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5천억 벌면 뭐하나"...카드업계 부실리스크에 연체율 잡기 안간힘

대출에 기댄 호실적...10년만에 최고치 찍은 연체율 '뇌관' 카드론 잔액 41조↑...은행 대출규제에 중·저신용자들 몰려

2025-09-02     이광표 기자
서울시내

매일일보 = 이광표 기자  |  카드사들이 카드론(장기카드대출) 확대를 앞세워 실적 개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씁쓸한 호실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대출에 기댄 실적이기 때문이다. 카드사들은 10여 차례에 걸친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로 신용판매 사업의 수익성이 지속 악화된 가운데 대출 영업에 치중하고 있다. 실적은 나아졌지만 카드사 건전성 악화와 가계부채 확대 등 리스크가 더 크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특히 은행권 대출이 막힌 사람들이 카드론, 현금서비스 등을 이용하면서 올해 말 연체율이 상반기보다 더욱 급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2일 카드업계에 따르면 국내 8개 전업카드사(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하나·우리·비씨)의 상반기 순이익은 1조522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1조4469억원)과 비교하면 5.2% 증가했다. 비씨카드(236.0%·전년 동기 대비) 하나카드(60.8%) KB국민카드(32.6%) 삼성카드(24.8%) 신한카드(19.7%) 순으로 순이익 증가 폭이 컸다. 이처럼 수수료 급감에도 올해 상반기 실적이 오히려 상승했지만, 연체율은 매달 높아지고 있다는 게 문제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카드 대출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늘면서 수익이 증가했지만 연체율도 동반 상승하고 있어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올 상반기(1∼6월) 카드사의 연체율이 1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치솟았다. 카드론, 현금서비스 등으로 급전을 마련해 온 취약계층들의 대출 상환 능력이 떨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지난달 27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2024년 상반기 여신전문금융회사 영업실적’(잠정)에 따르면 신한, 삼성, KB국민, 현대, 롯데, 우리, 하나, 비씨 등 전업 카드사 8곳의 연체율은 1.69%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보다 0.06%포인트 상승하며 2014년 말(1.69%) 이후 1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금감원은 1개월 이상 원리금 상환이 안 된 채권을 기준으로 연체율을 추산한다. 카드사의 연체율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발생한 2021년 이후 계속 상승해 왔다. 금융권에서는 카드론(장기카드대출) 잔액이 급증하면서 카드사의 연체율도 덩달아 뛰었다고 보고 있다. 카드사 대출을 받아 생계를 유지해 온 자영업자, 중저신용자 등 취약계층들이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면서 전체 연체율을 끌어올렸다는 것이다. 카드론 잔액도 연일 최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카드론 잔액은 41조2266억 원으로 역대 최대 규모였던 6월 말보다 1.53%(6207억 원) 늘었다. 새마을금고, 농·수·신협, 저축은행 등 2금융권이 연체 부담으로 인해 중저신용자 대출을 꺼리면서 취약계층의 급전 창구인 카드론 잔액이 불어나는 ‘풍선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카드론이 늘어날수록 가계부채 문제가 심화한다는 점이다. 카드론 이용자는 은행 등에서 이미 대출을 받은 다중채무자인 경우가 많다. 가계부채의 양적 측면뿐만 아니라 질적 측면도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금감원 관계자는 “카드론, 현금서비스 등은 당장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취약계층들이 찾는 창구”라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 등으로 인해 2금융권의 대출 절벽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카드론 잔액과 연체율이 덩달아 올라가는 모양새”라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카드업계는 수익성이 개선됐는데도 웃지 못하는 분위기다. 수년에 걸쳐 연체 부담이 늘어나면서 건전성 관리가 중요한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8개 전업 카드사들은 최근 부실채권 매각에 집중하고 있다. 올 상반기에 매각한 부실채권의 규모도 총 1조 60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회수가 어려운 부실채권을 정리하면서 연체율을 낮추는 등 자산 건전성을 관리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용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신한·삼성·현대·KB국민·롯데·하나·우리·비씨카드는 총 1조 6452억 원의 부실채권을 매각한 것으로 집계됐다. 금융권에서는 현재 증가 속도가 유지된다면 올해 부실채권 매각 규모가 지난해(2조 2374억 원) 수준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연간 부실채권 매각 규모는 전년(6703억 원)에 비해 약 3.3배 증가한 바 있다. 특히 현대카드와 BC카드는 반년 만에 지난해 전체 매각 규모를 넘어섰다. 특히 현대카드는 올 상반기에만 약 2000억 원에 준하는 부실채권을 정리하면서 지난해 전체 매각 규모(1425억 원)보다 약 38%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부실채권 매각에 힘입어 현대카드의 올해 상반기 말 기준 연체율은 0.71%로 카드사 중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카드사가 적극적으로 부실채권을 처분하는 것은 연체율을 관리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풀이된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업계 차원에서 건전성 관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만 이 같은 분위기는 2002년 카드 사태 이후로 사실상 처음”이라며 “가맹점 수수료도 계속 낮아지고 있어 사실상 카드론, 현금서비스 수수료 수익으로 연명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