 실적 콘퍼런스콜에서 중국산 후판 비중을 기존 20%에 25%로 늘려가는 중이라 밝힌 바 있다. 반면 철광석 가격이 하락하자 철강사들의 영업이익은 직격탄을 맞았다. 포스코는 올해 2분기 4184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동기 1조3262억원 대비 68.4% 감소한 수치다. 현대제철과 동국제강의 영업이익도 각각 979억원, 40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모두 감소했다. 철광석 가격 하락은 중국의 영향이 크다. 중국은 지난해 전 세계 철강 생산량(18억8820만t)의 54%(10억1900만t)를 생산할 만큼 철강산업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가진 나라다. 이런 중국이 건설경기 부진으로 내수 수요가 줄자 대규모 재고를 해외로 수출하면서 가격 하락으로 이어진 것이다. 하반기 협상을 앞두고 철강사들은 더 이상의 가격 하락은 막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업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후판 가격까지 내려가면 철강업체들의 어려움을 급격하게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반해 조선사들은 가격 인하 요인이 늘어났기 때문에 시장원리에 맞게 가격이 책정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과거 조선업이 불황일 때 철강사들이 가격 인하 움직임이 없었듯, 철강사들이 현재 어렵다는 이유로 후판 가격을 책정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며 "합리적인 가격 협상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다만 오랜 기간 파트너십을 이어온 만큼 철강사들의 의견을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중국산 제품이 아무리 싸다고 해도 무조건 중국 제품만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한국 철강사들은 언제든 안정적으로 물량을 확보해 줄 수 있는 파트너이기 때문에 완전히 시장 논리만으로 협상이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